갉아먹히던 사람이 주변을 갉기 시작할 때
※ 이 이야기는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동물, 사건은 실존과 무관합니다.
일부는 기억을 왜곡했고, 나머지는 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비버’ 같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한다.
그도, 처음부터 비버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늘 누군가를 갉아먹고 있지만, 그도 한때는 그 존재만으로 주변을 환하게 만들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귀여운 후배였고, 칭찬받는 신입이었을 수도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에게 털이 자라고, 이빨이 길어지고, 습관처럼 무엇이든 갉아대기 시작한 건.
소문에 따르면, 처음 그는 ‘버들숲’이라 불리는 회사에서 아주 안 좋은 상사를 만났다고 했다.
그 상사는 은근히 일을 시켰다. "이거 나 대신 좀 정리해줄래?" "이건 너밖에 못하는 거잖아." 그리고는 자주 칭찬했다. "진짜 잘한다. 너 덕분에 산다." 따뜻한 말 몇 마디, 몇 번의 식사, 가끔의 커피. 하지만 그는 너무 고마웠다.
그는 그 상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점점 더 무리했고, 주말도 반납했고, 초과근무도 당연시했다. 처음엔 일이었지만, 나중엔 그 사람 자체를 따랐다. 그가 시키는 건 죄다 ‘괜찮은 일’처럼 보였다. 그 상사는 점점 비버에게서 이빨을 봤다. 아주 커다랗고 튼튼해서 남을 갉을 수 있는 이빨을. 그는 처음에는 비버에게 이빨로 나뭇가지를 끊어서 모아오라고 했다. 비버가 맡은 일은 나뭇가지를 모아 댐을 만드는 거였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상사의 요구는 점점 커졌다. 나뭇가지는 나중엔 도토리 모아오기가 됐고, 나중에는 그 도토리를 갈아 ‘가루’로 만들어 팔아오라고까지 했다.
비버는 처음엔 생각을 갉아먹었고, 다음엔 자존심을,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꿈’을 갉아먹혔다. 누군가는 그가 이 시기 그 상사를 좋아했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아니라고 했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건, 그는 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어느새 완전한 비버로 변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결심했다. "더는 못하겠다."
그 말을 꺼내자, 상사는 돌변했다. "다시는 이 업계에서 못 일하게 해줄게."
그는 두려웠고, 도망쳤다. 하지만 너무 배고팠다. 그리고 억울했다. 그래서 돌아와 상사를 고발했다. 정식으로, 문서로. 그 싸움은 길고 고달팠다. 회사도 피곤해했고, 주변 사람들도 지쳤다. 결말은 희미하지만, 결국 그가 이겼다.
하지만 그 회사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여긴 아니지. 다른 데 가야 해." 때마침 외부 상황도 안 좋아졌다.
회사엔 일이 줄었다. 그는 숲을 옮기기로 했다. 조금 더 크고, 안정적인 ‘침엽수’ 기업으로.
그때부터였다. 그가 진짜 비버처럼 살기 시작한 건. 그는 자신이 당했던 방식대로 사람들을 다뤘다. 칭찬과 관심으로 유인하고, 필요 없어지면 갉아냈다. 상처받은 마음으로, 결국 주변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실수하면 남 탓을 했다.
"이 사원, 평소에 조심성이 없더라." "저번에 보니까 박대리, 저걸 보고도 안 챙기더라."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누군가를 ‘예비 방화범’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의 말도 잘 듣지 않았다. 항상 화가 나 있었다. 비버가 태운 사람들은 재가 됐다. 정말이지 마음이 까맣게 타버렸다고 했다. 비버도 속상했다. 항상 뭔가를 갉아야 직성이 풀렸으니까.
그렇다고 비버가 맨날 화만 냈던 것은 아니다. 어쩔 땐 정말 밝았다. 근거 없는 희망에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다를 거야." "다음 회사 가면, 난 잘할 수 있어." 이 희망은 결국 비버를 움직이게 했다. 비버는 더이상 주변을 갉아먹고 싶지 않았다(고 당시는 생각했다) 하지만 댐을 쌓는 것밖에 못배운 비버는 댐쌓기가 필요한 숲으로 가야했다.
그는 예전 상사를 협박했다. "다른 댐 작업장에 추천서를 써줘. 그래야 떠나줄게." 상사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추천서를 써줬다. 비버가 떠난 뒤, 그 회사는 회복하는 데 5년이 걸렸다. 팀워크는 망가졌고, 신뢰는 무너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부 팀원들은 더 단단해졌다. 그 과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비버는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 거대한 댐을 공사 중이라 바빴고, 사람 손도 부족했다. 게다가 추천서도 있었다. 그의 추천서엔 ‘유능함’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본 팀장은 고민 없이 그를 뽑았다.
그때 아무도 몰랐다.
비버가 또 다른 전설을 쓰러 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