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살던 아파트를 중개업소에 내놓았다.
내 청춘의 편린들이 곳곳에 묻어 있고, 가족과 함께 웃고 울던 나의 유일한 보금자리였다.
그런 내가 왜 이토록 갑작스럽게 매도를 결정하게 되었을까.
시작은 위층에서 발생한 하자였다.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나의 요구가 정당한 권리임을 확인했지만, 위층의 생각은 달랐다.
당연히 해결될 줄 알았던 수리는 반년 가까이 지루하게 이어졌고, 그 사이 나의 일상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지쳐가는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터져 나오는 무례함이었다.
자신의 불만을 증명하기 위해 꼭 고성을 지르고 욕설을 내뱉어야만 하는 걸까
나는 무매너인 사람들을 마주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마비된다.
대항할 힘조차 잃어버린 채 침묵하게 된다.
집에 돌아와 홀로 앉아 있으면 비로소 분함이 밀려온다.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나를 자책하고, 나의 인내를 '호구'의 침묵으로 오해하며 만만하게 보는 그들의 시선에 마음이 벼려진다.
설상가상으로 위층의 하자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 터져나오는 하자에 그들은 더 거칠어져갔다
결국 참다못해 일부는 내 돈을 들여 수리를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득 깨달았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건물을 수리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벽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보다 더 무서운 건,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실종된 이 '야만의 시대'를 견뎌내는 일이었다.
무너진 천장은 고칠 수 있지만, 마주한 사람의 일그러진 양심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나는 결국 정든 보금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패배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평화와 인격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야만의 시간에 나를 방치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집은 다시 구할 수 있지만, 깎여나간 나의 영혼은 누구도 대신 고쳐주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