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29화

아파트

by 봄단풍

쪼륵, 탁.

“아니, 단정하게 입고 오라면서. 뭐 어떻게 입으라는 거야?”

다시 한 번, 원 샷.

“화장이 뭐……. 아니 화장 하지도 않았구먼! 근데 화장을 하라는 거에요 말라는 거에요?”


또 다시, 고개가 시원하게 뒤로 젖혀지며 묶였던 머리가 반쯤 풀어졌다.

“오빠도 그랬어요? 입사할 때, 어, 어? 무슨 화장가지고 성의가 뭐?”


주리는 쌓인 게 많은 듯 했다. 대부분의 동기가 택하는 임용고시 준비 대신, 서울에서의 생계가 급해서 사설 유치원에 취직하기 위해 면접을 보던 그녀였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일반 회사의 면접보다 유치원의 면접이 보다 준비할 것이 많은 듯 했다. 일반적인 질의는 물론이고 수업 시연을 준비해야 했는데, 이는 연령별로 맞게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나이에 따라 수업의 진행 방식도 다르고, 수업 자체도 워낙 다양한 활동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준비한만큼 보여주고 시원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면접은 드물다는 것이다. 주리가 이번에 본 면접도 그랬다. 긴장하지 않기 위해 준비를 많이 했지만, 준비를 많이 한 만큼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고. 다행히 큰 실수 없이 수업 시연을 마치고 면접까지 진행해서 좋은 예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지막 원장 선생님과의 질의응답에서 큰 상처를 입은 듯 했다.


“아니, 원래 원장이 안 들어와요. 원감이나 다른 교사 이렇게 들어오는데…….”


그리고 세 번째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 결과 안 나왔잖아?”

“근데 뻔해요……. 뻔하다고. 아니 난 생각도 못했지!”


불판에 눈을 부라리며 주리는 말을 이어나갔다. 세상에. 누군가를 상담한다는 것, 아니 누군가에게 대화를 통해 힘을 주고 위로를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만약에 안 돼도. 원장이 그 모양인 곳에서는 일을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되면 돈 벌고 좋은 거고.”

“그쵸? 그쵸?”


부릅뜬 눈이 멍해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말릴 새도 없이 채워진 소주 한 잔을 다시 한 번 목 뒤로 넘겨버렸다.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너 그렇게 마셔도 괜찮아?

“괜찮아요, 저 술 쎄요.”


그렇게 마시고도 하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주리는 다시금 술잔을 들이밀었다. 거의 반 강제적으로 술을 따르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어쩐지 바로 옆에서 호준이가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마실 날도 얼마 안 남았어요.”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술기운을 빼내듯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미 고기는 다 먹고 밑반찬으로 안주를 삼고 있었지만, 만약 불판에 불이 남아있었다면 훅 꺼졌을 듯한 긴 한숨이었다.


“저 내일 내려가요.”


이번엔 내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나조차도 알기 전에, 어느새 내 입에서는 바람빠진 풍선마냥 힘없는 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면접이 마지막이었는데…….”


마지막이었는데가 어쩐지 ‘서울에 남을 마지막 희망이었는데’로 들려서,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문득 그 원장이란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당신의 딸이 유치원에 지원을 한다 해도, 똑같이 대할 것이냐고. 당신의 딸이 똑같은 대접을 받고 집에 돌아와 이렇게 힘들어 한다 해도, 당신은 ‘네가 잘못했네’라고 할 수 있겠냐고!


이번에는 나도 술잔을 입에 들이밀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입을 막지 않았다면 아쉬움과 한탄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요즘 그래도 사는 것 같았는데. 면접도 보고 채용 공고도 뒤지고, 오빠랑도 얘기 많이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그만, 주리야. 그만. 너의 한탄을 더 들었다가는, 내 마음도 같이 무너져내릴 것 같다. 마음으로는 그녀에게 손을 절레절레 젓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그저 담담히 술잔을 채울 뿐이었다.


“담담했는데, 막상 내려갈 생각하니 많이 아쉽긴 하네요.”


원주에서는 마침 그녀를 필요로 하는 유치원이 있다고 했다. 친척의 지인이 오랫동안 해온 유치원인데, 얼마 전부터 교사가 부족하다는 말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곧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친척도 바로 면접 시간을 알아봐준다고 했다. 그 말인즉슨, 만약 주리가 내려가면 굳이 서울에 올 일이 더 이상 없는 것이기도 했다.


“주리야.”

“네 오빠.”


막상 술기운을 빌리면 말이 술술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하지? 너 집 필요하냐고? 같이 살지 않겠냐고? 아니 같이 사는 게 아니잖아.


“서울에서 계속 도전해보고 싶지는 않아?”


다시 한숨과 함께 주리의 입에서 대답이 터져나왔다.


“하고싶죠. 서울에 있고 싶어요. 친구도 많고 사람도 많고, 제가 일할 곳도 더 많을테고. 근데 당장 있을 곳이 없으니까…….”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투덜대다가 겨우 풀린 주리의 얼굴에 다시금 그늘이 내려앉았다. 오늘 유독 높았던 목소리도 낮게 깔려서 조금씩 울먹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차마 우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서울에 있을 곳이 필요한 거지?”

“근데 그럴 여유가 없어요…….”

“만약에 있다면?”


자꾸 무슨 말이냐는 듯 주리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봤다. 기분 나쁜 얘기를 뭣하러 반복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그럼 서울에 있겠죠.”


주리의 얼굴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무슨 저의로 이런 무의미한 질의응답을 계속하는 거죠? 입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동그랗게 뜬 두 눈에서, 그리고 찌푸려진 미간에서 그런 질문이 흘러나왔다. 뭐하시는 거에요, 오빠?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주리야, 기분나빠하지 말고 들어. 방법이 한 가지 있어. 주리야, 네가 살만한 곳이 있어. 주리야, 아파트는 어때? 주리야, 너를 위해 준비해 둔 집이 있어. 아니, 준비한 건 아니고…….


“그럼 가지마.”


생각은 생각대로, 말은 말대로. 내가 미처 입을 가누기도 전에 제 멋대로 말이 흘러나왔다. 꼭 그럴 때는 발음도 정확하고 목소리도 또렷했다.


“가지마.”


한 번 열린 입은 닫힐 줄을 몰랐다. 설명을 요구하는 두 눈이 크게 떠진 채 계속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갸우뚱, 고개가 움직이며 느슨하게 묶인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어졌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너머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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