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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Oct 20. 2024

(출판할) 기본자세가 안 되었구먼??

아니, 팔겠다는겨 안 팔겠다는겨?


이런 류의 말을 들어도 싸다. 사실 어제 짐(팔리지 않는 내 독립출판물들)을 다 챙겨 오려 했다.


-오늘(토요일) 저녁에 책 다 빼려고.

-응? 왜?북페어는 내일 일요일까지잖아?

-어차피 안 팔리는걸 뭐.

-아니, 그래도...


나보다 친구가 더 안타까워한다. 그게 그렇게까지는 안타깝지 않은데? 무책임한 비혼을 때리는 말들 제작자는 어제 작심하고 가방을 멘 채 북페어를 다시 찾았다. 친구와 신나게 구경을 하고 수다를 떨다가 저녁 즈음 내 책이 있는 매대로 가서 "저기, 저는 제 책을 이제 빼려고요."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근데 문제는...


팔지는 않고 사기만 해서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더 많다


역시 파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쉬웠어요...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보니 사고 싶은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방이 무거워졌다. 내 책까지 챙겨 오려면 아마 어깨가 빠질 것이다.


그런데 사는 일은 파는 일보다 역시 재밌었고, 참으로 수월했다. 내가 데려가고 싶은 책들이 생겨나면 '필feel'이 오는 대로 마구 집어 들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외치면 된다.


"얼마예요!!???"


어쩌면 내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들었어야 할 말'을 다른 테이블에 남발하고 다니며 (내 기준) 거금을 쓰고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 이벤트 덕분에 핸드크림까지 증정받는다.


'아, 빨리 집에 가서 읽고 싶다!'


근데... 가만.... 나는 왜 독자들에게 이런 책을 못 써 줄까? 나는 왜 '빨리 집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의 제작자는 아닌 걸까?



-친구야, 그래도 내일까지는 둬 봐. 또 알아. 누가 사 가 줄지. 한 사람이라도 말이야.


그때 어디선가 제작자를 향한 조언이 날아든다. 일견 옳은 소리 같다. 나는 내일 하루 더 나올 생각에 그저 '귀찮아서', 그리고 '어차피 안 팔려'라는 체념과 포기의 마음으로 오늘 나온 길에 미리 책을 빼자 싶었다. 그런데 누군가의 조언대로...



-봄책 언니, 어디야?


https://brunch.co.kr/@springpage/617


모르는 사람이 아닌 아는 사람이긴 했지만 뜻하지 않는 내 1호 팬, 전 직장 동료가 짠, 하고 나타나 주었고 나를 위한 발걸음뿐 아니라 책까지 사 가는.. 게다가 책갈피까지 만들어다 주는 정성을 발휘해 주었다. 나,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마음이 말랑말랑 몽글몽글해졌다. 어제 급작스레 만난 내 아는 동생, ''도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아니 봄 언니, 내일까진 둬 봐야지. 이거 내일까지라며?


아는 동생 '퐝'도 같이 온 친구도 포기하려 드는 나에게 뜨듯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나보다 더 내 책을 아껴 주는 모양새다. 제작자로서 심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나, 그럼 내일까지 책 그냥 둬 볼까? 오늘 다른 책들 많이 사서 넘 무겁기도 하고...

-그래, 그냥 둬 봐. 혹시 모르는 거잖아.

-그.. 그런가? 그래 어디서 갑자기 독자 명쯤 나타나 줄는지도 모르지. 판을 벌려 놓고 난 그 판을 접으려 하네.

-그래, 버젓이 판이 벌렸는데 그 판을 왜 스스로 접어.

-그치그치?



<엇, 잠깐! 모르는 사람이 1권 사 갔나 봐?>



열일곱 권을 정산하는 카톡방 엑셀 시트를 확인해 보니 지인이 사 간 책 분량을 제외한 1권이 눈에 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거봐. 그냥 둬.

-그럴까, 그럼??



난 기본자세가 안 됐다. 판매자(셀러)로 나서기로 했으면 끝까지 열심히 팔 생각을 해야지, 누가 내 책을 찾겠어, 라는 심정으로 빨리 내 책을 거둬들일 생각만 했다. 그저 일요일은 푹 쉬고 싶다는 알량한 생각으로 내 책을 소홀히 대했다. '어차피'라는 포기의 구렁텅에 스스로를 내몰았다.



-집에 가는 길입니다. 전철 탔어요.

-그래, 어제는 0권 팔았고, 오늘은 좀 파셨나요?

-네. 지인 2명이 사 줬고, 모르는 사람 1명이 사 갔다네요?

-오, 대박!


모르는 사람 1인이 사 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 채팅방은 소소하게 난리가 난다. '대박'과 '오호' 등의 감탄사가 남발된다. 저... 저기요... 1권이라고요, 1권. 진정들 좀...



그래도 상당히 기분이 좋아진 제작자는, 이제라도 기본자세를 재정비하기로 한다.


하나. 끝까지 판다.

하나. 내 몸 아끼듯 내 책도 아낀다.

하나. 누군가는 읽는다는 생각을 절대 놓지 아니한다.

하나.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제작자가 된다.

하나. 위의 사항들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쓴다.



그래! 일요일에도 매대에 내 책을 눕혀 두자. 누군가 벌떡 일으켜 줄지도 모르잖아??...


.

.

.





.

.

.

라고 어젯밤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다가,

어느새 일요일 오후가 되어 버렸다. 세 시간 후쯤 집을 나서려 한다.... 내 책을 거두러 간다... 내 책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아.. 역시... '어차피' 안 팔리고 있었는데 어제 그냥 가져올걸... 아고, 귀찮잖아???>


이렇게 또다시 슬쩍 후회를 시작하는 중이다.



역시, 난 '자세'가 안 됐다.

아무래도 책 제작자로서, 책 판매자로서 기본자세를 다시 가다듬어야 할 것 같다.

(내년에는 좀 더 '정신 차린 제작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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