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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Aug 20. 2021

카드대란의 중심에서 경제를 외치다

실패 안내서(1)

경제가 뭔지 몰랐다. 그것이 내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사회로 나왔고 나는 그냥 그대로 살아도 잘 살 줄 알았다.  

    


경제의 무지, 돈의 무지는 삶을 한순간에 피폐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너덜너덜한 삶을 부여잡은 20대 초반의 젊은 나는 곧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돈이 없다는 사실이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제대로 느낀 시기였다.      

신용카드 남용은 삶에 유해합니다. (Karolina Grabowsk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신용카드 돌려막기가 많은 사람의 일상적인 삶이 되어버렸던 2002년의 대한민국, 모기지 사태처럼 카드대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카드대란의 중심에 나도 있었다. 

     

집도 가난했고 나도 가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가난의 가장 큰 원인은 돈의 무지였다. 경제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던 나의 부모님은 깨끗했던 자식의 신용을 담보로 돈을 융통해서 사용했다. 카드빚을 또 다른 카드빚으로 막는 악순환. 그것이 바로 카드대란의 중심 내용이었다.  

    

다들 잘 알고 있듯이 빚을 다른 빚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곧 탈이 났다. 삶이 삐걱댔다. 나는 그 당시 대학 휴학생이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은 한계가 있었고 돈을 번다고 해도 기껏해야 아르바이트비 정도를 벌 수 있는 나이였다.      


돈은 버는 즉시 카드빚을 갚는 데 쓰였다. 하지만 휴학생이 번 몇 푼의 돈으로 불어나는 카드빚을 갚을 수는 없었다. 카드 회사에서는 빚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왔다. 전화를 받을 때까지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결국 난 내 신용을 포기한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그 당시 신용불량자가 나만이 아니었다는 것에, 그리고 많은 사람이 함께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안도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경제나 돈에 너무 무지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돈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돈은 무엇인지를 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출처:픽사베이)

나는 20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돈에 대한 진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경제는 너무 학문적이라 삶에 하등의 쓸모가 없었고 대학교 때 배운 주식은 나와 너무 먼 이야기인 것처럼 생소했다. 

    

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용돈을 받아서 제대로 써 본 적도 없었고, 가계부를 쓴 적도 없었으며, 목돈을 만들어 본 적도 없었고 목돈을 굴려본 적도 없었다. 돈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겨났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삶에서 돈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도 가늠해 본 적 없었다.      


은행에 가서 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본 적도 없었고, 적금의 이율이나 주식의 수익률을 따져 본 적도 없었으며 자산의 포트폴리오는 들어본 적도 없는 경제 문맹.


대학생이 될 때까지 나는 내 삶의 경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인생 계획을 세운 적이 없었다. 돈을 어떻게 운용해서 내 미래를 설계할지 고민한 적도 없었다. 이런 내가 갑자기 카드대란의 주인공으로 우뚝 자리매김했으니 내 삶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또 나는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렇게 거창하고 어려웠던 경제는 내 삶의 한 번에 훅 들어와서 온 삶을 휘저었다. 아니, 원래‘경제’라는 거창한 단어는 내 삶 중심에 있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온 것일 수도 있었다.      

혹독한 경제 교육 및 연습이 시작되었다.(출처: Pexels)


이때부터 내 삶의 경제 연습이 시작되었다. 밑바닥부터 시작된 연습. 돈이 제로가 아닌, 천만 원 빚에서부터 출발했으니, 혹독한 연습만이 경제 문맹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재테크 서적을 읽고, 돈의 역사를 공부했다. 경제 메커니즘을 알기 위해서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했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저축부터 시작했다. 적금의 이자를 따져가며 은행을 찾아다녔고, 펀드도 들었으며, 주식에도 투자했다. 이런 노력으로 나의 신용은 불량에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나는 내가 카드대란의 주인공이 된 것은 내가 가난해서가 아니라 내가 경제 문맹이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부모의 경제 문맹은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자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학구열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 문맹률은 어떨까? 경제 교육은 어릴 때 시킬수록 좋다고 하던데(내가 읽은 어떤 책에서는 4살부터 경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아직도 나처럼 스무 살 때까지 은행에서 통장 한 번 못 만들어 본 아이들도 있지 않을까?     


비트코인이니, 가상 화폐니 하면서 돈이 다시 한번 전환기를 맞고 있는 지금, 제대로 된 경제 교육 없이 지금 세대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나는 누구도 나처럼 카드대란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내 경제 문맹의 실패를 안내하고자 한다. 

돈에 대한 정확한 교육을 받지 않은 채, 무지하게 산다. 

가난을 핑계 삼아 줄 돈이 없다는 위안을 삼으며 자녀들에게 다만 100원의 용돈도 주지 않는다. 물론 가계부쓰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돈을 투자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려 주지 않는다. 더불어 부모도 안 한다.

자녀가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혹은 결혼할 때까지 통장, 보험, 적금, 주식 등을 모두 부모가 관리한다. 자녀는 돈에 관해서 몰라야 하며, 편안하게 계속 자라게 둔다. 

돈은 쓰라고 있는 거라며 소비를 부추기고 소득, 저축, 투자 등에는 무관심하게 만든다. 

지금 나를 위한 선물은 후하게 주고, 미래를 위한 계획은 하지 않는다. 

돈이 뭔가요?라는 질문에 절대 답을 주지 않는다. 

인생에서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시하며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경제를 원론적으로 가르치고 실생활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가정교육에 맡긴다. 

가정에서도 자녀에게 경제를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다.      


**카드대란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하여 신용카드 회사가 부도를 맞고 신용불량자가 급증한 현상. 2002년에 소비를 늘려 경기를 활성화하고자 신용 카드 규제를 완화했다가 겪게 되었다. (출처 :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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