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이후 남겨진 사람들에 관하여
나는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8년째 혼자 산다. 2년여 전 초여름의 일이다. 오전 11시반 경 언제나처럼 거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출근한 것이 분명한 옆집 남자가 집에 뛰쳐들어가더니 짐승처럼 절규하기 시작했다. “OO야! OO야!” 그의 울음소리는 아파트 복도를 가득 채웠고, 나는 직감했다. 그 집 여자,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옆집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5세쯤 된 어린 아들이 함께 살았다. 부부는 30대 중반의 또래였고, 1-2년 전 처음 이사 오기 전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러 그들이 방문했을 때 처음 마주쳤는데 부부 모두 외모가 눈에 띌 만큼 뛰어났다. 모델같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이가 집 안에서도 괴성을 질러대서 뭔가 상태가 정상적이지는 않겠구나 추측은 하고 있었다.
남자가 짐승처럼 절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몸을 파란색 부직포로 감싸고 신발까지도 씌운 응급 구조대 서너명이 도착했다. 공포를 자아내는 비주얼이었다. 태어나서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서 처음 봤다. 나는 문을 빼꼼히 열어 지켜봤다. 그들이 남자에게 부인에 대해 물어보는 걸 들었다. 지병이 있었냐는 질문에 남자는 건강했다고 했다. 이름과 생년도 들었는데 지금은 잊었다. 나는 조금 더 과감하게 우리집 현관을 나서서 그 집을 들여다 보는 데에 이르렀다. 호기심과 충격이 나를 이끌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처음으로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현관은 신발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 어두운 집은 아니었지만, 어린이 장난감이며 생활 용품들이 지독하게 어지럽혀져 있었다. 거의 '궁금한 이야기 Y'에 나올 법한 집의 상태였다. 입주할 무렵 아름답게 인테리어 공사를 했던 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분명 가정주부인데… 우울증을 앓지 않고서는 이런 상태로 집을 방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지난 몇달간 그녀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소리조차 들은 기억이 없다. 남편이 저녁에 퇴근하면서 “xx야 아빠 왔다!” 하며 외치던 소리와 아이의 괴성만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증거였다.
구조대원들은 방에서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는 밖에서 눕혀져 있는 그녀의 다리를 봤다. 움직이지 않았다. 망연자실한 남자에게 말했다. “혹시 도와드릴 일 있을까요?” 그러자 울먹이던 그가 말했다. “아이 좀 봐주시겠어요? 곧 장모님이 와서 데려가실 거에요.”
나는 아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는 신발도 신을 줄 몰라 나를 맨발로 따라오려 했다. 손에는 종이봉투 하나를 꼭 쥐고 있었고, 그 안에는 만 원, 오천 원, 천 원짜리 지폐가 들어 있었다. 속눈썹이 길게 난 그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몇 살이야?”, “이름이 뭐야?” 아무리 물어도 대답은 커녕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계속 봉투에서 지폐를 꺼내서 바닥에 나란히 늘어놨다 봉투에 다시 넣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냉동실에 있던 쭈쭈바를 꺼내 건네줬다. 아이는 조용히 받아들고 무표정하게 빨았다. 이 친구는 생이 끝나는 날까지 엄마가 죽은 것도 모를 테고, 말도 못 하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겠구나. 내가 낳은 자식이 나를 인식하지도, 나와 소통하지도 못하는 현실을 감내하며 아이를 키워야 했던 어미의 심정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 남자는 곧 장모님이 올 거라고 했지만, 끝내 나타난 건 그녀의 언니였다. 장모님을 기다리기 위해 우리집 현관문을 빼꼼히 열어뒀는데, 엘레베이터 1층에서부터 아파트가 떠나가라 통곡 소리가 들렸다.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이 걸맞는 짐승같은 울음 소리였다. 엘레베이터 앞으로 다가가니 문이 열리고 젊은 여자가 차마 일어나지 못하고 무릎을 쭈그리고 있다가 그 상태로 우리집을 향해 거의 엉금엉금 기어 왔다. 언니라고 했다. 옆집 여자의 상태에 대한 느낌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뒤로도 몇달 동안 옆집 엄마의 귀환을 막연하게나마 기다렸다. 설마… 입원했겠지. 언제퇴원하려나…
엄마가 실려간 후 그 집 아이는 정확히 아침 9시만 되면 복도에서 괴성을 지르며 몇분간 뛰어다니는 일상을매일 반복했다. 아마 아빠의 출근 시간인 듯 했다. 이제그는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하니까. 그 집은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삑 하고 거슬리는 소리가 났는데 한밤에도 몇번씩 그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그 남자가 흡연을 시작한 듯 했다.
공식적으로 그녀가 죽은 걸 알게 된 건 주민등록 조사 덕분이었다. 몇달 후 조사원이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옆집 인원수가 두 명으로 기재되어 있는 걸 봤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그 여름날 이후 얼마전까지 나는 밤마다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귀신의 존재를 딱히 믿는 것도 아니지만 ‘곡성’과 같은 영화를 보면 새벽 시간에 귀신이 활동한다고 하지 않는가.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화장실 가는 것 조차 꺼려졌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 가야 할 때면 속으로 영광송과 성모송, 주기도문을 읊조렸다. 화장실에 가면서 옆집과 대면하는 거실벽이 시야에 들어오기라도 하면 어찌나 무섭던지.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옆집 남자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듯 했다. 20대로 보이는 어린 여자가 그 집을 오가는 것을 여러 번 마주쳤고, 그 남자의 향수 냄새는 복도와 엘레베이터를 가득 채울 만큼 독했다. 하지만 나를 어디서 마주치건 인사 한마디 목례 한번 없었다. 심지어 엘레베이터에 둘이 타더라도. 그날 아이를 돌봐주고, 그 집 문을 열어놓고 언니를 기다려준 나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조차 하지 않는 건 본인이 와이프의 죽음에 모종의 책임이 있어서일까 그날을 떠올리기 싫어서일까.
시간이 흘러 두세달 쯤 전에 그 집에 새로 이사를 왔다. 난 그 남자가 이사를 나간 줄도 몰랐다. 새로 이사온 사람들은 4인 가구였다. 부부와 10대 딸과 아들. 우리집을 나서다 마주친 새로운 옆집 여자와 인사를 했다. 그 남자가 이 집을 영원히 떠난 것인지 궁금해 일부러 “여기 집 사서 들어오신 거예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아뇨, 세 들어왔어요”라고 답했다. 그 남자는 집을 팔고 간 게 아니었다. 여자는 그가 근처 아파트로 이사갔다면서 바로 나에게 꼬치꼬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 아빠가 혼자 계약하러 왔더라구요. 근데 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집에 애 흔적이 안보이네요?” 하길래 “아이가 좀 아픈 것 같더라구요” 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근데 왜 애엄마는 없어요?” 하길래 “그러게요. 저도 잘 몰라요”라고 답했다. “아니 솔직하게 알려주세요. 애 엄마가 죽었어요?” 전세가 시세보다 쌌다고도 했다. 뭔가 감을 잡은 듯 했고 더 알고 싶은 게 많아 보였지만 나는 더 얘기하는 것이 겁나서 연신 모르겠다고만 했다.
그들이 이사오고 나서 나는 오히려 마음의 짐을 덜었다. 새벽에 화장실 갈 때 무서운 마음이 거의 사라졌다.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옆집 여자가 내가 현관문을 연 틈을 타 다가오더니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예전 집주인 여자가 이 집에서 죽었냐는 거다. 나는 그 여부를 모르므로 정말로 모른다고 했는데 계속 취조하듯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계속 진짜로 모른다고 했다. (사실이니까) 그랬더니 그녀가 “제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이 집에 이사오고 가위에 눌려요. 우리 아들도 그래요.” 소름이 돋았지만 내가 할 말은 없었다. 내가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간 안그래도 싸가지인 집주인 남자가 나한테 무슨 법적 책임을 지게 할 지 알 수 없으므로…
내가 2년 동안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기 힘든 피해를 입은 건 사실이다. 매일 아침 울리던 아이의 괴성, 아파트에 떠나가게 퍼졌던 남자의 절규, 그리고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인 그녀의 맨다리. 누가 어찌 그 기억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한때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하나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나 말고도 새로운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어 버렸다. 옆집 주인 남자가 한없이 원망스럽다. 집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면 그걸 세입자에게 알리는 것은 의무일까? 나라면 그렇게 했을까?
언젠가 꼭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었는데 새 이웃이 내게 그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 다시 여름이 다가온다. 오늘 밤도 나는 조용히 불을 끄고 잠을 청할 것이다. 새벽에 잠을 깨지 않길, 그리고 하늘나라의 그녀가 평안하길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