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도망친 곳엔 낙원이 없지 그래도 이건 너무 하잖아
※ 이 이야기는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동물, 사건은 실존과 무관합니다.
일부는 기억을 왜곡했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인생이 좀 꼬여 있었다.
씨드머니도 다 써버렸고, 멘탈도 퍼져 있었다. 그래서 잠깐 숨 좀 돌릴 생각으로 들어간 회사였다.
근데 거기, 비버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비유다. 굳이 동물로 치자면, 늘 뭔가를 갉고 다니는 느낌의 존재였다.
자료도, 시안도, 결재도, 말귀도, 분위기도. 모든 것을 굉장히 일관되게 갉았다.
비버는 일을 정말 놀랍게도 못했다. 이게 가능한가 싶었다. 경력은 나보다 두 배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비버가 손댄 일의 마무리는 항상 내 책상 위에 있었다. 더 신기한 건, 이 구조를 팀장이 꽤나 자연스럽게 방치했다는 거다.
심지어 비버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항상 세키 이시(せき いし) 이등병 일 뒷정리하잖아요.”
웃겼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전 직장에서도 ‘일은 잘하는데 성격은 미친’ 사람을 본 적 있으니까.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 진짜 머리도 좋고, 일도 잘하는 사람이 괴롭히면 그건 정말 답이 없으니까. 게다가 비버가 워낙 모든 일을 나무 갉아먹듯이 갉아대서, 난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 이상은 가는 사람이 됐다.
근데, 비버는 내 상상력을 좀 크게 만들어줬다. 비버는 단지 업무 누락만 하는게 아니었다.
자신이 중요한 일을 못하고 있다는 현실에 몹시 분노했고, 결국 어느날 비버는 긴 휴가를 다녀오겠다면서 그냥 자취를 감춰버렸다. 진짜다. 이게 가능한가 했는데, 정말 됐다. 회의에서 이름이 빠지고, 메일에서 참조가 사라졌다.
비버가 사라지고 나니 팀의 효율이 미친듯이 증가했다. 팀 분위기는 정돈됐고, 보고 라인은 매끄러워졌다.
심지어 회의 시간도 줄었다. 그렇게 우리의 숲은 한동안 꽤나 평화로웠다.
그런데, 비버가 돌아온단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나뭇잎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제야 다른 팀원들이 입을 열었다.
“아... 몰랐구나. 비버, 진짜 전설이야.”
비버는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노동법을 무기로 조직을 분해하는 리얼 기업 해체 전문가였다.
비버를 둘러싼 소문은 많았다.
어느 작업장에서는 나뭇잎 분류 기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 사수를 조정위원회로 보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책임자가 가지 나르기 동선을 가지고 자기를 괴롭혔다며, 한 달 넘게 진정서를 주고받았다고 했다.
가장 놀라운 이야기는, 이 모든 분쟁을 해결하러 온 부엉이 조사관마저 비버에게 갉혀버렸다는 점이었다.
자신을 취조하는 부엉이가 별로였던 비버는 그냥 부엉이에게 다가가서 부엉이 날개를 콱 물어버렸다고 한다.
부엉이는 위태롭게 날개를 펼쳐 달아나려 했지만, 비버는 날아오르는 부엉이에게 진흙을 던졌고,
결국 부엉이는 진흙에 맞아 날개를 다치고 말았다고 한다. 숲속의 토끼가 한 달 동안 정성껏 간호했지만,
그날 이후로 부엉이는 비버만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는 소문이 돌았다.
믿기지 않았다.
그냥 도시전설인 줄 알았다.그런데 이상하게, 다들 그 이야기를 할 때 웃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말했다.
"진짜야 세키 이시 이등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