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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May 16. 2019

나는 미니멀을 꿈꾸는 맥시멀리스트

미니멀라이프, 가능하긴 한걸까

"나, 미니멀라이프 도전기 쓸래." 



열 명에게 말했다. 열 명 다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미니멀라이프, 최소한의 물건을 가지고 단순하게 사는 거 말야. 요즘 트렌드잖아." 


트렌드를 모르는 아재들이라서 그런가 싶어, 나는 단어의 뜻을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몰라서 묻는 게 아니야. 그걸 네가 어떻게 써. 넌 전~혀 미니멀하지 않잖아." 


그랬다(가 아니라 그렇다). 나는 누가 봐도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보다는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라는 단어가 적합한 존재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자리 책상 위에도 온갖 잡다한 물건이 난무하다. 30m 밖에서 봐도 저 자리가 내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정리정돈과는 아주 거리가 멀고, 청소와는 담을 쌓고 산 지 오래다. 게다가 나의 취미는…쇼핑!(뭐라고!) 


그래도 다행히(?) 나의 더러움을 눈감아주는 착한 남편과 결혼한 덕분에 큰 불화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미니멀한 책상 .. 나에게도 이런날이 ..올까?

지금부터 약 5년 전, 당시 남자친구였던 현재의 남편은 나에게 "너는 매일 방을 깨끗이 정리정돈하는 편이니, 아니면 먼지가 굴러다녀도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니?"하고 물었다. 순간 나는 '이 남자가 내 방을 혹시 들여다본 건가?'라는 두려움을 느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이어 "나는 너무 깔끔한 사람보다는 차라리 먼지가 굴러다녀도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 좋아"라고 말했고, 나는 '정말 우리는 천생연분이구나'라는 확신을 가지며 쾌재를 불렀다. 


물론 우리가 결혼을 하는 데 이 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임은 확실하다. 과묵해서 좀처럼 빈말 하지 않는 내 남편이 가장 후회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중에 남편은 세심하고 꼼꼼한 사람보다는 털털하고 쿨한 사람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정정을 하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심지어 엄마는 결혼을 승낙받으러 온 남편에게 "윤서방, 반품은 안 되니 신중히 결정하게"라고 할 정도였으니. 정리정돈 불능자인 나는 주변인들의 큰 걱정거리였음이 분명하다. 


NHK 드라마 '우리집엔 아무 것도 없어'에 등장하던 과거 회상신...보는 순간 너무 우리집 주방 같아서 캡처.

미니멀라이프 도전기를 쓰기에 앞서 이렇게나 구구절절 부끄러운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일단 '나 같은 사람도' 도전을 할 수 있는 종목이라는 사실을 먼저 전하고 싶어서다. '단순하고 간소한 삶'. 미니멀라이프를 동경하게 되면서 꽤 많은 책을 접했고 그때마다 물론 좋은 팁을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질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세간에 이름을 날리는 상당수의 미니멀리스트들은 미니멀한 삶을 꾸리게 된 시작점이 비슷하다. 어렸을 때부터 정리정돈을 즐겨왔지만 '정리만으로는' 좀처럼 집이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하던 차에 결국은 '버리기'가 우선돼야 한다는 진리를 얻게 된다. 즉 그들은 미니멀리스트이자 정리정돈 전문가이며 결과적으로는 정리정돈 컨설턴트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 멋지고 동경할 만한 인물들이지만, 태생적으로 정리와는 거리가 먼 나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는 존재들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확실한 이유는 단 하나, '치우기 싫어서'다. 


2년 전, 나는 육아휴직 중이라 집에서 돌이 안 된 아기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가뜩이나 옷과 책을 포함해 내 짐이 가득한 집에 아기의 소품까지 가득 차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국민 대문, 소서, 점퍼루 등 덩치 큰 물건부터 아기의 손수건, 기저귀, 딸랑이를 비롯한 장난감까지. 거실과 주방, 방 곳곳을 물건이 가득 채웠다. 학교에 다닐 때는 엄마가 방을 치워줬고, 회사에 다닐 때는 집에서 잠만 자니 몰랐는데 하루 종일 집에 있다보니 물건에 잡아먹히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던 어느 주말, 친구의 초대로 집들이에 참석하고는 '눈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디자이너인 내 친구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패션 소품을 사 모으기를 좋아하고, IT기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의심의 여지 없이 그의 집은 잡다한 소품이 가득한 '덕후(오타쿠)의 공간'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차였다. 하지만 웬걸, '너희 집이 뭐 별거 있겠니?'라고 콧방귀를 뀌며 방문한 그 집은 그야말로 모델하우스가 따로 없었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우리 부른다고 너무 고생 많이 했겠다. 하루 종일 치운 거 아니야?" 라고 묻는 내 질문에 친구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응? 안 치웠어"라고 대답했다. 


'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응? 안 치웠어…' 


메아리처럼 그의 대답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안 치우고도 이렇게 깔끔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냐!"


"물건이 없어서 그렇지 뭐" 알고보니, 그는 새 옷을 살 때마다 기존의 옷을 동료들에게 처분하거나 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이사를 자주 한 덕분에 그때마다 물건을 버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다. 


내 친구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이날의 대화로 나는 막연하게나마 미니멀라이프에 한 걸음 다가섰다. 물건이 없으면 되는 거구나. 물건이 없으면 치울 것도 없구나, 아무 때나 친구를 집에 부를 수 있구나. 야호! 



믿을 수 없게도  친구의 작업실은 이런 식이었다. (친구의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최대한 비슷한 사진을 찾았다)

물론 이제야 도전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건, 자백하건대 과거 2년간은 여전히 물건을 쌓아두고, 치우지도 못한 채로, 그리고 친구를 아무 때나 집에 부르지도 못한 채로 살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연한 계기로 '미니멀 게임'을 시작하며 실제 미니멀라이프에 반 발짝 발을 디딘 것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난 후이다. 


본격적인 미니멀라이프 '실전' 도전기는 다음 편부터 시작된다. 아직 나의 도전은 진행 중이고, 여전히 어느 누구도 내가 '미니멀리스트'라고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시작이 반이니 절반은 성공했다고 스스로 믿어본다. 그리고 이 도전기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나도 나와 같은 처지의 독자들도 조금은 더 '미니멀'해졌기를 기대해 본다. 



NHK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 것도 없어' 에 나오는 미니멀한 주방

TIP.미니멀라이프 도전 초보에게 추천해요! 일본 드라마 '우리 집에는 아무 것도 없어' 

2016년 방영된 드라마로, 최소한의 물건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한 '버리기 변태'가 주인공. 총 6부작, 1회당 30분의 '매우 미니멀한' 분량이라 부담없이 가볍게 보기 좋다. 드라마 속 깔끔한 집을 보면 눈이 즐겁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버리기 Tip'이 꽤 도움이 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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