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누가 나를 기다려 준다는 것

by 새봄


모처럼 일찍 집에 들어갔는데 남편은 회식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당직근무에 과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터라, 남편의 귀가와 무관하게 일찍 잠을 청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 지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임산부인 나는 하염없이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편에게 심통이 났다. 아이를 준비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임신을 한 지금까지 저녁 약속을 많이 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보다 자주 , 더 늦게까지 바깥일을 하고 들어오는 아내인 주제에 지금 당장, 지금 이 순간의 남편의 늦은 귀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남편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바가지를 긁고 싶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걱정도 되고, 회사 앞에 하염없이 붙들려있는 그 처지가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감정으로 내 기분을 마무리할 수는 차마 없었다. '먼저 자라'고 말하는 남편의 말이 메아리처럼 허공에 맴돌고 머리는 갈수록 멍해지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는다.

그렇게 애타게 그의 귀가를 기다렸건만, 결국 새벽 두 시가 넘어서 남편을 맞은 나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늦게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몸을 홱 돌려 잠을 청했다. 무언의 시위였고 남편은 민망해했다. 샤워를 하고 양치를 해도 사라지지 않는 회식의 냄새에 내가 좋아하는 남편의 살 내가 가려졌다. 숨을 내뱉을 때마다 방 안을 가득히 메우는 알코올 향과 이로 인한 눅눅함을 견딜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가뜩이나 냄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임산부다.


결국 홑이불을 들고 소파로 향했다. 침대 위에 대자로 뻗어 자는 남편을 안방에 두고 나는 그렇게 쪽잠을 잤다. 쪽잠을 자면서도 서럽다기보다는, 내일과 '내 일'이 걱정됐다. 평소에도 임신 전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제대로 잠을 청한 시간이 세 시간 남짓이라니. 흐릿한 정신으로 맞아야 할 하루와 내일로 참석하기로 되어있는 행사, 상사와 함께 가야 하는 미팅과 회의, 저녁 약속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남편의 회식 때문에 부족한 잠은 내 일을 소홀히 할 핑계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난 왜 먼저 자라는 남편의 부탁에도 그리 눈을 부릅뜨고 있었던가. 회사에서 친한 나의 선배는 아내가 가장 예뻐 보일 때가 '회식하고 돌아왔는데 잔소리 없이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을 때'라고 했다. 그 이론에 비춰보면 나는 정말로 '못난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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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기다리면서 나는 나의 엄마를 떠올렸다. 나도 엄마도 잠이 많은 편인데, 평소에는 열시만 되면 잠자리에 드는 우리 엄마는 집에 사람이 모두 들어오지 않으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때로 새벽 서너 시에 들어오는 과년한 딸(바로 나)을 늘 거실에 앉아서 꾸벅 꾸벌 졸면서 기다렸다. 가끔 거하게 술 한잔 하고 들어오는 아빠도 엄마가 기다리는 대상이었다.

엄마의 기다림에는 사연이 있었다. 엄마가 대학을 다닐 때였나 보다. 큰 물난리로 버스도 지하철도 끊겼던 어떤 밤에 엄마는 서울에서 인천까지 갈 수 있는 차편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고 했다. 휴대폰도 없고 공중전화를 찾기도 쉽지 않았던 그때 엄마는 그래도 필사적으로 집에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 아빠(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딸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계실까 걱정이 되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더랬다.

혹여 이 홍수에 딸이 어디서 사고나 당하지 않았을까 걱정할 부모님을 위해 모르는 사람과 트럭 짐칸에 몸을 대고 앉아 겨우겨우 집에 도착한 이 막내딸은, 모두들 곤히 자고 있는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다음날 새벽 장사를 나가야만 했던 부모님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지워진 듯한 그 순간 모두가 잠이 들어있는 그 집이 마치 아무도 살 지 않는 빈 집 같이 느껴졌다고. 그때 엄마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정을 이루고 나면 늦은 시간 집에 들어오는 가족들에게 절대로 이런 고독을 느끼게 하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엄마는 자신이 품어야 할 가족이 생긴 뒤로는 하염없이 이들을 기다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에서 책을 읽고, TV를 보면서, '이 집에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티를 냈다. 문을 직접 열어주고 얼굴을 확인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20대의 나는 엄마가 미련해 보였고 또 민망하기도 했다. 한없이 늦는 날에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집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인데, 한눈팔지 않는 문지기에게 항상 들켜버리고 말았으니.

기다림의 시간은 왜 이리 더디 갈까. 쉬이 시간이 가지 않는 그 밤에 나는 내 문지기였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이미 엄마의 취침시간이 한참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목소리가 생생했다. 역시나 엄마는 저녁자리가 길어지는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집에서 각자의 남편을 기다리며 조근조근 수다를 떨었다. 얼른 쉬라는 엄마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마 엄마는 술기운이 오른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침대가 아닌 비어있는 침대가 있는 다른 방에서 잠을 청할 것이다. 한때는 내 방이었고, 지금도 내가 친정에 놀러 갈 때마다 짐을 푸는 빈 방이다. 나보다 더 비위가 약한 우리 엄마에게는 술냄새와 음식 냄새가 가득한 방에서 잠이 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내가 친정에 살 때도 엄마는 아빠가 들어오고 나서 내가 잠들어있는 방에 살금살금 들어와 잠을 잤다. 이렇게 결국엔 따로 잘 거, 굳이 피곤하게 왜 늦은 시간까지 잠을 못 자고 기다리나 싶기도 했지만 같은 공간에서 엄마와 함께 있는 게 잠결에도 내심 좋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엄마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통화로 미처 못한 이야기를 메시지로 적으면서 우리 딸,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아직 아빠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역시 남편이 귀가 전이던 나도 바로 답장을 보낸다. '아직 나도 깨어있다'며.

모두 잠든 집에서 오지 않은 이를 기다리던 엄마는 또 다른 고독을 느꼈겠구나, 늦은 밤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딸은 엄마를 이해하고, 또 닮아가고 있었다.

깊어가는 밤, 자는 남편을 방에 두고 소파에 누운 나는 문득 엄마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한 공간에 있다면 나는 엄마 품에 폭 안겨 잠들 수 있을 텐데. 엄마도 이제 나처럼 잠을 청할 수 있으려나. 짧은 시간이지만 깊이 주무셔야 할 텐데.

한때의 원망이 지금은 그립고 고맙다. 내가 느꼈을 법한 고독을 대신 짊어진 엄마의 세월이 미안하다. 그래서 나는 늘 따뜻했다. 지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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