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이 직업만은 안돼

아빠들의 속마음

by 봄치즈

"미술요? 저는 애들 절대 예술 계열을 안 시키려고요. 나중에 뭐해 먹고살라고."


"근데 우리 애는 요즘 노래하고 싶다 해서 지 엄마가 보컬 레슨 시키는데 선생님도 자질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당연히 돈 벌려고 그렇게 말하겠지. 그걸 왜 시키는지."


"아이가 좋아하면 어쩔 수 없지만... 대신 애가 그거 하면 형 이제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해요. 그거 뒷바라지해주려면. 하하"


"그러니깐요. 우리 둘째 아이는 방학 때 뮤지컬 학원 다니고 싶다는데 내가 못하게 했어. 하다가 자기 배우 하겠다고 하면 어떡해."


"그래도 요즘 아이돌 성공만 하면 떼돈 벌잖아요. 한 번 오디션 봐봐요."


"그게 아무나 되나."


"우리 딸은 글쓰기도 좋아하던데..."


"야야... 나중에 글쟁이 한다 하면 어떡하냐."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경영이나 비즈니스, 아니면 요새 인기 있는 컴퓨터 계열 쪽이 최고지."


어느 시절 때 이야기일까.


바로 엊그제 이야기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아빠들의 수다가 한창이다. 모처럼 아빠들이 모여 즐거운 사교모임을 가지고 있는 모양. 연령대를 보아하니 내 나이와 비슷해 보이니 아마도 아이들이 10살 무렵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어쩜 내용들이 나 어릴 적, 그때도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됐던 내용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목소리 큰 아빠들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집중되면서 귀가 커지고 그들이 각자 의견을 내뱉을 때마다 그것들을 나에게도 접목시켜본다.


미술? 우리 큰 아이 만 5살 무렵, 가장 먼저 돈 주고 시작했던 사교육이다. 정형화된 그림이나 선생님이 막판에 덧칠해주는 '보여주기 식' 학원들은 무조건 패스. 최종 선택하여 아이가 다닌 곳은 그저 손 발에 물감을 묻히고 사방의 벽에 원하는 대로 찍어 바르는 이른바 '자유로운 표현'에 초점을 맞춘 곳이었다.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감상하고 날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 및 소재들이 제공되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거나 그리면서 자유롭게 표현을 하면 된다. 동생을 볼 무렵, 보이지 않은 스트레스를 원하는 방식대로 풀 수 있는 창구로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성량 또한 좋았던 우리 딸. 뮤지컬 및 연극 관람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로 인해 어릴 적부터 텔레비전보다도 공연장을 더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집에서도 뮤지컬 및 음악들을 자주 접하니 누구보다 이에 친숙했던 터. 고로 관련된 작은 기회들이 있을 때마다 누구보다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유치원 시절에는 한글학교에서 하는 구연동화 대회에도 참여해 큰 상들을 받았고 이로 스스로 성취감을 느꼈는지 이후 유치원에서 하는 뮤지컬 및 학교 공연이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오디션에 참여해 큰 배역들을 맡아왔다.


글쓰기는 책 읽기 만큼이나 우리 딸이 좋아하는 부분이다. 조용해서 들여다보면 항상 뭔가를 끄적여 적고 있다. 한동안 가장 사랑했던 책은 해리포터 시리즈. 2학년 때부터 이 시리즈에 빠져 커버 페이지 및 책 중간중간이 분권 되어있을 정도다. 당연히 해리포터의 저자 J.K.Rolling 같은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적도 있다. 그 팬심이 눈물겨워 당시 뉴욕에서 열리는 해피포터 전시 및 행사들에 다 참여하고, 플로리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있는 해리포터 마을도 두 번이나 방문했을 터.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무조건 독려해 주는 것이 내 방식이기도 하다.


공부? 5학년인 지금껏 학원을 다녀본 적은 3학년 되기 전 4개월 동안이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 오기 전 커리큘럼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너무 학원을 안 보낸다'는 주변의 성화(?)에 다녔었지만 그 역시 집에서 아이가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에 그만두었다. 물론 도와주는 내 능력에 한계가 오거나 아이가 학원을 원할 때는 언제든 시작할 의향이 있는 부분이다.


나열해놓고 보니 저 아빠들의 말들에 비춰보면 난 그야말로 공부가 아닌 '쓰잘대기 없는 곳'에 돈을 쓰고 있는 엄마다. 열변을 토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의 아내였으면 아마도 난 벌써 이혼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면 아이가 '무엇인가 좋아한다'하면 그것을 바로 직업으로 연결시켜 아이가 좋아하는 '그것'의 가치를 바로 결정해 버리는 어른들을 왕왕 보곤 한다.


N잡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유튜브, 블로그, 온라인 강의로 본업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이 하는 콘텐츠를 보니 'DIY 만들기, ' '연예인 얼굴 그리기, ' '캘리그래피, ' '발성 코칭, ' 그리고 '글쓰기 강의' 등 '행여나 아이가 한다'라고 할까 봐 무서워하는 예술 분야들로 가득하다. 말로는'이제는 평생직업은 없다'며 트렌디한 부모의 모습으로 지금의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로 그 문제가 왔을 때는 언제 그랬냐 듯 기존의 구시대적 발상을 들이밀고 있지는 않는지.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서는 나 역시도 스스로 생각해 볼 문제이긴 하다.


"엄마, 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공룡 화석들을 찾아다니고도 싶고, 수의사가 되고 싶기도 하고, 페이스 페이팅도 하고 싶고, 책도 쓰고 싶고, 연극도 하고 싶고..."


"와, 그 많은 것이 다 하고 싶다는 건 그 많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딸에 있기 때문이야. 그럼 다 하면 되지. 낮에는 수의사로 동물 치료해주고, 저녁에는 글쓰기 하고, 휴가 내서 공룡 화석들 발굴에 참여해보고, 주말에는 행사장에서 페이스 페이팅이나 연극도 하고. 다 할 수 있는데 뭐."


아이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답변을 술술 말하면서도 내 진짜 속마음은 다를 수 있음에 조금 찔리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무엇인가 좋아한다'는 사실에 있어서 만큼은 너무 감사하다. 학창 시절, 꿈이 뭐라는 질문에 한 번에 대답했던 적이 있었는지. 나 역시 좋아하는 분야를 대학교 들어가서야 찾았고 그 역시도 굉장히 운 좋아 빨리 찾은 케이스가 아닐까 한다. 지금은 대학교 전공과는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과거 첫 직장에서 일했던 그 분야와 대학시절의 전공들, 그리고 내가 좋아해서 틈틈이 행해오던 취미들이 점점이 이어져 보이지 않은 선들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도 아직 8여 년의 시간이 남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마음에서 내린 그때의 결정 또한 그 이후의 10년 사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발현될지 모르는 가치에 대해 우린 지금 어른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쉬운 길(?)을 전하고 싶은 부모의 공통된 마음에서 비롯된 것.


'너무 사랑하기에' 나도 모르게 날카로워지게 되는 아이로의 시선. 스스로 생각해도 '그 애정이 과하다' 싶으면 그 시선을 슬쩍 나 자신에게로 돌려보면 어떨까. 아직도 내 앞에 놓여있는 반 백 년의 시간. 지금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라도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것으로 인해 10년 후 내 삶이 또 다른 행복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 둘 종이에 나열하며 설렘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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