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의 '그녀'

여자 화장실이라서가 아니라, 진짜 여자다.

by 새봄


사무실에 있는 작은 화장실.

볼일도 볼겸 숨도 돌릴 겸 하루에 몇번은 들락거리는 장소다.

막 화장실 세면대걸레질을 마친 아주머니가 화장품이 들어잇는 종이상자(파우치가 아니라 정말 종이상자다)를 꺼내 한 구석에서 손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진다. 그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화장실의 큰 거울을 굳이 등지고

저 구석에서 손바닥만한 거울을 보며 얼굴을 매만지는 그녀는 '여자'이구나.


잘 살펴 보면 이 화장실 곳곳에는 아주머니의 소지품이 무심하게 흩어져 있다.

거울 옆에는 폴더폰을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가,

선반에는 언젠가 간식으로 호로록 마실 야쿠르트 한개가 자리잡고 있다.

공구 창고로 쓰이는 화장실 마지막 칸에는 책도 몇권 쌓여있다.

좁은 공간에서 뽀시락 뽀시락,청소를 하고 책도 읽고,

아주 작은 창가에서 봄도 느끼는 이 아주머니를 보고 마음 짠해하는 내가

이 아주머니에게는 불청객일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그녀의 종이상자가, 화려한 메이크업박스에 뒤지지 않는다.


메이크업박스.jpg

나즈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를 보며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주어진 공간에서 충분히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있는 그녀를

굳이 내가 애틋해 죽겠다는 시각으로 포장하려는 건 아닐지.

그녀가 느끼고 있을 봄을 내가 느끼는 봄과 다르게 생각한 건 아닐지.


안타까이 여길 필요도, 안쓰러이 여길 필요는 더더욱 없는 그녀의 찬란하거나 혹은 소박한 하루를

내가 마음대로 구겨놓아서는 안 될 일이다.

설령 그녀가 스스로의 인생을 아파할지라도, 잠시 그 공간에 머물었던 나에게는 판단할 몫은 없다.


이렇게 각자의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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