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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Oct 16. 2024

주문번호 좀 알려 주시겠어요?

일어나자마자 가제본한 책의 '진행 상태'를 확인했다. 인쇄 완료? 오오 그럼 인쇄 됐으니 거의 다 된 거 아니야?


응/아니야.


다음 단계가 더 있었다. 결제 완료-> 접수 완료 -> 파일 완료-> 인쇄 대기... 인쇄 완료 후에도....


재단, 제본, 포장, 입고 대기, 출고 대기.... 책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어마어마한 과정이 필요하구나...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리고 고마웠다.

이번 독립출판물은 작년과 달리 직접 방문하여 수령하기로 했다. 하루라도 좀 더 빨리 받아 보고 싶었고, 혹시나 택배가 분실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더럭 생겨, 오늘만큼은 충무로 출고실로 직접 행차하기로 했다.


사실 새벽부터 내 책을, 아니 나 자신을 기다렸다. (내 과거를 담은 이야기이니 내 책은 나 자신의 파편일 것이었다.) 이따 일을 마치고 나면 충무로 출고실에 어떤 교통수단으로 가야 할까?어느 길이 가장 빠르지?경로 3개를 후보로 미리 올려놓고 대기할 정도로 새로 나올 책들을 기다렸고 기대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수시로 진행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다림만 남은 오후.


애타게 글자 업데이트를 기다리다 보니 '제본 완료.' 그러다 일을 마치고 12시쯤 확인하니 마침내 포장완료!


'꺄오. 포장 완료라고 뜬다!'

이제 찾아가는 일만 남은 건가?



포장 완료 입고 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마침 채팅으로 상담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공지를 본다.  



-포장완료라고 뜨는데 그 이후 언제쯤 찾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내로 가능할까요? 

-주문번호 좀 알려 주시겠어요?

-아, 네! ○○○○○○○○입니다.



들뜬 내 마음은 느낌표로도 드러난다. 무려 2개의 느낌표를 보냈다. 두 번째 가제본(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쪽번호 수정, 내지 용지를 100g에서 80g으로 교체, 책등 조정 등) 이번엔 30권을 주문했다.  무게만큼 기다림의 무게도 늘어나는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해당 건 이미 오전 차가 출발한 후에 포장이 되었습니다. 오후 3시~3시 30분 차로 ○○○에서 출발 예정입니다ㅠㅠ 충무로 출고실에 물건이 도착하면 오후 5시쯤으로 예상됩니다.



오 마이 갓. 문자를 받은 시간은 오후 1시 16분. (내 마음은 이미 충무로를 향하고 있었는데...) 무려 네.. 네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지난주 금요일에도 가제본 한 권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그때는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4시간.... 게다가 30권이 무거울 것 같다고, 오늘은 어무니까지 나의 수행 비서로 자처하신 상태. 그 긴 시간을 엄니와 뭐 하며 보낸다?


일을 마치고 엄니와 접선한 나는 우선 점심을 챙겨 먹은 후 전철역 주변의 백화점, 종합쇼핑몰, 대형 서점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다 발에 불이 날 것 같아 일단 아무 데나 자리를 잡기로 하고 충무로로 향했다.



<충무로에서 모녀의 대화>

"몇 시야?"

".... 10분 지났어."

"지금은?"

"....15분... 아직 3시..."

"문자 안 왔어?"

"어? 어..."



시간이 이 정도로 안 가다니...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 있으면 이렇게나 시간이 더디 간다. 시간을 늘어지게 만드엉뚱한 마법이 펼쳐진다.

안 되겠다, 뭐라도 하자. 엄니는 종이를 꺼내신다. 뭐 하셔? 응. 친구한테 인삼 주문 하려고. 종이에 볼펜으로 적어 오신 주소를, 한 자 한 자 휴대폰으로 옮기시는 어무니다.



띠링.

뭐야, 뭐야? 왔어?

왔어!



5시 13분. 나는 준비한 가방 세 개를 들고 총알같이 튀어나간다. 하나는 어깨에 메고 하나는 어깨 가방에 넣고 하나는 손에 든 채로! 그리고 셀프 출고!



30권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상자를 해체하고 세 군데로 나눠 담았다. 낑낑거리며 혼자 들고 와서는, 엄니가 기다리고 있던 패스트푸드점에서 책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보았다. 


'흠... 이만하면... 그래도 완벽해...!'

(적어도 책장은 넘어가니까!)


준비해 온 비닐에 조심스레 책들을 집어넣으며 귀한 내 시간들 활자로 태어난 이 순간을, 조용히 자축해 본다.


근데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들고 간다?기존 짐도 있어서 가방을 들기도 전에 어깨가 벌써 무겁다.

그러나 다행히! 최고의 수행비서 님(울 엄니)께서 장바구니를 챙겨  주셨고 내겐 노트북 가방도 있다! 골똘히 고민한 후 차분파분 책을 쌓고 드디어 드디어 집으로!




으로 돌아와 한 권씩 비닐에 넣고 테이프를 붙인다. 이번 주 금요일, 토요일. 사람들의 스치는 눈길 한 자락을 슬며시 차지할 나의 책을, isbn조차 없는 나의 책들 연민의 눈길로 쓰다듬는다.



내 가내수공업 독립출판물!

잘 부탁해! 금요일에 또 만나자!


과연 몇 권이나 팔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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