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빙자한 사리사욕 채우기
외출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준비물은 화장품 파우치다. 원체 화장을 진하게 하는 편이 아니라 작은 주머니 속에 담길 정도지만 그마저도 들고 다니기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다. 급하게 출근을 하며 파우치를 놓고 나왔을 때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출근 전 집에서 메이크업을 하기는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다. 초췌한 맨얼굴로 출근해 사무실 화장실로 직행한 후 허겁지겁 간단히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워킹맘이 비단 나뿐일까.
물론 화장 그까짓 것, 포기하고 당당히 '생얼'로 다니면 되지 않겠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런 당당함을 가진 분들을 응원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과 취향은 모두 다른 법. 나는 내가 예뻐 보일 수 있을 만큼은 예뻐 보여야 왠지 더 자신감이 생기는 타입이다. 직업적인 특성상 자주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참석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면서 많은 물건을 버리고 비웠지만 화장품 파우치만은 비울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변호하다보니 서론이 길었다.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 내 화장품 파우치 속 친구들을 간단히 소개해보기로 한다. 일단 뜨거운 자외선을 막아 내 피부를 지켜주면서 동시에 얼굴의 잡티를 숨겨줄 선 쿠션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속눈썹을 하늘 높이 올려줄 속눈썹 뷰러와 이들을 오랫동안 고정시켜줄 마스카라도 빠질 수 없다. 속눈썹만 챙기면 눈썹이 섭하니, 눈썹 연필도 챙겨야 한다. 아파 보이는 입술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립스틱도 필요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은 '굳이 매일 화장을 해야 해?'라는 것이었다. 어느 주말, 친한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아이들을 '꽃단장'시킨 후였다. 예쁜 머리핀을 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예쁜 신발을 신긴 두 공주를 겨우 차에 태우고 나서야 정작 나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겨우 옷만 입고 두 아이 사이에 몸을 우겨넣었다. 카시트 두 개로 꽉 찬 차 뒷좌석에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는 차 안에서 바들바들 손을 떨며 눈썹을 그리다가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하, 정말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지만 화장을 하는 손길을 멈출 수가 없는 나 자신이 서글프기도 했다. 결혼식장에 도착하기 전 겨우 간단히 메이크업을 했지만 안아 달라고 보채는 둘째를 안고 식장까지 달려다가보니 금세 땀에 화장이 무너져내렸다. 하필 그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가의 옷에 립스틱이 묻었다. 아, 빨아도 안 지워진다. 또 한 번 현타가 온다.
그래, 기왕 미니멀라이프 도전자이니, 이참에 파우치까지 비워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 순간이다. 요즘 기술도 좋아졌는데, 전문가한테 맡겨 메이크업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자. 흔들리는 차 안에서 마스카라 붓을 들고 속눈썹을 빗질하지 말자. 그러다 눈에 마스카라가 들어가 검은색 눈물을 흘리던 과거를 청산하자. 파우치를 비우면 가방도 가벼워진다. 내 아침 출근 준비도 단축된다. 자, 못할 건 없다.
그래서 내가 찾은 곳이 반영구 문신숍이다. 눈썹,아이라인, 반영구 화장에 속눈썹 펌까지 거침없이 예약을 했다. 따끔따끔 아프기도 할 것이고 비용도 화장품을 구매하는 비용에 비해 상당히 비싼 편이었지만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다만 부작용이 매우 두려워 지인을 통해 꽤 오래된 경력자를 추천받았다.
소요 시간은 총 3시간이었고, 꽤 아팠고, 꽤나 무서웠다. 이후에도 3~4일간 관리기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아침 시간이 자유로워졌고 파우치 대신 거울이 달려 있는 선 쿠션 하나만 들고다니면 되어 가방도 한결 가벼워졌다.
반영구 화장을 추천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도전은 미니멀라이프 도전을 빙자한 또 다른 '지름'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저 쉬어가는 코너 정도로 가볍게 읽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하하) 그래도 내 기준으로는 상당히 무섭고 두려운 과정이었지만, 명확한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내린 결정이라 큰 후회가 없는 것 같다. 이 명확한 순위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덕분이라고 조금은 억지스럽게 연결을 지어본다. 일단은 파우치를 비웠으니 나름대로 성공적이라고 자축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