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_1
10월이었다. 한의원을 내놓기로 결심했다. 그 마음이 정확히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그저 그래야 할 시기가 왔고, 물 흐르듯 시작했을 뿐이다.
매물을 올리자 사람들이 찾아왔다. 십수 명은 아니었지만,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다녀갔다. 어떤 이는 슬리퍼를 끄는 소리를 내며 쓱 훑어보고는 "흠" 하는 짧은 감탄사만 남기고 돌아섰다. 또 어떤 이는 마치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사람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집요하게 물었다. 나는 그들 앞에서 담담했다. 팔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설명만 건넸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직이라 믿었다.
며칠이 지나고, 다시 며칠이 쌓였다. 긍정적인 눈빛을 보였던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과는 거절이었다. 다른 곳을 택했다고 했다. 처음엔 실망감이 스쳤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묵묵부답인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거절의 말이라도 남겨주었으니까. 여기저기서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이 들려왔다. 내 눈엔 훌륭해 보이는 다른 매물들도 좀처럼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분간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구석으로 무거운 것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낸 2월부터 나는 혼자였다. 아이의 전학 때문이었다. 처음 텅 빈 숙소에 남겨졌을 때는 홀가분했다. 잔소리도, 퇴근 후의 의무도 없는 자유. 하지만 그 자유는 식은 밥처럼 금방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퇴근 후 마주하는 어두운 현관, 온기 없는 싸늘한 방. 마음이 소란할 때면 무작정 밖으로 나가 달렸지만, 날이 차가워지자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팔다리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마음도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터널 같은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가장 무심한 표정으로 한의원을 둘러보고 갔던 그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다. 권리금을 조금 조정해 줄 수 있겠느냐고. 마른땅에 소나기가 내린 듯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조율은 순조로웠고, 계약서에 도장이 찍혔다. 가계약금이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우리 11년 넘게 주 6일을 일했잖아."
휴가는 늘 짧았다. 그 짧은 며칠 동안 우리는 숙제를 하듯 명소를 찍고 맛집을 찾아다녔다. 쫓기듯 시간을 채우는 일정들. 돌이켜보면 그건, 가족끼리 오순도순 둘러앉은 따뜻한 저녁 식탁이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 급하게 입안으로 욱여넣는 음식 덩어리 같았다.
"우리 이번엔 진짜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산책하듯이, 아주 느긋하게."
문득 오래전 태국 끄라비가 떠올랐다. 시골의 낡은 게스트하우스. 창문 틈으로 스며들던 아침 햇살과 침대에서의 뭉그적거림. '오늘 뭐 하지?'라고 스스로에게 묻던 그 나른한 여유. 급할 것도, 재촉하는 이도 없던 그 시간이 진짜 휴식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그런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결말을 미리 정해두지 않은 긴 이야기처럼. 12월의 어느 날부터, 천천히, 우리 가족만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