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준비_2
지금까지 우리 가족의 여행은 늘 짧은 단편소설 같았다. 다른 아빠들처럼 금요일 저녁을 빠져나올 수 없었고, 연휴에 연차를 붙일 수도 없었다. 일 년에 고작 한 두 번. 그래서 나는 강박처럼 생각했다. 무조건 특별해야 한다고. 좋은 호텔, 비싼 식사. 그래야만 내가 아이들에게 근사한 아빠가 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호텔 침대 위에서 환호성을 질렀고, 고급 식당에서 예쁜 표정으로 사진을 남겼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엔 늘 기분 좋은 피로감 대신, 씁쓸한 뒷맛이 남았다. 이게 정말 아이들을 위한 여행일까. 내가 나의 부채감을 씻기 위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한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묵었던 특급 호텔은 거대한 유리창 같았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인 통유리창. 창밖의 세상은 선명하게 보였지만, 그곳의 바람도, 시끄러운 소음도, 비릿한 일상의 냄새도 결코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우리는 안전한 창 안에서 여행지의 풍경을 눈으로 '구경'만 했지, 몸으로 '겪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겉만 훑는 여행들이 계절과 함께 흘러갔다.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지난 추석, 중국 선전(Shenzhen)에서였다. 우리는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번화가에 있었다. 어둠이 내리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발길을 돌렸지만, 인파는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핸드폰 인터넷이 먹통이 되었다. 택시를 부를 수도, 지도를 볼 수도 없었다. QR 코드가 전부인 그곳에서, 현금 한 푼 없는 우리는 순식간에 미아가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첫째는 유모차에 태우고, 둘째는 품에 들쳐 안았다. 무작정 호텔이 있을 법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믿을 건 새벽에 호텔 주변을 달렸던 기억. 그 기억 조각만이 유일한 기댈 곳이었다.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골목을 지났다. 오토바이가 빽빽하게 세워진 노점 식당의 낯선 냄새를 뚫고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밝은 불빛들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과일 주스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다행히 핸드폰 인터넷 신호가 돌아왔다. 우리는 진땀을 닦으며 시원한 음료를 들이켰다.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산 뒤 숙소로 돌아왔을 때, 온몸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문득 봄이에게 물었다. "봄아, 이번 여행에서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
나는 화려한 야경이나 멋진 호텔, 맛있는 음식을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빠 핸드폰 고장 나서 우리 다 같이 마음 졸이면서 엄청 걸었던 거. 그게 제일 재밌었어."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잘 포장된 '정답'만 쥐여주려 했던 게 아닐까. 푹신한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관람하는 연극 같은 여행만.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에 정말 필요한 건, 낯선 길 위에서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였다. 그 속엔 불안함도 있고, 낯선 공기도 있고, 결국엔 함께 헤쳐 나갔다는 안도감도 섞여 있어야 했다.
선전의 어둑한 골목에서 흘렸던 식은땀. 막막함 뒤에 찾아온 주스 한 잔의 달콤함. 나는 그날의 의미를 오랜 시간을 돌아 비로소 깨달았다. 아이의 무심한 한마디 속에서. 우리는 이제야 유리창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