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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은밀한 성희롱 2편

여전히 의도는 없었다는 말로 포장되는

by 푸른국화

(1편에서 계속입니다.)


오빠처럼 생각해.


이 것이 네 번째 살라미였다. 정확히 오빠처럼 생각하라고 워딩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게 더 환장할 노릇이다. 오빠처럼 생각하라고 말 했으면 고충상담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장은 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저 말을 들은 것과 같았다. 부장이 한 말은 아래와 같다.


"나이차이도 내가 큰 오빠 뻘........참, 오빠가 있었나? 오빠 있다고 했었나?"(참고 : 부장과 나의 나이 차이는 13살이다. 13살에 오빠뻘이라니요? 그리고 회사에서 오빠가 웬말입니까?)

"오빠 없습니다.

"그러면 동생이 있었나? 여동생? 남동생?"

"남동생 있습니다. "

"그러니까......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부장의 화법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끝을 맺지 않고 마무리 없이 화제가 휙휙 바뀐다. 나는 부장의 이런 말투에 역시 몹시 비겁하고 소심한 사람라고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 그런데 부장은 본인을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오해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부장의 워딩을 정확히 옮긴 것이다. 대체 내가 어떻게 오해할거라 생각하는 걸까.


술 한 잔 할까.


이 것은 다섯 번째 살라미였고, 정확히 이 워딩이었다. 거기서 바로 받아쳤어야 했다.

"둘이서요?" 적어도 이렇게라도 받아치고 부장의 반응을 봤어야 했다. 뜨끔하든지, 아니면 평소처럼 자기합리화의 핑계라도 대든지. 적어도 부장이 나에게 둘이서 술 한 잔 하자 한 것임을 한번더 확인시켰어야 했는데.

나는 어째서 조금의 여지도 없이 딱 잘라 거절했던 것인가. 이렇게 매번 내가 당한다. 앞머리도 뒷머리도 없는 말투의 부장과 군더더기 없이 딱 떨어지는 말투의 내가 대치하면 언제나 책임은 내 차지다. 내 말은 더하거나 빼지 않아도 해석의 여지가 없으니까. 부장은 언제나 그런 의도가 아니었고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로 피해갈 수 있으니까.


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생각이 없다. 부장을 혼내주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퇴사할 때까지 잘 피해다니다 조용히 퇴사하기만 바랄 뿐이다. 그런데 부장은 무슨 오해인지 자꾸 오해를 풀고 싶다고 한다. 하루 한 번 말걸기 챌린지를 수행하는 것인지 업무와 상관없는 실없는 소리를 매일 던진다. 역시나 앞머리도 없고 뒷머리도 없고, 주어도 서술어도 없는 말을 말이다. 거의 대화가 벨튀(저자 주 : 타인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대답하면 도망가는 행위.) 수준이다. 괜히 다가와서 툭 뱉고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슬쩍 돌아간다. 사실 나는 대답할 생각이 없긴 하다. 그런데 말을 거는 사람도 들을 생각 없이 매일 한마디는 꼭 걸고 말겠다는 저 의지가 몹시 부담스럽다. 어제는 심지어 등을 보이며 횡단보도에 서 있는 나를 가던 길에서 일부러 다가와 실없는 말을 건넨다. 역시나 벨튀처럼 자기 할 말만 하고 또 슬쩍 빠진다. 혼자 있을 때 그러면 진짜 무섭다.


직장내 성희롱이나 괴롭힘 사건에서 가장 먼저, 확실히 하는 조치가 바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조치다. 가해자는 항상 말한다. 오해를 풀고 싶다고. 하지만 피해자도 항상 원한다. 일단은 분리조치. 피해자들이 왜 그렇게 분리조치를 외치겠는가? 피해자는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가장 고통스럽다. 가해할 만큼 해 놓고 오해를 풀자는 말로 계속 다가오는 것은 가해를 넘어 고문이다. 오해를 어떻게 풀 것인데? 풀 수나 있고? 무슨 말로 표현하든 그 본질은 덮어놓고 니가 참으라는 말이다.


끓는 물에서 바로 튀어나온 개구리는 큰 상처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미지근한 물에 천천히 끓여진 개구리는 절대 멀쩡할 수 없다. 데일만큼 데였는데 솥에 물은 안전하다고 하루에 한 번씩 말하면 개구리가 솥에 다시 들어가고 싶을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살라미 전술은 그런 것이다. 은밀하게 계속되었던 가해를 상대방이 눈치채면 오해를 풀어보자는 말로 질척거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 험한 꼴 보기 싫으면 거기서 stop!


친밀함은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상대가 싫다는데 친하게 지내자는 것은 말이 친하게 지내자이지 사실은 니가 일방적으로 참으라는 말 밖에 더 될까? 무엇보다도 회사에 왔으면 일을 해라. 친분을 쌓지 말고!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전우애는 자연스럽게 싹 튼다. 괜히 무리수 두다가 돌아킬 수 없게 된 것을 고민할 시간에 일을 하면 된다. 일 잘 하는 사람이랑은 누구든 친하게 지내고 싶어한다. 회사니까.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은민한 성희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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