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쯤 ‘박’으로부터 짧은 문자 메시지가 왔다. “우리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요새는 어떻게 지내냐는 말도, 한동안 무슨 이유로 연락을 안 했냐는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박’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에 한동안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주변 아무도 그의 행방을 몰랐다. 연락한 사람도 연락할 사람도 없었겠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다짜고짜 이런 연락이라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쉬운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불필요한 말은 덧붙이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주소 알려주면 이따 퇴근하고 가볼게.”
알려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해 보니 편도 거리가 100킬로가 넘었다. 철원은 처음 가는데 이렇게 먼 곳이었나 싶다. 근처 대학병원이었으면 편했을 텐데. 생각해보니 원래 ‘박’은 철원 출신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강원도 막국수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었다. 관심을 가지고 먹으면 사실 막국수가 진짜 맛있어, 그때는 몰랐는데 나도 지금은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니 철원에 도착하면 자정이 넘겠다. 자정 정도에 도착할 거 같다고 '박'에게 문자를 남겼다.
급하게 나오다 보니 돈을 못 뽑았다. 결혼식에 갈 때도 간혹 그런 상황이 있어서 카카오톡으로 송금해 주고는 했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보내기 멋쩍다. 카카오 라이언이 지폐 다발을 뿌리는 이모티콘과 함께 부의금을 낼 수는 없으니까. 장례식장은 한적한 길가에 있었는데 꼴을 보니 현금인출기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목적지를 지나쳐 한 5분 정도 더 나아가니 번화가가 나왔다. 자정 무렵엔 ATM도 점검을 하는 바람에 한참 기다려서 돈을 뽑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PC방이 참 많았다. 철원에 군부대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 밤에는 쥐 죽은 듯 차분했지만 낮에는 이곳도 어떤 생기가 이글거릴 것이다.
다시 집에 돌아가는 길은 이제 자정이 훨씬 지난 새벽이었다. 서울에서는 이 시간에도 취객들이 웅성대는 초저녁 같은 곳도 있겠지만 철원은 미동도 없는 어둠이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만 기대어 다시 100킬로 정도를 갈 예정이었다. 철원은 매번 그런지 아니면 그날만 그랬는지 안개가 자욱해서 몇 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되는 길 모양을 보면서 핸들을 좌로 우로 움직였다. 그러던 중이었다. 진행 도로에 뭔가 서있었다. 급히 차를 멈추며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후 XX, 나도 모르게 욕설을 하며 한숨을 돌렸다. 고라니였다. 몸집이 크지 않으니 성체는 아니었다. 작은 짐승이 깡충깡충 위아래 좌우로 뛰었다. 불빛에 당황했을까 아니면 가족을 놓친 것일까. 고라니를 응시하며 조심히 옆으로 비켜 지나가고자 했다. 가만히 있어, 속으로 되뇌었다. 어느 정도 지나갔을 때 고라니도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홀로 불안한 듯 흔들리는 어린 눈빛이 나에게까지 연락한 ‘박’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