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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May 23. 2019

미니멀해지려면 미니멀 게임을 하자

하지만 게임에는 보상이 있어야지?

미니멀게임에 동참하는 사람들 `#minsgame`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큰소리 한번 내지 않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밀이 뭡네까?"(인민군 장교) "뭐를 많이 먹여야지"(동막골 촌장)


2005년 개봉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대목이다. 미니멀 라이프 도전과 `뭘 많이 먹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나를 이 길로 이끈 남편의 `위대한 영도력`이 바로 이 한마디다.


"한 달 성공하면 가방 하나 사줄게, 세 달 성공하면 세 개!" 엇, 그래? 해볼 만 한데?


2008년 7월 5일, 나는 언제나처럼 퇴근길 지하철에서 휴대폰으로 다른 이들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염탐하고 있었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지만 여전히 SNS상에서는 친구로 등록되어 있는 한 지인이 올린 글에 `미니멀 라이프 카페`에 대한 내용이 언급돼 있었던 게 시작이었다. 퇴근길 소고기를 사 오라는 아내의 요구에 회사 근처에 있는 창고형 할인매장에 들러 포장되어 있는 소고기(네 근, 2.4㎏ 정도)를 덥석 집어왔는데, 아내가 열혈 활동하는 `미니멀 라이프 카페`에 이 사진을 올려 인기글이 됐다는 게 이 글의 주제였다. 이 사진에 어떤 댓글이 달렸기에 SNS에까지 올렸을까 싶어 카페를 굳이 검색해 방문했고, 가입을 해야 게시글을 볼 수 있는 관계로 내친김에 가입까지 했다(지금 돌아보니, 퇴근길이 길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딴 길로 쉽사리 새는 성격 덕분에 정작 회원 가입 후 게시글을 검색하기로 했던 기존 계획을 잊은 채 가장 눈길을 끌던 `게임&미션`이라는 게시판을 클릭했다. 여기서 진행하고 있는 `미니멀 게임`은 나를 신세계로 이끌었다. 게임의 룰은 간단했다. `날짜 수대로 버리는 것`. 1일에는 1개, 2일에는 2개를 버리고 30일에는 30개의 물건을 버리는 것이다. 꼭 1일부터 게임을 시작할 필요도 없다. 나의 경우 5일에 이 게임을 접했으니 그날에 맞춰 5개를 버리면 게임이 시작된다. 이렇게 한 달의 게임이 끝나면 30일인 달에는 465개, 31일인 달에는 총 496개의 물건을 버릴 수 있다. `치우지도 않았는데 깨끗했던`, 하지만 2년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친구의 집이 갑자기 떠올랐다.


`잡동사니를 비우면 우리 집도 조금은 깨끗해지지 않을까`


퇴근 후 아기를 재우고, 남편과 맥주 타임을 가지며 이 게임을 `전파`했다. 흥미롭게 듣던 남편은 앞서 언급한 대로 "성공하면 가방 하나 사 줄게"라고 대답했다(후에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정말 물건을 사지도 모으지도 않는, 그야말로 미니멀리스트다). `정말 한 달 동안 물건을 400개 이상 버릴 수 있을까` 망설이던 나는 당장 고민을 끝내고 집 안에서 버릴 물건들을 찾아 헤맸다.



남편아, 이것도 사줄거니?(물론 갖고는 싶지만, 소심한 나는 성공의 댓가로 `샤넬백`을 요구하진 않았다)

6개의 물건을 찾는 데는, 놀랍게도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첫날 내가 버린 물건은 3년 동안 입지 않았던 블라우스와 고장 난 전동칫솔, 본체는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홀로 집 안에 남아 있던 정체불명의 케이스, 아기 액세서리에서 떨어진 꽃, 다용도 훅(걸이)이었다.


나의 첫 버림 목록은 '누가 봐도 쓰레기'다. 하지만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몇 달 동안 집에 방치해 둔 채였으므로 버리기 전에는 쓰레기가 아니라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짐'이다.


7일, 8일…20일, 21일…30일… 한 달간의 미니멀 게임은, 너무 쉬워서 민망할 지경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화장품들과 음식, 이제 전혀 사용하지 않는 제빵 도구, 물려받았지만 도무지 손이 안 가는 아기 옷 등 '도대체 왜 내가 이걸 갖고 살았지' 궁금한 물건들이 집 안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미니멀 게임에 동참하려는 사람들을 보고 싶으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MinsGame을 검색해 보면 된다. 네이버의 미니멀 라이프 카페에도 각자 그날의 미니멀 게임 결과물을 공유하는 게시판이 있다. 게임을 하고 있다는 점을 타인에게 알리고 공유하며 스스로에게 일종의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날그날 버릴 물건들을 찍어 올리는 것이다. 이들의 게시물을 살펴보면 헉, 아깝게 이런 걸 버려?라고 생각할 만한 물건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의 첫 결과물이 그렇듯 누구나 수긍할 만한 '버릴 만한 물건'이다.


나의 경우는 부끄러운 내 전리품을 타인에게 공개할 의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남편과 둘만 사용하는 SNS 계정에 그날그날 사진을 찍어 올리기로 했다. 물론 가끔은 버리기 망설여질 때도 있었지만 일단 그날의 개수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에 가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나처럼 게임을 시작했다고 해서 꼭 타인에게 공유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다만 사진을 찍어 보관해 두면 꽤 괜찮은 기록이 된다.


나의 미니멀게임 기록사진들


반년이 지난 지금, 무더웠던 여름날 나의 `버리기 대작전` 한 달 코스가 마무리됐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남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뿌듯함이다. 450여 개의 물건을 가득 쌓아 놓는다면 아마 최소 3.3㎡(1평)의 공간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후 6개월간 단 한 번도 당시 버렸던 물건들을 다시 상기하며 `아깝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것. 단 한 번도 필요에 의해 찾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한편 아쉬우면서도 또 놀라운 점은 한 달의 미니멀 게임이 마무리됐지만 우리 집에는 여전히 물건이 가득하다는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은 하지 마시라, 미니멀 게임을 한 달 완료한 후 집을 방문한 친구와 가족들은 하나같이 `뭐가 변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깔끔해졌어`라는 소회를 밝혔다! (그들은 내가 미니멀 게임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하여튼, 한 달간 무지막지하게 쓰레기를 버리고 나는 정말로 원하는 가방을 얻었다(하하). 물건을 줄이는 대가로 물건을 사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은 기쁘게 감수한다. 대신 거대한 쓰레기 산을 버린 아내의 노고를 치하하며 작고 예쁜 가방을 선사한 남편의 `영도력`에 무한 감사한다.


만족할 만한 보상을 얻고 나서 내친김에 두 번째, 세 번째 미니멀 게임도 진행했다.

하지만 첫 달만큼 수월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니멀 게임의 난도는 높아진다. 그냥 `쓰레기`는 점차 사라지고 `예쁜 쓰레기(예쁘지만 필요는 없는 물건들)`를 처분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버리기 기술이 필요하다. 다음 편에서는 예쁜 쓰레기들을 버리기 위한 `버리기 팁`들을 소개해 보겠다.


TIP. 미니멀 라이프 초보에게 추천해요. '워너비 미니멀리스트'들의 성지, 네이버 '미니멀 라이프(미라)' 카페(https://cafe.naver.com/simpleliving)

내가 '미니멀게임'을 영접하게 된 곳으로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이 찾는 대표 온라인 카페다. 미니멀게임을 진행 중인 사람들이 자신의 기록을 업로드하기도 하고,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얻게 되는 다양한 정보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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