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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Aug 11. 2020

공간의 변신은 무죄

의외의 공간에 수납하기


 TV나 인터넷에서 `살림의 달인` `수납의 달인`이라 불리는 전문가들이 틈새 공간을 찾아내 물건을 수납하는 것을 볼 때면 마치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작은 사각지대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이들이 내심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괜히 달인이겠는가. 눈으로 보기만 할 때는 분명 획기적인 데다 따라하기도 쉬운 `꿀팁`이었지만, 실제로 내가 하면 왜 어설프고 더 지저분하기만 한지. 그들이 마법사라면 나는 그저 머글(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을 일컫는 말)에 불과할 뿐이었다. 우유곽을 잘라 속옷 상자로 변신시키고, 옷걸이를 프라이팬 거치대로 바꿔 작은 공간에도 더 많은 물건을 넣을 수 있도록 알려주는 그들의 `금손`을 나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었다.이렇게 내 삶에서 정리라는 단어를 영원히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미니멀라이프를 영접하고 조금의 희망이 생겼다. 내 `똥손`으로 없는 공간을 새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비워서 만들어진 공간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정리의 마법사`라 불리는 곤도 마리에가 물건에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해본다. 어차피 정리를 하지 않는 내 물건들에 정해진 자리는 없었다. 그들에게 특별한 자리를 만들어준다면, 그것이 그들과 나를 모두 편안하게 해준다면?

`버리는 즐거움`의 저자 야마시타 히데코는 주방에서 밀폐용기를 보관할 곳을 찾다가 의외의 수납공간을 발견하는데, 바로 `냉장고`였다. 그날 먹을 것만 구입하기 시작하면서 텅텅 빈 냉장고에 밀폐용기를 넣어두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음식을 밀폐용기에 담으면 냉장고에 넣어야 하는데, 음식이 없다고 이 용기를 굳이 다른 수납장에 보관하는 게 낭비라는 생각이 든 게 아닐까. 반찬이 들어 있든 들어 있지 않든 늘 냉장고 속이 밀폐용기의 자리가 된 셈이다. 그의 아이디어에 무릎을 쳤다. 나 역시 반찬이 들어 있지 않은 반찬통들을 쌓아놓는데 상당한 공간을 허비하고 있는데, 냉장고 한 칸이 통째로 비어있다면 충분히 넣어둘 만할 듯했다.


아직 냉장고를 완전히 비우지 못한 나는 그의 아이디어에 충분히 감탄만 하고, 대신 나도 이렇게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며 비워낸 공간을 활용할 만한 곳이 있나 찾아봤다. 그때 내 눈에 띈 곳은 빌트인 식기세척기다. 그릇이 많고 설거지를 몰아서 하던 때에는 못해도 하루 건너 한 번씩 사용하던 식기세척기지만, 그릇을 줄인 후에는 그때 그때 설겆이를 하게 되어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뒀다. 이 안에 냄비와 프라이팬, 곰솥 등 조리도구를 넣어두면 어떨까 해서 실천에 옮겨봤다. 공간이 넓고 구획이 나뉘어 있어 겹치지 않게도 보관이 가능했다. 물론 냄비와 프라이팬 숫자를 확 줄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책을 비워 공간이 생긴 서재의 책장 위칸에는 아기들 옷을 보관하기로 했다. 책이 들어가 있던 공간에 꼭 맞는 수납상자를 구입해 당장 입지 않을 옷들을 보관해놨다. 봄가을·여름·겨울 등 상자 앞에 작게 계절만 라벨링했다. 봄이 오면 `봄` 상자에서 옷을 꺼내면 되도록 했다. 겨울이지만 따뜻한 나라에 여행을 갈 때는 `여름` 상자에서 옷을 꺼내면 되어서 무척 편리했다. 과거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창고에 겹겹이 쌓아둔 상자를 꺼내 옷을 넣고 빼는 일을 반복했는데, 이러한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아기들 손이 닿는 책장 아래 칸에는 큰아이 장난감을 넣었는데, 어린이용 장난감 장을 따로 사지 않아도 충분히 아이가 꺼내 가지고 놀 수 있게 됐다.


`미니멀 육아의 행복` 저자 크리스틴 고는 주방 서랍장 가장 아래 칸을 아이들용 주방기구로 채웠다. 엄마가 설겆이를 하거나 요리를 할 때, 식탁에 앉아 잡지를 볼 때면 알아서 그 서랍장을 열고 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금 더 편한 육아를 지향하기 위한 아이디어지만 주방에 수납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신발장이나 현관 팬트리에 코트를 수납하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꼭 필요한 신발만 갖고 있다보니 신발장에 공간이 남고, 밖에서 입은 옷을 바로 현관에서 벗고 들어오면 오히려 위생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정리의 기본은 물건의 자리를 정하는 것이고, 이 물건을 사용하고 나서 그 자리에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곤도마리에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내가 쓰는 물건의 자리를 어디로 지정할지는 스스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다소 의외의 공간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상해 보이는 수납이라도 전혀 상관 없다. 다만 물건 하나하나가 있어야 할 장소를 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공간`이라는 것. 그러기에 비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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