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뉴질랜드에 와 있다. 그리하여 첫번째 사진은 멜번에서 마셨던 마지막 칵테일이고, 나머지는 뉴질랜드 사진이다. 뉴질랜드는 비행기 내리는 순간부터 그림같고 동화같았다. 정말 아름답다. 호주와 다른 매력이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쳤다. 이렇게 끝내도 되는건가 싶게 일년이 빠르게 흘러갔다. 여기 와서 아무도 사귀지 못하고 혼자 살다 돌아갈거란 예상을 했었는데, 작별 인사를 나눌 사람이 꽤 있었다. 한국에서 나는 스스로를 소극적이라고 여겼는데, 물론 그런 구석이 있긴 해도 그런 성향으로 나라는 인간 전체를 규정하는 짓은 이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예전엔 '난 여행 싫어 집에 있는 게 좋아'라고 했었는데, 집에 있는 것도 물론 무지무지 좋지만 이제는 여행도 좋아하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나 자신과 대화 나누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렇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일인지 몰랐다.
호주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 나는 뭘하고 있을까. 취업은 했을까. 뭐...어떻게든 잘 살았을 수도 있지만 여기와서 나름대로 겪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과 조그만 성과들이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것도, 이렇게 열심히 논 것도 호주에서 처음이었다. 투잡을 하면서 '이럴거면 한국에서 투잡하면서 열심히 살지 그랬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번 돈은 놀 때면 훅훅 물보다 더 쉽게 빠져나갔다.
생활이 많이 단순해졌고, 생각도 많이 단순해졌다. 스스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변했다기보다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면, 인터넷 쇼핑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 한국에서는 언제나 가격비교를 하며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고 하루종일 노트북 앞에서 전전긍긍했다. 여기선 그럴 환경도 안되고 그런데 쏟을 에너지가 없었다. 거기에 쏟기엔 아까웠기 때문이다. 영어도 해야 하고 할게 많은데. 결과적으로 '소비'라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심플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소비라는 건 매일매일 하면서도 거의 괴롭고 기분 나쁜 짓이었는데, 그에 관한 태도가 바뀐 게 내게는 굉장히 크게 다가온다.
처음 호주 왔을 때 사람들이 물었다. 네 목적은 뭐냐고. 돈? 여행? 영어? 난 아무 것도 아니었다. 계획 없이 왔다. 내가 여기서 살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인생을 좀 바꿔보고 싶어서기도 했다. 인생을 바꾸려면 살아가는 시간을 바꾸고 살아가는 공간을 바꿔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대로 다 바꿨다. 그래서 인생이 바뀌었냐면, 좀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에 숱하게 내게 물었던 돈, 여행, 영어 세 가지 항목으로 호주 생활을 회고해본다.
돈 : 호주 오기 전 백수였으므로 여기와서 조금이라도 경제활동을 했다는데 의의를 둔다. 돈 개념이 굉장히 희박해졌다. 한국에서도 돈 개념이 없었는데 거기다 호주 달러 개념까지 뒤섞이면서 대환장 파티가 되버렸다. 이만큼의 돈이 어느 정도의 양인지 모르고 냅다 쓰게 된다. 그렇기에 여행을 지를 수 있었다. 울룰루도 다녀오고, 그레이트 오션로드도 다녀오고, 필립 아일랜드도 다녀왔다. 뭐든 '이게 얼마일까?'하는 소심함부터 앞섰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그냥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 돈을 지불하고 한다. 심플하다. 어차피 내가 번 돈인데. 투잡 뛰지 뭐. 그런 마음도 생겨난 듯 하다. 쓰고 싶은데 쓰고, 덜 걱정하면서 쓴다.
여행 : 여기와서 진짜 열심히 여행 다녔다. 여행의 피곤함도 최대치로 맛봤고 즐거움 또한 알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그지행색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그지행색을 하고 다니긴 하지만 왠지 여행지에서 그러고 다니면 해방감이 느껴진다) 준비나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힘들어했었는데 그것도 그만두기로 했다. 뉴질랜드도 아무 계획 없이 왔는데 그냥 와서 동네 한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일단 오면 뭐라도 해보려고 하게 된다.
영어 : 머...호주 오기 전보단 잘한다. 그럼 된 거 아닌가.
한국으로 돌아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거다. 겁 내지 말고 살아라. 매순간 두려움이 몰려와도, 그냥 니 할 거 하면 된다.
뭘할지 모르겠으면 나가서 운동을 하자. 카페에 가도 되고. 아무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예전엔 '하루에 최소 2천자는 써야지'하는 강박이 있었다. 지금은 그것도 없다. 시간량보다 루틴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알맞는 루틴을 만들어가자. 아침에 일어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좋겠다. 일기를 쓰고, 요리를 해서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사람을 만나면서 살면 좋겠다. 책을 만들면서 살면 좋겠다.
한국에 가면 일도 열심히 하고 싶고, 친구도 사귀고 싶고, 남자친구도 생기면 좋겠다. 이런 건강한 욕구들이 호주에 와서 생생하게 살아난 느낌이다. 한국에서 어떻게 살 지 몰라서 호주에 왔고, 이제 한국에서 어떻게 살면 될 지 기분좋은 생각들을 잔뜩 안고 돌아가게 되었다.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잘했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