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봄 Aug 11. 2021

내집은 전문가보다 내가 낫지

내 물건과 내 공간 챙기기


"힘들면 내가 혼자 할 테니 주말에 장모님 댁에 가서 좀 쉬어."

4년 전 남편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우리는 첫 번째 이사를 준비 중이었다.


"이사하면서 이사업체에서 다 해줄 텐데 굳이 왜 지금, 매일같이 짐을 정리해야 해?

나는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퇴근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시작되는 집 정리가 너무나도 싫었다. 내 눈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데 버리고 싶은 것을 찾아보라고 묻는 남편도 야속하고, 이삿날 업체에서 차곡차곡 쌀 짐을 왜 지금 우리가 몇 날 며칠에 걸쳐 미리 싸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그보다는 남편과 오붓이 식탁에 앉아 이제 곧 떠나야만 하는 우리의 첫 신혼집에 대한 아쉬움을 나누고 싶었다. 한 번이라도 더 동네 맛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결혼 전 우리가 이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추억이나 이 집에서 보냈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 남편은 이런 나를 철없는 아이 보듯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 정리를 안 하면 어차피 이사 가서 해야 해.그땐 이사업체가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도 몰라서 치우기 더 힘들어진다고."

시무룩한 나를 보면서 남편은 한마디 더 했다. "그러니까 내가 할 테니 넌 그냥 쉬어. 같이 하자고 말 안 할게."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남편은 정말 천사였다 싶은데, 그때 이야기를 하니 남편이 웃는다. "그땐 네가 임신 중이었으니까 진짜 나 혼자 하려 했던거야. 지금은 같이 해야지." 아… 그랬던 거구나.




두 번째 이사를 준비하는 내 상황은 사실 더욱 열악해졌다. 아기가 둘이나 생겼고,하루종일 육아에 치이고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이사 준비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한 달째 낫지 않는 감기로 체력도 방전 상태. 하지만 4년 전 철부지 시절처럼 군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사 한 달 전 부터 하루 한 시간, 못해도 30분씩은 남편과 함께 (나름대로)열심히 공간을 정리한다. 이사 가서 장소를 옮겨야 할 짐들도 미리 체크해둔다. 이삿짐 정리를 잘 해주기로 유명한 일명 '명예의 전당' 팀의 예약을 잡아뒀지만 그분의 솜씨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


미니멀라이프에 '도전'만 한 지 1년이 지나고 나서 나는 특히 정리에 있어서는 스스로 움직여야만 한다는 법을 배웠다.내가 내 공간을 알아야 하고,내 물건의 위치를 스스로 정해야만 그 위치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곳에 그 물건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다.


세계적인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자신에게 컨설팅을 받은 고객 중 정리를 위해 다시 본인을 찾은 고객은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비즈니스로는 치명적일 수 있지만 곤도 마리에는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자신이 많은 고객들에게 지지를 받는다고 말한다.


그 비결은 '수납 노하우보다는 정리에 대한 가치관을 바꿔주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답이다.

나는 그의 책과 영상을 보면서 그의 이러한 이야기를 '직접 정리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곤도 마리에: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시리즈는 그가 미국의 맥시멀한 가족들의 집을 컨설팅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영상에서 곤도 마리에는 주기적으로 각 가정을 방문해 단계별로 정리해야 할 공간을 지정해주고 정리법을 알려준 후 떠난다. 이후 사람들은 그녀의 조언대로 집을 치우기 시작한다.


컨설팅을 받은 가정 중 우리 집과 매우 비슷한 환경의 가족이 있었는데, 두 자녀를 재우고 매일 밤마다 집을 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은 깨끗해 졌지만 인터뷰를 하는 엄마 아빠의 얼굴은 매번 점점 더 수척해졌다. 심지어 엄마의 입술은 부르터 핏자국까지 생겼다.


이렇게 고생을 해 봐야 자기 집의 물건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그래야만 다시 집이 물건으로 가득 차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나는 그녀의 부르튼 입술을 보며 다시금 되새겼다.




3년 전 전문가들이 '정리 불능'인 집들을 찾아 청소와 정리를 도와주는 TV프로에 한 가수가 나온 적이 있다. 이사한 지 15년 차인 그의 집은 마구 방치되어 있는 물건들로 전혀 공간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이미 그가 정리 프로그램의 '재수생'이었다는 것이다. 7년 전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 아름답게(?) 탈바꿈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다시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만 좀 정리하고 자자!를 외치고 싶을 때 나는 그 가수의 집을 떠올린다. 입술이 부르트더라도 내 힘으로 내 물건과 내 공간을 챙겨야 한다. 그래야 나 역시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던 그때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자발적 미니멀라이프 도전 성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