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5. 찰나
2025년 6월 10일
어느덧 3개월이 흘러, 여름의 문턱에 서 있는 계절입니다. 세 번째 함께한 봄과 안녕을 고하며, 그동안의 기억들을 돌아봅니다. 달고 사는 만성 역류성 식도염이 요즘은 뜸해진 걸 보니, 아마도 지난 봄이 참 좋았던 모양입니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적어두는 메모장을 열어 몇가지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 기록합니다.
#1. 춤
어찌나 흥이 넘치는지, 음악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서든 무대가 됩니다. 엄마아빠의 비루한 흥 열성 유전자에 반해 저절로 흥이 솟아나는 작은 인간이 태어났어요.
특히, 뽀로로 노래 메들리에 몸을 흔드는 모습이 귀엽고도 인상적입니다. 여러 가지 기발한 스킬들을 선보이는데, 두 발로 깡충깡충 뛰며, 엉덩이를 씰룩이고 손을 위아래 흔들며, 때때로 손가락으로 포인트를 찌르기도 하죠. 최근에는 어린이 발레 교실에서 배운 턴 기술까지 접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가지 봄이의 모습을 좋아하지만 저는 춤추는 봄이의 모습을 제일 좋아합니다.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 봄바람처럼 사랑스러운 기운이 넘쳐흐릅니다. 그 순수한 몸짓은 세상을 온통 환하게 물들이는 듯합니다.
#2. 두번째 생일
첫번째 생일만큼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봄이의 두 번째 생일도 특별했습니다
올해는 언니 동생과 함께 에버랜드에 다녀오고, 봄이가 좋아하는 과일케이크와 함께 촛불도 불었습니다. 그저 '아!아!' 거리며 박수만 치던 1년 전과는 다르게 케이크 앞에서 박수치며 노래하고, 케이크를 먹으며 재잘재잘 떠드는 봄이를 보며 1년이란 시간에 말도 안되는 변화들이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제는 봄이가 정말 하나의 인격체로 느껴지고, 이 아이의 인생이 우리부모와는 무관하게 앞으로도 계속 펼쳐지겠구나 생각하며 생소한 느낌을 느끼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첫 해에는 그저 말못하는 나의 귀여운 반려아기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한 인간이자 가족구성원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단 두 해 만에 말이죠.
아 참. 봄이의 생일이자 아내의 출산일이기도 한데, 특별히 아내에게 무언가를 챙겨주지는 못하였습니다. 그저 '고생했다'는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걸, 남편으로써 사려깊지 못했던 것에 글을 적어내려가다 이제서야 얼굴이 붉어집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자고 있는 봄이와 아내를 두고 집을 나서 회사로 출근합니다. 어찌보면 고생이다 싶지만, 7시가 채 안된 시간에 눈을 떠 출근준비와 동시에 봄이를 2시간 동안 혼자 케어하고 등원까지 시키는 워킹맘 아내의 아침이 셔틀버스에서 편하게 졸고있는 나의 아침보다 얼마나 치열한지 알고 있기 때문에 매일 출근하는 마음이 걸립니다.
오늘은 봄이의 생일도, 아내의 생일도 아니지만, 고생했다는 뜬금없는 말을 남사스럽게 건네어보아야 겠습니다.
#3. 첫 어버이날 행사
작년에는 너무 어려서 감흥없이 지나갔던 어버이 날이었으나, 올해는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정성과 도움 덕분에 처음으로 어버이 행세를 해보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엄마, 아빠'보다 훨씬 더 올드하게 느껴지기만 했던 '어버이'라는 단어가 이제 새삼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단어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워 묘한 책임감까지 불러왔습니다.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라는 글자를 보고 그저 선생님이 적어주신 것임을 알면서도 누군가의 엄마, 아빠라는 것이 실감나고 문득 새롭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에게 세상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가 된다는 것. 그 무조건적인 아이의 마음에 진심으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더 건강하고, 열심히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엄마, 아빠 경력직 3년차. 아직 묘하게 어색한 어버이란 단어가 내년에는 조금 더, 내후년에는 그보다 더 익숙하게 느껴지겠죠. 그렇게 우리는 어버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4. 팬티
750일쯤부터 기저귀를 떼는 연습을 시작했고, 드디어 팬티를 입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울거나 화가 날 때, 감정 조절이 어려운 순간에는 팬티에 바로 쉬를 해버리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을 제외하면 2년 동안 늘 기저귀에 배변을 해오던 습관이 민망할 정도로, 이제는 기저귀에 쉬와 응가를 하는 것을 찝찝해합니다.
밖에서 화장실 가기가 어려운 상황에 화장실을 가고 싶어할 때면 그냥 기저귀에 싸라고 알려주지만, 신기하게도 기저귀에 하지 않고 참습니다.
아이의 성장을 체감하는 여러가지 모먼트가 있는데, 기저귀를 떼고 팬티를 입는다는 것은 그 중 꽤나 임팩트가 있는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2년간 기저귀를 입은 모습만 보다가 얇은 팬티를 입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볼때면 ‘이 아이가 이렇게 자라고 있구나’ 하는 자연스러운 감탄과 동시에 갑자기 어린이가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은 아이의 성장을 재촉하듯 흐르고, 그 속에서 찰나의 아쉬움이 스칩니다. 어제의 아기가 오늘의 어린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문득 붙잡고 싶은 순간들이 마음속에 아련히 남습니다. 아이는 또 한 뼘 자라나, 부모의 시간을 기꺼이 앞서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