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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 하나에 기뻤던 순간

사장님, 혹시 아기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by 늠름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기분이 떠오른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지만, 그중에서도 이렇게 사소한 순간들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사장님, 혹시 아기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카페 문을 열고 다급하게 들어온 어머님 한 분.
손을 꼭 잡은 아이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네! 여기 비밀번호 누르고 편하게 다녀오세요.”

어머님이 허겁지겁 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뛰어가고,
나는 아이 가방을 조심스럽게 의자에 내려놓았다.

‘오늘도 정신없는 아침이구나.’




"동네 카페에서 일어나는 일들"

내가 운영한 북카페는 동네 커뮤니티 센터 2층에 있었다.
아침이면 아이를 등원시키고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오는 엄마들이 자주 들렀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숨을 고르는 엄마들, 조용히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엄마들.

그리고… 갑자기 화장실이 급한 아이를 데리고 뛰어오는 엄마도 있었다.


어머님은 한참 뒤에야 돌아오셨다.
숨을 돌리고 나서야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고 해서 너무 당황했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주변에 아이 엄마들이 많아서 이해해요.”

그러자 어머님이 피곤한 얼굴로 커피를 주문하며 중얼거렸다.
"오늘 하루만 애 등원시키는 건데도 진짜 힘드네요. 원래 친정엄마가 등하원을 해주셨는데 오늘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제가 왔거든요."

"저는 엄마들이 제일 고생하는 것 같아요.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그 말을 하자마자, 아이 어머님은 나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사장님은 결혼하지 마세요ㅋㅋㅋ"

엥?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 다다음 달에 결혼하는데요?"

그 순간 우리 둘 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침의 작은 해프닝이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며칠 후, 매장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공간꿈틀 입니다.”

"사장님, 저번에 아침에 화장실 썼던 애기 엄마인데요… 혹시 커피 배달도 되나요?"

그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아, 그때 다급하게 화장실을 찾던 어머님.

"사실 저희 어린이집이랑 카페가 가까워서요. 그때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선생님들께 대접하고 싶어요!"

나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네! 가까운 곳은 직접 배달해 드려요."


사실 혼자서 대량 주문을 받으면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거 내가 다 만들 수 있을까?’
‘배달 가는 동안 커피가 식으면 어쩌지?’
‘실수하면 어쩌지?’

하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런 걱정보다는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왜냐하면, 이 커피를 받는 사람들은 그저 ‘손님’이 아니라,
매장을 찾아준 인연이니까.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선생님께서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우와~ 사장님!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은 선생님들도 기뻐했고, 나도 괜히 뿌듯해졌다.

배달을 마치고 매장으로 돌아와 어머님께 배달 인증 사진과 함께
"배달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선생님들께서 너무 좋아하셨어요!! 감사합니다. :)"
라고 문자를 보냈다.

조금 후, 어머님에게서 답장이 왔다.

"사장님, 진짜 감사해요. 덕분에 오늘 힘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메시지를 보는데, 갑자기 코 끝이 찡했다. 나는 단순히 커피를 배달했을 뿐인데,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뿌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순간이 남긴 커다란 기억."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이렇게 작은 일 하나로 기뻤던 순간도 있었다.

커피 한 잔으로 고마움을 전할 수 있었던 날. 아침의 작은 해프닝이 뜻밖의 인연이 된 날.

그날의 기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도 살아가면서 작지만, 따뜻했던 순간을 한 가지쯤은 기억하고 있겠죠?

그 기억이, 언젠가 여러분을 위로해줄 날이 올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의 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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