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맞습니다.”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던 두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원작에서 언급된 현명한 왕은 정확한 판결을 이유로 아이에게 해가 되는 명령을 내렸고, 그 덕분에 진짜 어머니가 누군지 찾아낼 수 있었던 이야기 말입니다. 요즘에는 출생신고가 있으니 이와 같이 황당하게 아이를 두고 싸울 일이 없습니다만, 열 달 동안 힘들게 낳고 눈물과 사랑으로 기른 아이를 두고 재판까지 했던 이 아이의 어머니의 심정이 어떨지는 머리로나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작품의 탄생이라는 것은 육아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글이든, 그림이든, 영상이든, 어떠한 매체를 통해 어떠한 시대에 태어난 작품이든 그렇습니다. 단순한 부가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무에서 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는 상당한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것이 마땅히 금전을 생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과연 이것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의문을 갖는 자기 자신 또한 고통의 창작자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고통을 수반하여 마침표를 찍게 됐을 때, 그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만들면서도 고개를 이 쪽으로, 또 저 쪽으로 갸우뚱하며 반신반의했었는데 이제 온전히 두 발로 서 있는 자신의 작품을 보게 된다면, 만들 때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자부심과 고양감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가 됩니다. 설령 아직 부족함이 많이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자신감은 부족할지언정, 적어도 내가 온전히 하나의 존재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만큼은 쉽게 꺾이지 않는 아름드리 나무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작품의 탄생은 곧 출생과 육아이기도 합니다. 뼈를 깎고 부러뜨리는 고통으로 아이를 낳고, 셀 수 없는 밤을 눈물을 훔치며 지새우다가도, 아이의 손가락 한 번에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때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의 행동에 화를 내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더라도, 새근거리는 아이의 숨소리와 살포시 감은 눈을 보면 몇 번이고 미안하다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게 되는 것.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더라도, 내 품에서 자라고 태어난 아이가 저렇게 컸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고 웃게 되는 것.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맞습니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연한 것을 지켜주는 것이 현대 사회의 법과 규칙일 것입니다. 우리가 번거롭더라도 각종 출생신고, 건강검진 등을 통해 아이의 출산 이후 동사무소를 몇 번이고 들락거리는 것은 결국 황당하면서도 일견 무서운 분쟁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힘든 세월, 고통을 감내하며 기른 아이를 두고 내 아이임을 증명하라는 재판을 하라니. 요즘이야 유전자 검사 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증명 방법이 어떻게든 있겠습니다만, 그런 분쟁이 생기는 것 자체가 상당한 스트레스일 겁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번에는 육아에서 작품으로 생각을 흘러가게 해봅니다. 몇 날 며칠, 혹은 몇 달, 혹은, 몇 년 혹은 몇 십년을 갈고 닦아온 내 작품을 두고 다른 사람이 내 것이라 주장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답답한 일일까요. 심지어 그 작품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득한다면? 오히려 원작자를 두고 표절이라 칭하며 웃음거리로 만든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억울하고 부당한 일일까요. 또는, 어렵게 발표한 작품을 누군가가 잘못된 방법을 통해 아무런 대가없이 향유하고 있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황당한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저작권이라는 것은 결국 창작자와 작품을 동시에 지켜주는 정당한 권리이며, 다양한 작품의 탄생을 권면함으로써 문화적 발전에 기여하는 비옥한 토지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출생신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듯, 저작권도 그 존재 자체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탐내지 않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 여러 작품과 그 창작자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비옥한 토지에서 수없이 많은 잡초가 자라날 것입니다. 관리되지 않은 토지에서 뿜어내는 것은 악취와 해충이며, 행인들의 민원일 것입니다.
“이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맞습니다.”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전쟁을 이겨내고 그 어느 나라보다 단단한 행정 체계를 구축한 우리나라의 육아 환경처럼, 결국 우리 모두 견고한 저작권과 다른 작품에 대한 존중, 그렇게 자라난 성숙한 의식으로 다양한 작품을 길러내는 데에 이바지 할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관심을 갖는 지금의 우리 문화가 단순한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에서 끝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잘 관리된 비옥한 토지에서 다양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길러내는, 많은 창작자의 에덴(Eden)이 되리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