브런치를 시작하며,
글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
헐벗은 나를 드러내는 꼴처럼 무안스럽기 짝이 없다.
내가 나인 것을 알만한 단서는 쥐뿔도 쥐어 주지 않으면서 글의 공개에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 해온 이유라면 내게 글은 곧 일기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욕받이 노트
초등학교 시절 의무적으로 적어내던 하루의 나열 말고 정말 내 감정을 담은 일기라는 것을 쓴 것은 질풍노도의 중학생으로 돌아간다. 하루가 다르게 마음속의 분노를 쌓아가던 나에게 엄마가 추천해준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디자인 따위와는 거리가 먼듯한 스프링 노트 한 권을 쥐어주며 본인에게, 세상에게 하고픈 욕을 마구 적어버리라고 하셨다. 결과적으론 썩 괜찮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정말로 말 그대로의 욕들을 공포 영화에 저주를 퍼붓는듯한 글씨체로 살벌하게 적어나갔는데 노트 한 권을 다 채워내고 난 뒤엔 마음속 분노도 조금은 덜어져 있었다. 떨궈낸 분노를 뒤로 하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느낀 감정들을 기록하는 기능으로서의 일기를 적어 나갈 차례다.
생각의 나열
습관이란 것은 참 무서운 것이다. 욕받이로서 기능을 해오던 나의 일기는 내가 스스로 분노를 누르고 삭히고 햇볕에 말려 널고 갈아 마셔버리는 등 다양하게 분쇄하는 동안 뒷전이 되어버렸다.
들여다보지 않는 탓에 빈 종이를 펴 내 하루를 적어나가는 것이 낯설게 되어 한참을 공백으로 지냈던 것 같다. 문득 감수성 풍부하던 때의 일기를 열어보다가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후드득 던져진 문장들을 보곤 나 스스로 감탄해버리고 말았다.
기록이란 쓸 적엔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간의 망각과 만나면 이렇게 찬란한 것.
그리하여 나의 일기는 두 번째 기능을 맡게 된다. 감정과 생각의 나열을 그저 적어보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지만 일단 구슬을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뱉어진 말들
첫 직장 생활을 마치고 두 달여간의 여행까지 마치고 다시 두 달을 한량처럼 보내고 난 뒤에야 구직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신입이 아닌 경력이라는 것이 나의 무기이자 족쇄였다.
스무 살 처음 구직활동을 할 때의 이력서와 자소서,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기가 찼다.
근자감이라는 단어가 이런 곳에서 온 게 아닐까 싶다. 경력이 있다는 것은 사회에서 나의 위치를, 내가 맡게 될 일을, 내가 해냈지만 엎어지게 될 일들을 어렴풋이 안다는 것 같다.
그것들을 시식해봤기에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말은 히어로물의 주인공이나 뱉을 수 있는 말 같았다.
헌 신입으로서 쓰게 된 자기소개서에서 더 험난한 글쓰기의 좌절을 맛보게 된다.
마음속의 분노를 던져 넣던, 그저 떠오르는 감정들을 던져 넣던 농구 골대 같은 역할만 해온 탓일까. 나의 글쓰기는 문장과 문장의 거리가 십리는 되는 듯 멀었다.
아예 다른 사람이 쓴 문장들을 복사 붙여 넣기만 한 듯 달랐다.
글 쓰는 것에는 연습이 필요하구나. 내가 이제껏 적어온 것들은 마음의 알맹이, 말 같은 글뿐이었다.
쓰인 글이 아니라 뱉어진 말이었다.
방금 저 한 줄의 문장이 이 모든 시작의 이유이다. 글을 세상에 공개하고자 하는 벌거벗겨진 부끄러움을 무릅쓴 결심은 글을 조금 더 잘 쓰고 싶은 나를 위해서다.
글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 브런치
온전히 글이라는 콘텐츠로 이루어진 이 플랫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다양한 sns의 일기화를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온전히 글을 주절주절 써나가는 곳. 글과 글이 꿰어져 있는 이 곳에 나의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나의 알맹이들이 모아져 덩어리가 될 수 있도록.
꿰어야 보배인 구슬을 다듬어 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