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봄 Jun 27. 2022

화장품 미니멀라이프

를 빙자한 사리사욕 채우기


 외출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준비물은 화장품 파우치다. 원체 화장을 진하게 하는 편이 아니라 작은 주머니 속에 담길 정도지만 그마저도 들고 다니기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다. 급하게 출근을 하며 파우치를 놓고 나왔을 때 당황스러움은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아이들이 태어난 후에는 출근 전 집에서 메이크업을 하기는 불가능한 미션에 가깝다. 초췌한 맨얼굴로 출근해 사무실 화장실로 직행한 후 허겁지겁 간단히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워킹맘이 비단 나뿐일까.



물론 화장 그까짓 것, 포기하고 당당히 '생얼'로 다니면 되지 않겠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런 당당함을 가진 분들을 응원하고 존경한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과 취향은 모두 다른 법. 나는 내가 예뻐 보일 수 있을 만큼은 예뻐 보여야 왠지 더 자신감이 생기는 타입이다. 직업적인 특성상 자주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고,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참석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가 필요하다.


미니멀라이프에 도전하면서 많은 물건을 버리고 비웠지만 화장품 파우치만은 비울 수 없었던 나 자신을 변호하다보니 서론이 길었다. 간소하기 이를 데 없는 내 화장품 파우치 속 친구들을 간단히 소개해보기로 한다. 일단 뜨거운 자외선을 막아 내 피부를 지켜주면서 동시에 얼굴의 잡티를 숨겨줄 선 쿠션이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속눈썹을 하늘 높이 올려줄 속눈썹 뷰러와 이들을 오랫동안 고정시켜줄 마스카라도 빠질 수 없다. 속눈썹만 챙기면 눈썹이 섭하니, 눈썹 연필도 챙겨야 한다. 아파 보이는 입술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립스틱도 필요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은 '굳이 매일 화장을 해야 해?'라는 것이었다. 어느 주말, 친한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아이들을 '꽃단장'시킨 후였다. 예쁜 머리핀을 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예쁜 신발을 신긴 두 공주를 겨우 차에 태우고 나서야 정작 나는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겨우 옷만 입고 두 아이 사이에 몸을 우겨넣었다. 카시트 두 개로 꽉 찬 차 뒷좌석에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는 차 안에서 바들바들 손을 떨며 눈썹을 그리다가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하, 정말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하지만 화장을 하는 손길을 멈출 수가 없는 나 자신이 서글프기도 했다. 결혼식장에 도착하기 전 겨우 간단히 메이크업을 했지만 안아 달라고 보채는 둘째를 안고 식장까지 달려다가보니 금세 땀에 화장이 무너져내렸다. 하필 그날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가의 옷에 립스틱이 묻었다. 아, 빨아도 안 지워진다. 또 한 번 현타가 온다.


그래, 기왕 미니멀라이프 도전자이니, 이참에 파우치까지 비워보자는 결심을 하게 된 순간이다. 요즘 기술도 좋아졌는데, 전문가한테 맡겨 메이크업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자. 흔들리는 차 안에서 마스카라 붓을 들고 속눈썹을 빗질하지 말자. 그러다 눈에 마스카라가 들어가 검은색 눈물을 흘리던 과거를 청산하자. 파우치를 비우면 가방도 가벼워진다. 내 아침 출근 준비도 단축된다. 자, 못할 건 없다.



그래서 내가 찾은 곳이 반영구 문신숍이다. 눈썹,아이라인, 반영구 화장에 속눈썹 펌까지 거침없이 예약을 했다. 따끔따끔 아프기도 할 것이고 비용도 화장품을 구매하는 비용에 비해 상당히 비싼 편이었지만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다만 부작용이 매우 두려워 지인을 통해 꽤 오래된 경력자를 추천받았다.


소요 시간은 총 3시간이었고, 꽤 아팠고, 꽤나 무서웠다. 이후에도 3~4일간 관리기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아침 시간이 자유로워졌고 파우치 대신 거울이 달려 있는 선 쿠션 하나만 들고다니면 되어 가방도 한결 가벼워졌다.


반영구 화장을 추천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도전은 미니멀라이프 도전을 빙자한 또 다른 '지름'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저 쉬어가는 코너 정도로 가볍게 읽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하하) 그래도 내 기준으로는 상당히 무섭고 두려운 과정이었지만, 명확한 우선순위를 따져가며 내린 결정이라 큰 후회가 없는 것 같다. 이 명확한 순위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는 덕분이라고 조금은 억지스럽게 연결을 지어본다. 일단은 파우치를 비웠으니 나름대로 성공적이라고 자축하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지털 미니멀 라이프를 꿈꾸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