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서 떠나 온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이다. 우리는 복분자와 오징어를 샀다. 이별주다. 이별 후 한 달 뒤 마시는 색다른 이별주. 자리에는 나와 나의 부모가 앉았다. 식탁은 601호 그대로. 조명은 너와 다른 오묘하고 예쁜 조명. 새로 이사 온 집은 인테리어를 참 잘해 놨다. 전 주인, 멋을 낼 줄 아는 양반이었던가 보다. 우리라면 생각도 못 했을 폴딩도어라는 것을 낡은 아파트임에도 잘도 만들어 놨다. (혹시 이 양반들, 오래 살려다가 집을 갑자기 판 것일까.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해 놓고 그 인테리어를 2년 반밖에 못 즐기고 그네도 이사를 택했다.)
인테리어를 떠올리니 4~5년 전의 601호가 생각난다. 우리는 돈을 들여 인테리어라는 것을 했다. 우선 페인트 통을 샀다. 친환경 뽀로로 페인트였다. 완전한 백색 말고 미색이 섞인 색을 사서 베란다부터 바르기 시작했다. 아, 물론 베란다 짐들을 바깥으로 다 내보낸 후 작업을 했다.
페인트 칠만 완성한 후 인테리어 업체를 찾았다. 상가에 딸린 ◯◯ 인테리어. 새시와 화장실만 빼고 수리를 했다. 부엌 상부장 및 하부장과 도배 및 장판, 그리고 조명과 현관, 기타 등등.
-페인트는 누가 칠했어요?
문틀과 천장과 베란다를 보다가 업자가 우리에게 묻는다.
-저희가요.
-잘하셨네.
페인트칠을 인테리어 업체에 맡겼다면 백만 원은 족히 들었을 것이라는 인테리어 사장님. 우리는 돈도 굳히고 전문가에게서 유한 칭찬도 받는다. (그러나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해 보라 하면 우린 못 한다.)
“어휴. 그때 어떻게 그 많은 짐들을 두고 인테리어를 했나 몰라.”
이별주를 앞에 두고 고개를 다시금 절레절레 젓는다. 짐을 온전히 집 안에 그대로 둔 채 거행하는 인테리어란, 다시는 못 할 짓(에 가까운 일)이다. 거의 이사를 새로 하는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아주 몸살이 나고 또 난다. (이건 뭐, 몸살 정도가 아니라 독감 수준이다.)
그때 당시에도 601호에서 많은 것들을 버렸다. 인테리어를 하기로 한 김에 우리 식구들은 오래된 책장과 오래된 침대, 오래된 책상 등을 버렸다. 버려야 할 것이 이렇게나 많을 줄은 몰랐다. 12년, 13년에 걸쳐 601호에 들여왔거나 우리도 모르게 우리 옆에 두었던 물건들이 참 많았다.
그때도 우리는 ‘오래된’이라는 말이 붙은 모든 것들을 죄다 내다 버렸다. ‘미니 이사’를 그때 이미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철물점에 가서 우리는 아예 6만 원을 주고 어느 사무실에서나 쓸 법한 큰 수레를 샀다. 순전히 ‘버리기 위해서’ 또 수레라는 물건을 샀다. (게다가 사다리도 샀다. 천장 페인트칠을 할 때 필요했다. 페인트와 붓, 그리고 깔끔하게 일자로 바르기 위한 비닐 테이프도 구입했다. 인테리어 당시 우리 집은 본의 아니게 철물점이 되어 갔다.)
그래도 그땐 601호, 너와 내가 더 잘 살기 위한 성형수술 혹은 개조작업이었다.
헤어지려고, 너를 남들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너를 뜯어고쳤던 것은 아니다. 지금 와 돌이켜보니, 어쩌면 그때의 리모델링은 이사를 하기 위한 예행연습, 혹은 이별 전주곡쯤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와 헤어지는 준비를 ‘버리고 또 버리기’라는 연습을 통해 이미 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라는 이별이 한꺼번에 닥친 이별은 아니었나 보다.)
이사를 앞두고 ‘우리의 오래된 것들’은 재활용장의 ‘쓰레기’가 될 준비를 마쳤다. 우리의 손때 묻은 물건들이 세월이 묻었다는 이유, 혹은 집을 옮긴다는 이유로 떠나갔다. 601호라는 이유로 네가 하나씩 하나씩 ‘쓰레기’라는 이름이 되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