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동화 - 성냥 속 엄마의 꿈

by 봄치즈

"엄마 내가 이따 알아서 한다니깐! 나 지금 뭐 해야 하니까 나가 있어 줘."


돼지우리 버금가는 딸아이 방에 들어 선 윤미의 입에서 절로 한 숨이 나왔다. '방 치우라'고 말하는 것도 수 백번. 도저히 발 디딜 틈이 없는 이 방이 이제는 스스로 썩어갈까 걱정될 판이었다. 바닥에 흐트러져있는 종잇장들이라도 치워볼까 하는 찰나, 침대 옆 쌓아 올려진 책들 사이로 딸아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 너 방에 있었니? 방에 뭐가 하도 많으니 네가 있는지조차 몰랐네."


"알았다고. 왜 말도 없이 들어오고 그래?"


"알았어... 언제는 치워달라고 그러더니 오늘은 또 왜 이러니? 10분 뒤 밥 다 되니까 이따 나와."


나가기가 멋쩍어 한 마디 하는 윤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 배 안고파요."라고 대답하는 딸.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게 중2라고는 하지만 요즘따라 부쩍 자기 방에 틀어박혀 예민하게만 대하니 못내 서운하다.


"우리 아들, 뭐하니?"


"오노! 야야야, 그리로 가면 안되지! 오른쪽 4시 방향, 오케이, 성공!"


헤드폰을 쓰고 게임에 열중하는 아들에게 엄마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다. 헤드폰을 귀 뒤로 살짝 밀어 아들에게 다시금 부드럽게 말을 걸어본다.


"아들 배고프지?"


"아 깜짝이야! 엄마 이거 진짜 중요한 판이야. 게임 끝나면 먹을게요. 오 야야야! 아, 엄마 아니면 내가 방으로 갖다 주면 안 돼요?"


어이없는 반응에 대답조차 하기가 싫어 나온다. 남편이라도 있으면 푸념을 하겠건만 일처리가 늦어 밤늦게야 남편은 아마도 내일 아침에서야 볼 것 같다. 오늘 아침, 대학 동창 지은이와의 통화가 생각난다. 지은이는 코비드 기간 집콕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가족과의 시간도 많이 갖게 되고 주말이면 시외로 여행도 자주 간다고 하던데. 똑같이 24시간 아이들과 붙어있는 우리 집은 모두가 항상 각자 방에서 따로 노는 모양새이니.


"멍멍!"


"'우리'야, 너 밖에 없구나~"


코비드 기간 아이들의 성화에 어렵게 입양한 강아지 '우리.' 처음에는 배변 치우고 먹이 주는 것까지 모든 것을 자기들이 다 한다며 무작정 '강아지 사달라' 졸라대던 아이들이었다. 입양 후 몇 주 동안은 틈만 나면 모든 가족이 '우리'옆에 모여있게 되니'데려오기 잘했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강아지 뒤치다꺼리는 오롯이 '엄마 몫'이 되었다. 그래도 이름을 부르면 변치 않고 한걸음에 달려와주니 요즘 윤미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들의 반응에 저녁 준비도 귀찮은 밤. 사실 오늘따라 아이들의 반응이 유별난 것도 아닌데 허기진 배만큼 마음이 더욱 허해오는 건 왜일까.


"우리야 벌써 할머니 돌아가진 지 일 년이 되었어. 시간 빠르지?"


사실상 오늘이 엄마 기일. 그러나 식구들 일정에 맞춰 이번 주 토요일에 모이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과거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마다 귀신처럼 알고 윤미가 가장 좋아하는 누룽지탕을 끓어주시던 엄마. 갑자기 누룽지가 너무 먹고 싶어 윤미는 식은 밥을 한 주걱 퍼내 냄비에 꾹꾹 눌러 붙였다. 누룽지가 될 때까지 생각난 김에 엄마의 유품들을 좀 정리할까. 옷방에 들어가 구석에서 상자를 꺼내 들었다. 코비드 팬더믹으로 많은 사람들의 방문도 제한되고 모든 것을 짧은 기간 빨리 처리해야 했던 정신없었던 작년 이맘때. 이후에도 상자들을 정리해 유품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살펴볼 시간도 없었다.


여러 물건들 사이로 눈에 띄는 하나.


"응? 성냥갑이네? 아빠는 담배 안 피우시는데 왜 가지고 계셨지?"


어여쁜 꽃 한 송이와 함께 '마음꽃'이라고 쓰인 작은 성냥갑 위에는 작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마음이 추울 때 켜보세요.'


아이들에게 냉대를 당한 지금 이 순 간 딱 켜야 되는 성냥이다. 조심히 열어본 성냥갑 안에 다섯 개의 성냥개비가 들어있다. 주저 없이 한 개를 꺼내 심지를 그어본다. 심지에 불이 붙자마자 순 간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엄마 나한테 왜 말도 안 하고 내 방 치워놨어! 내가 책상 위에 중요한 거 올려놨었던 말이야. 엄마방도 아니면서 맘대로 하면 어떡해! 쾅!"


'아... 나 네...'


학교에서 돌아온 고등학생 시절 윤미의 모습. 자기 방에 들어가기 무섭과 밖으로 뛰쳐나와 빨래를 개키고 있는 엄마에게 다짜고짜 짜증을 내는 모습이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엄마가 세게 닫힌 윤미의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보는데 윤미의 현재 자기를 보는 것 같아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


'엄마도 지금 내 마음이셨겠구나.'


그 순간 꺼지는 성냥. 냉담한 사춘기 딸아이를 보며 '나는 안 그랬는데' 했었는데 나 또 한 그랬었구나 하는 생각에 엄마에게는 미안함이, 개인적으로는 '나만 그렇지 않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얻게 된다.


다시 켜게 되는 또 다른 성냥개비. 이번에는 어느 날 오전 시간인 것 같다. 아빠는 출근하시고 윤미는 학교에 간 후 막 집 청소를 마치신 엄마가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보고 계신다. 엄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지금 옆에 계시면 조용히 안아드리고 싶은데. 이때 안방에 들어가 침대 옆 탁자 서랍에서 노트를 꺼내 오신다. 빼곡히 적혀있는 그들에 이어 적어 내려가신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려는데 쉽지 않은 여정이다. 어릴 적에는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는데 어쩜 이리 기억이 잘 안 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현재 떠오르는 나의 취미는 피아노 연주 정도. 윤미가 어렸을 때부터 노래하는 걸 너무 좋아했기에 아이의 그 노래에 반주를 맞춰주고 싶어 배웠었다. 점점 커갈수록 노래는커녕 혼자 하루 종일 이어폰만 꽂고 있는 우리 딸. 과거에는 말도 조잘조잘 잘했는데 이제는 하루 몇 마디도 겨우 하는 딸이다. 윤미가 노래를 안 하니 피아노를 안친지도 오래되었다. 피아노를 다시 쳐볼까. 내가 윤미 나이였을 때 난 뭘 하고 싶었지. 오늘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또 생각해보고 생각해본다."


성냥 불꽃이 사그라들었음에도 여러 생각에 윤미는 한 참 동안 꺼진 성냥개비를 들고 있었다. 육아, 집안일밖에 모르고 사셨던 엄마는 당시 '진짜 나다움'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몇 년 후 일주일마다 한 번씩 '시 쓰기 모임'에 나가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혼 이후에 윤미가 가끔 친정에 갈 때마다 식사 시간, 최근 쓴 시라며 낭송을 해주시곤 했었는데 사실 집중해 귀담아 들었던 적은 없다. 건성으로 '응응' 거리며 머릿속은 매일 바쁜 아이들 공부과 일정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한 번이라도 잘 듣고 '엄마 너무 좋다!'라고 진심으로 해줄걸. 엄마는 어린 내가 노래 부를 때마다 그저 더 기쁘게 해 주려고 반주까지 배우셨는데 나는 그 작은 공감 하나 왜 해주지 못했을까. 윤미는 후회가 몰려왔다.


세 번째 성냥의 불빛 속 장면. 이 날은 엄마의 시 쓰기 모임 '마음꽃'에서 회원들 활동 5주년 기념으로 각자의 시들을 모아 자체적으로 책을 발간한 날이었다. 책 한 권은 가방 속에 다른 한 권은 가슴에 품고 나오시는 엄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 보였다. 집에 오신 엄마께서 한 권의 제일 첫 장에 쓰셨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우리 딸 윤미에게

엄마의 꿈을 담은 글들이

언젠가 우리 딸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되기를.


윤미야 엄마도 그랬어.

잘하고 있으니 괜찮아, 사랑해.

엄마가


"삐 삐삐 삐삐"


또 다른 눈물샘이 터지는 순간 냄비의 밥에서 탄내가 나면서 연기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후다닥 달려 나가 불을 끈 후 숭늉을 만들기 위해 물을 따라 넣어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이후 방으로 돌아온 윤미는 유품 상자 속 물건들 속에서 엄마의 시집을 찾기 시작했는데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그 당시 퇴근 후 집에 돌아오니 내 책상 위에 놓인 엄마의 그 시집 표지가 어렴풋이 기억나긴 했다. 사실 실제 출간된 것도 아니고 그저 작은 모임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책자라는 생각에 그 안의 글조차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었다. 엄마는 어떤 꿈을 담아 쓰셨을까. 그때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읽고 싶었다. 지금 내 마음과 비슷하셨을까. 윤미는 아빠께 전화를 걸었다.


"아빠, 이번 주 토요일에 엄마 같이 찾아가기로 한 거 아시죠? 그런데 엄마가 시 쓰기 모임에서 내셨었다는 시집 기억나세요? 그거 혹시 갖고 계세요?"


"아 그럼. 너 결혼하면서 나갈 때 엄마가 가져가라니 그냥 친정집에 올 때마다 본다고 놔두라고 했었잖니. 유품 상자에 넣으려다 네가 또 원치 않은 거 괜히 준다고 할까 봐 내가 다 가지고 있었다. 토요일에 갖다 주마."


토요일, 책 첫 장의 엄마의 필체와 엄마의 마음속 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윤미는 설레기 시작했다. 그 순 간 보글보글 한소끔 끓기 시작한 누룽지 소리. 따뜻한 누룽지를 한 숟가락을 떠먹으니 마치 그 옛날 식사 시간마다 항상 그러셨던 듯 엄마가 내 앞에 앉아 먹는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시는 느낌이 들며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느낌이다.


'엄마, 잊고 있었어. 나 옛날에 노래하는 것 참 좋아했던 거. 동요대회도 많이 나가고 합창단 활동도 열심히 했었는데. 엄마가 반주해주면 정말 더 신나라 했었는데. 그치 엄마?'


그러면서 불현듯, 며칠 전 단지 앞에서 봤던 공고문이 떠올랐다. '성인 구립합창단 모집.' 연령제한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인터넷으로 신청요강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미의 입가에 저절로 떠오르게 되는 미소. 엄마가 시집을 품고 나오셨을 때 그 마음이 이러했을까 싶기도 하다.


윤미는 성냥개비 두 개가 남겨진 성냥갑을 고이 닫아 엄마의 유품 상자에 남겨두기로 했다. 이미 세 개의 성냥개비를 통해 엄마의 기일날 엄마의 소중한 메시지와 위안을 선물로 충분히 받았기에.


'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아닌 '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 꿈을 채워가는 것.'


나머지 그 두개의 성냥개비는 먼 훗 날 지금의 딸 아이가 윤미의 나이가 될 즈음 찾아볼 수 있길. 윤미는 딸 아이를 위해 작은 메모 한 장 내일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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