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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하나 Mar 04. 2021

(2) (큰)돈 벌려고재테크하는거 아닌데요.



하나야, 너 주식해볼래?


타고난 성정이 남에게 강요하기를 싫어하고 먼저 다가서는 법이 없는 엄마가 내게 그리 말했다. 살면서 딸인 내게 먼저 운을 뗀 건 딱 한 번 있었는데 회사를 옮기느라 집도 연희동으로 옮긴 내가 몇 푼 되지도 않는 전재산과 시간과 건강을 쫄딱 말아먹고 인천으로 낙향을 했을 때였다.


하나야, 너 엠티 갔다 오는 게 어때?


실패를 복기하며 자책하는 탓에 밤마다 울음바다가 된다는 걸 아는 엄마가 사람들을 만나서 기분전환을 하라며 등을 떠밀어 나를 양평으로 보냈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지금의 신랑을 만났고 뭐에 홀린 듯 만난 지 하루 만에 사귀기로 했으며 한 달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이듬해 양가 부모님의 달갑지 않은 반응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식을 올렸다. 암튼 내가 더 이상 칠 바닥이 없을 정도로 나락에 빠졌을 때 던지는 엄마의 권유는 썩 힘이 크다는 걸 알기에 이번에도 쉬이 흘려듣지 않았다. 땅값이 오를 리 없는 교외에서 강아지 세 마리와 닭과 토끼를 키우며 청빈하게 사는 것이 꿈인 내게 재테크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주식'을 권유할 때는 이유가 그걸 꿰뚫어 본 혜안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왜라고 되묻지 않고 그냥 해보기로 했다.


어쩌면 내 삶의 철학이나 신념과 반대되는 주식투자를 해보기로 한 건 옴짝달싹 못하는 당시의 상황 탓이 가장 컸을 거다. 2020년 새해 들어 나는 6년 차 프리랜서로서 또 작가로서 도약을 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첫 달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역병에 장사 없다고 코로나19가 터졌고 2월부터 모든 활동이 올스톱되었다. 3월에도 나는 집에만 있었다. 4월 중순까지도 말이다. 그리고는 좀 나아졌다 싶어서 강의를 하고 수업을 듣고 바쁘게 지내려고 하는 게 아뿔싸 5월 대유행이 찾아왔다. 나는 다시 반실업자가 되었다. 여름이 되니 좀 나아지는 듯해 만회하려 애를 썼지만 가을이 되고 또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MBTI를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세 번을 넘게 검사해도 항상 ENFJ-A 유형이 나오는 나는 원래 호기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고 배움에 목이 말라있는 타입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걸 세상에 알리고 퍼뜨리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데 골방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만 있어야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어릴 때부터 극성맞고 유난스럽다는 소리를 듣던 내게 숨죽여 조용히 있으라는 건 형벌과도 같은 것이었다. 물이 바짝 말라 돌아가질 못하고 멈춘 수레처럼 나는 정지 상태였다. 그런 내게 엄마는 주식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식이라는 새로운 것을 배워보고 싶어서 도전하기로 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인터넷뱅킹도 잘 못해서 매번 ATM기의 도움을 받던 내가 토스앱의 출현으로 간신히 모바일뱅킹을 시작했는데 증권거래도 스마트폰으로 하란다. 증권회사에 가서 계좌를 활성화시키고 보안카드를 받아와서 맞은편 카페에서 앱을 깔고 해 보는데 도무지 되질 않아서 다시 회사에 전화를 하고 상담원의 도움을 받고 엄마의 손까지 빌어 한 시간 만에 회원가입을 하고 로그인을 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며 인터넷을 전혀 쓰지 못하는 주인공을 안쓰럽게 생각했던 내가 거꾸로 그 처지가 된 것만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십 년이 넘게 주식을 한 부모님 덕에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 특히 아버지가 24시간 틀어놓은 증권방송 덕분에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매수, 매도, 차트, 기관과 외국인, 일봉, 주봉, 월봉 등의 용어가 낯설지 않았다. 단타와 장투 그리고 스윙까지 왕초보가 알아야 할 투자방법도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작정 대박이 난다는 종목을 덜컥 사서 올인할 생각은 없었다. 배움이 필요해서 시작한 것이니 만큼 유튜브와 증권방송을 보며 차근차근 하나씩 익혀가기로 했다.


만약 새로운 뭔가를 계속 받아들이고 익혀나가고 싶다면 '주식'만큼 좋은 게 없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장이 열리고 시황이 바뀌는 탓에 업데이트해야 할 내용이 마치 매일 배달되는 학습지처럼 쌓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전날 분석부터 시작해 흐름과 움직임까지 이미 전문가들이 분석해서 자신들의 채널에 올려놓는데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케이블채널의 증권방송 세 군데를 틀어놓고 있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유망종목을 진단하고 시청자들의 사연을 받아 보유할지 매도할지 매수할지를 상담도 해주는데 그걸 듣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급등주에 빨리 올라타야 할 것 같고 지지부진한 보유주식은 손절이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전문가들은 많고 정보는 차고 넘친다. 그러니 담아야 할 것뿐만 아니라 걸러야 할 것을 가리는 것도 배워야 한다. 정체될 일이 없는 배움의 장이었다.


주식시장에는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전반적인 흐름은 있겠지만 수많은 종목이 제각각 파란불을 향해 달려가기도 하고 빨간불을 향해 달려가기도 하고 신호를 바꿔 타기도 한다. 덕분에 멈춰있다는 생각을 덜게 되었다. 나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잠시나마 딴 데 돌릴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 엄마의 권유는 이번에도 옳았다. 60년을 넘게 산 그 짬바는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매수: 주식을 사는 것

*매도: 주식을 파는 것

*차트: 주식가격의 변동을 그래프로 기록해 놓은 것

*손절: 산 가격보다 싼 가격에 손해를 보고 파는 것

*빨간불: 주가 상승

*파란불: 주가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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