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편 단편소설
“저, 아저씨…….”
친구를 따라 온 도서관 휴게실에서 낯선 소년의 부름을 받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목소리가 친구의 노트북에서 흘러나오게 되면, 온갖 의심이 드는 게 정상인 셈이다. 그 친구의 취향이라든지……. 하지만 그런 의심은 금방 접을 수 있었다. 녹음된 채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대화를 원하는 어린 소년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나?”
“네. 혹시 게임 좋아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친구의 노트북은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게임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리도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는지.
“종종 하지. 왜?”
“아니…….”
여전히 기운 빠진 목소리로, 노트북은 나지막이 투정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 형은 나를 너무 아껴요.”
“아낀다고?”
되물으면서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친구가 이 녀석을 사온 지는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 그러니 살 때 친구가 노트북을 대하는 모습이 아직 며칠 전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다.
『우리 트북이!』
『적당히 해라, 진짜.』
그래, 오랜만에 산 컴퓨터. 아끼는 걸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 덕분인지 친구는, 그동안 PC방을 다니며 함께 했던 게임을 설치해보라는 내 제안도 단박에 거절해버렸다.
『우리 트북이는 오래오래 행복해야해.』
『그래서?』
『그런 폭력적인 걸 여기에 깔면 어떡해.』
채 비닐도 벗기지 않아 반질반질한 하얀 노트북을 꽉 껴안으며, 친구는 그렇게 얘기했다. 물론 요점은 폭력적이라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이 차지하는 용량이라든지, 그 덕분에 두드리게 되는 키보드라든지, 혹은 그로 인해 걸릴 과부하 등을 걱정하는 거겠지.
『야 근데 사양이 좀 아깝지 않냐?』
『아, 안돼 안돼. 다른 건 몰라도 게임은 안 돼.』
그 대답만큼은 뭐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막 새 기기를 장만한 친구의 기분을 건드리고 싶지 않아 나는 입을 다물었던 것이다.
“전 원래 다용도로 태어났단 말이에요. 게임도 웬만큼 돌리고, 사진이나 동영상 작업도 용이하면서 배터리 용량도 오래 버틸 수 있는데. 나 진짜 멋있게 살고 싶었거든요? 램 붕붕 돌려가면서, 화면 빵빵하게 출력하면서…….”
소년의 볼멘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하긴 이 아이에게 주어진 능력에 비해 친구의 계획은 소소했다. 컴퓨터가 힘들지 않을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다나.
“아니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좋은데, 그럴거면 가방에 넣을 때도 살살 넣어주고, 내 위에 책 같은 거 쌓아두거나 졸면서 침 흘리지 말고, 모니터에 먼지 달라붙으면 닦아주기라도 하지. 그런 건 하나도 안 해주면서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하게 하니까…….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싶기도 하고…….”
노트북은 자신감을 많이 잃은 모양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 끝까지 제대로 마무리가 되는 문장이 몇 없었다. 표정이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목소리.
“형이 대신 좀 말해주시면 안 돼요? 아, 저기 온다…….”
노트북 소년은 그렇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바로 그 너머에, 졸리다며 에너지드링크를 두 캔이나 사온 친구가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트북이 잘 있었어?”
“진짜 제발 적당히 좀.”
금방이라도 컴퓨터에 입술을 갖다 댈까봐 불안한 마음에 나는 서둘러 친구를 진정시켰다. 다행히 휴게실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근데 새로 산 건데 뭐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어떻게 아무 것도 안 하냐, 그래도 새로 샀는데.”
혹시나 에너지 음료를 마시면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친구가 한 캔을 다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넌지시 물었다. 게임을 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그럼 글 외에 다른 용도로 또 쓸 일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년에게는 희망이 될테니까. 나는 조용히 듣고 있을 소년이 웃을 수 있는 대답이 나오길 기대하며 친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글을 진짜 열심히 쓸 거야.”
그 다음 터져나온 한숨은 내 입에서 나온 것인지, 컴퓨터에서 흘러나온 것인지. 나는 노트북을 내려다보며 잠시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 난 할만큼 했어. 어쩐지 반쯤 열린 노트북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 문득 친구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
“너 근데 부모님이 글 쓰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어…….”
“계속 쓸 거야?”
친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과 몇 분전 들었던 소년의 목소리와 꼭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