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 첫 만남, 그리고 100일간의 이야기
2023년 4월 20일
반가워 봄아. 띠용이라는 태명이 더 익숙한 우리 봄이의 탄생 5분 차.
엄마 뱃속이 좋은지 열 달을 꼬박 채우고도 나올 기미가 안보였다.
호기롭게 유도분만을 시도해 봤지만 극심한 진통에 더 하기가 어려워 결국 제왕절개로 만났다. 엄마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는 이렇게 짠하고 태어났다.
1분이 1시간 같던 수술실 앞에서의 시간 뒤에 만난 우리의 첫 만남은 놀랍고, 낯설고, 묘했다.
4월 20일, 그렇게 봄이를 만났다.
2023년 5월 23일
봄이를 만난 지 어느덧 30일이 지났습니다. 정확히는 34일 차가 되었네요. 괜찮다면 한 달에 한번 정도 잊지 못할 순간들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1. 성장통
한 달간 키가 5cm가 크고 몸무게가 1.3kg이 늘었습니다. 울긋불긋했던 피부는 점점 우윳빛으로 바뀌고 먹는 양도 놀랄 만큼 늘어났습니다. 중학생 시절 급격하게 키가 자랄 때 팔과 다리가 저리고 온몸이 욱신거렸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 이상의 성장을 경험하고, 자는 도중에도 갑자기 팔과 다리가 맘대로 휙휙 움직이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봄이를 보며 그저 사랑으로 응원해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한 달간 엄마와 아빠도 성장통을 겪고 있습니다. 봄이의 성장에 견줄 수 없지만, 우리의 성장도 나름의 성장통을 동반하나 봅니다. 그저 쇼핑하길 좋아하고 누워서 먹방보길 좋아하던 엄마는 이제 봄이에게 필요한 물건만 살피게 되었고, 깊은 새벽 속 봄이의 작은 뒤척임에도 무거운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킵니다.
변해가는 모습에 대견하다는 생각과 함께, 투박해져 가는 우리 모습에 마음 한켠 안쓰런 마음도 듭니다. 봄이와 함께 엄마와 아빠도 이렇게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습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달래도 달래 지지 않고 목이 다 쉴 정도로 하염없이 우는 봄이를 마주할 때면 엄마와 아빠는 넋이 나갑니다. 아이는 원래 우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과 수많은 선배부모들의 위로의 말도 그 순간만큼은 적용되지 않아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저 다시 한번 아이를 달랠 뿐입니다. 애 키우는 거 힘들다는 말들 전부 다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지치게 하던 아이가 몇 분 뒤 보여주는 귀여운 표정 한 번에 모든 게 해결됩니다. 고약한 울음에 당할 만큼 당했는데도 또 한 번 속수무책 넘어갑니다. 순간의 고통을 밀려오는 행복으로 치유합니다.
오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힘을 내 봅니다.
#3. 추억
워낙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라 짧은 시일 내 변화가 크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 달간 정말 많은 변화를 지나왔고, 성장통도 겪어 왔습니다.
병원에서 조리원, 조리원에서 집, 장소도 여러 번 바뀌었네요. 병원 침대 위의 아내와 손잡고 눈물 흘렸던 순간, 희뿌연 유리 사이로 쌀알 같던 봄이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유리에 머리를 맞닿았던 순간,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조리원으로 이동하던 차 안, 조리원 첫 모자동실 시간, 조리원에서 출퇴근하던 출근길, 설레며 조리원으로 향하던 퇴근길, 집에 온 첫날 강성 울음에 당황하던 우리 모습.
짧다면 짧은 한 달이라는 시간에 모든 순간이 추억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추억이 만들어질까요. 우리 세 가족이 만들어갈 추억이 사뭇 기대가 됩니다.
2023년 6월 4일
50일을 조금 앞두고 봄이의 두 번째 성장기록을 기록해 봅니다.
#1. 사람다움
봄이가 점점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줄 때 놀라움과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40일이 넘어가니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단조로웠던 울음소리는 ‘아!’ ‘우이!’ ‘에에에!’ ‘히유~’ 같은 여러 소리로 발전하였습니다. 그 소리가 어찌나 귀여운지 못 들어본 소리가 나올 때면 아이의 뽀얀 볼에 코가 사라져라 얼굴을 파묻습니다.
손을 감싸고 있던 손싸개를 벗기니 또 귀여운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손으로 하는 말도 있듯이, 손은 많은 이야기를 표현합니다. 수유를 할 때 한껏 비장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옹골지게 쥐고 젖병을 빨아대는 모습에 웃음이 나고, 대차게 우는 봄이를 들쳐 안으면 아직은 하찮은 두 손으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아빠 옷을 꽉 움켜쥐는 모습이 어지럽게 귀엽습니다.
아기의 손짓 하나하나에 엄마아빠는 매일 쓰러집니다. (아, 그리고 몸무게가 많이 늘어 이제 손목이 조금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2 익숙해짐
첫날 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에 혼비백산하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진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했고, 아픈 건 아닐지 한참을 걱정하며, 멈추지 않는 울음에 함께 울음이 나올 뻔했습니다.
40일을 지지고 볶고, 눈물 콧물 함께 흘리다 보니 이제 봄이의 울음소리가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두렵기만 했던 아이의 울음이 이제는 마냥 귀엽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야 뒤늦게 풋내기 엄마아빠 구실을 하는 게 내심 미안하기도 하지만, 엄마아빠의 손길과 품이 봄이에게도 조금은 편안해졌길 바랍니다.
#3. 2주의 시간
이제 2주간의 출산휴가가 끝나갑니다. 회사생활을 하며 2주라는 장기간을 휴가로 사용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주어진 2주라는 시간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였으며 어떤 가치를 주었을지 조용히 곱씹어봅니다.
아직 너무나도 어린 봄이는 기억할 수 없겠지만 아빠에게는 평생 기억할만한 2주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짝사랑 같은 시간이기도 하네요.
육아란 생각보다 지루하고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의 연속입니다. 방 안에 고립되어 말 못 하는 아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것이 전부인 하루하루입니다. 그런 하루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이 지극히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던 것은 아이의 눈 맞춤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행여 웃음이라도 보일 때면 엄마와 아빠는 겨우 그런 일로 세상을 다 갖습니다.
이러니 멋지고 좋은 곳, 맛있는 것을 먹은 시간보다 이 2주간의 시간이 더 쉽사리 잊히지 않겠지요.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의 어려움을 가슴깊이 느꼈습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란 고단함과 위대함의 존재임을 다시 한번 흠씬 경험하였고, 마음 한편에 잘 담아두어 어려울 때 항상 보태고자 합니다.
생각을 정리하다 문득 드는 이 마음을 간직하고 오늘의 봄을 맞이합니다.
2023년 7월 27일
7월 28일, 내일이면 봄이와 만난 지 어느덧 100일째 되는 날입니다. 100일이라는 시간 동안 찾아온 많은 변화와 기억들에 대해 기록해 봅니다.
#1. 100일의 기적?
육아선배들이 흔히 말하는 ‘100일의 기적’이라는 순간을 기다려왔습니다. 한 달도 안 된 신생아 시절에는 100일이란 순간이 오긴 오는 걸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었습니다. 예상만큼 시간은 천천히 그리고 자박히 흐르더니 비로소 내일, 봄이를 만난 지 100일째입니다. 100일간 우리 봄이에게도 기적이 찾아왔을까요?
아니요. 오늘까지의 봄이는 여전히 아기입니다. 여전히 새벽시간에 배가 고파 잠에서 깨어 목청껏 고래고래 울고는 합니다. 부모들이 흔히 기적이라고 통칭하는 100일의 통잠은 아직까지는 멀어 보이네요.
그렇지만 100일 동안 봄이는 많이 변하고 많이 성장해 왔습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엄마아빠를 보고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옹알옹알 대화도 나눕니다. 이제 목을 가누는 건 기본이고, 88일부터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몸을 뒤집으려고 노력하더니 98일째인 어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몸을 뒤집었습니다. 처음보다 안아줘야만 하는 시간도 어느 순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하찮지만 성스럽고 대단한 변화입니다.
한순간 찾아오는 엄청난 100일의 기적은 아니지만 봄이는 차곡차곡 작은 기적들을 매일매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봄이 찾아온 순간부터 매일이 기적입니다.
#2. 엄마가 되어가는 아내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봄이를 두 시간 정도 직접 돌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오기 전에 하루 종일, 그리고 매일 집에 틀어박혀 혼자 아기를 돌보는 것은 얼마나 체력적으로 힘들고, 심리적으로 고립된 느낌일까. 아무리 집순이인 아내여도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되려 아기가 매일 같이 더 예뻐진다며,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행복해하며 이야기하는 아내 모습에 이런 걱정을 살짝 내려놓아 봅니다. 그리고 초보엄마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능숙한 엄마가 되어있었습니다. 이렇게 강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아는 은정이가 맞는지 가끔 생경하기도 합니다. (물론 내가 아는 은정이도 사랑스럽지만요)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가 사실 많이 고단할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고단함이 우울함이 되지 않도록 옆에서 항상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노릇 해나가려고 합니다.
#3. 그립고, 행복하고, 기대되는
50일 전까지 아이를 안고서 앉지도, 눕지도, 서있지도 못하고 몇 시간을 집안을 돌아다니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던 순간이 내심 그립습니다. 당시에는 와, 이걸 우리가 계속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고난의 시간들이 얼마 못 가 그립다고 하니 아마 아내와 제가 살짝 미쳤나 봅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지금보다 더 작고 쌀알 같던 그 시절의 봄이가 가끔 떠오릅니다.
그런데 오늘의 봄이는 그리운 그때보다 더 사랑스럽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어제가 그리운데 오늘은 더 사랑스럽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다가올 내일은 더 기대가 되고 설렙니다.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매일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게 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참 신기한 요즘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중에 자라서 이 글을 읽어볼 봄이에게. 100일 동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자라줘서 너무 고맙고 사랑해 봄아.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