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번화가의 한가운데였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시선은 대개 앞이나 발끝에 머문다. 특별히 볼 것이 없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횡단보도 두 개 사이, 전봇대 옆의 아주 작은 공간에 노란색이 눈에 들어왔다.
민들레였다.
처음에는 왜 지금, 여기서 이 꽃이 보였는지 알 수 없었다. 매일 지나던 길이었고, 수없이 오간 자리였다. 그럼에도 한 번도 눈에 들어온 적 없는 존재였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유가 있었다. 그 민들레는 사람의 시선에서 정확히 벗어난 위치에 있었다. 가로수에 일부 가려져 있었고, 정면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는 각도였다. 횡단보도와 전봇대 사이, 관리의 손이 닿기 쉬운 번화가 한복판이었지만, 그 미세한 틈이 그 생명을 지켜주고 있었다.
환경은 계속 정비되고 있었다. 잡초는 보이는 족족 제거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그 민들레는 살아남아 있었다.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위치 덕분에 조용히 피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양지바른 자리였다. 햇빛은 충분히 닿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꽃은 더 선명하게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시멘트와 인공 구조물 사이에서, 작은 생명이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낸 듯 보였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같은 길을 수없이 지나왔지만,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존재를 이제야 마주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 민들레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눈에 띄는 위치였다면 이미 제거되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음이 오히려 생존의 조건이 되는 역설 속에서, 그 작은 꽃은 조용히 피어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도 그 흐름에 섞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본 노란 점 하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