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르 시다네르

by 봄플

점묘법

앙리 르 시다네르(Henri Le Sidaner, 1862-1939)는 『브뤼헤의 주택』(Houses in Bruges, 1899)의 두꺼운 점들, 『출입문』(1923)의 편안한 질감, 『나뭇잎 속의 파빌리온』의 거친 표면에서 볼 수 있듯 점묘법이라는 화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쇠라(Georges Seurat)나 시냑(Paul Signac)의 점묘화가 형태를 더욱 명확하고 빛나게 만들었다면, 르 시다네르의 점묘법은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난다. 그의 화법은 형태를 정확히 표현하기보다는 흐리게 만든다.

르 시다네르는 점묘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의 원색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회색과 오팔빛을 선호하며 불규칙한 터치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점들 간의 간격이 촘촘하지 않게 그리기도 했다. 점묘법이라는 도구는 그에게 있어 빛의 과학이 아니라 모호함으로 두는 시각적 전략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관객이 작가의 실력을 미숙하다 여기며 오해할까 두렵기까지 하다.

Henri Le Sidaner - Le Pavillon dans les feuilles, 나뭇잎 속의 파빌리온

거리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작품보다, 무언가를 감추거나 흐릿하게 만드는 작품이 더 강렬한 참여를 이끌어낸다. 관객은 더욱 그 안의 내밀함에 의미를 부여하려 시도한다.

작가는 작품에서 진실을 한 발짝 뒤에 둘 때, 관객은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다.

1898년 브뤼헤로 이주한 후,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개발하고자 했다. 야경화의 대가로서 그는 인상주의가 소외시킨 빛의 효과—황혼과 어둠, 창문을 통해 홀로 빛나는 한 줄기 불빛—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의 풍경에는 사람이 없다. 달빛 아래의 창가, 막 떠난 듯한 정원의 테이블, 열린 문—이 모든 것은 부재의 현존을 담고 있다. 이는 상징주의 화가들의 노골적인 이미지와는 다르다. 르 시다네르는 부재의 수수께끼 같은 감정에 만족했다. 그는 이야기를 제공하지 않고 이야기의 가능성만을 열어두었다.


Henri Le Sidaner Le Portail, 출입문, 1923


심심함

사람들은 심심하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불편해한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일인 경우에 한해서다. 사람들은 늘 자유로운 상상과 사색을 즐긴다.

르 시다네르는 점묘법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했다. 는 작품에서 점들은 형태를 흐리게 하고, 그 흐릿함 속에서 관객은 스스로 의미를 게 두었다.

르 시다네르의 작품이 20세기 초 프랑스와 영미 컬렉터들에게 폭넓게 수집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한다. 19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전시실 전체를 그의 그림으로 할애되었고, 1921년 피츠버그 카네기 인스티튜트 전시, 1929년 미국 순회전에도 참여했다. 1930년 그는 프랑스 미술아카데미 회원이 되었고, 1937년에는 회장이 되었다.

이러한 성공은 단순히 장식적인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작품은 관객에게 사색의 여지를 주었기 때문이다. 제르베루아(Gerberoy)의 정원을 그린 그의 유혹적인 풍경들—햇빛 아래 얼룩진, 장미로 뒤덮인, 막 비워진 테이블들—은 서사를 완성하지 않고 열어둔다.


Henri Le Sidaner Houses in Bruges, 브뤼헤의 주택, 1899


예술

예술이란 사람에게 짧은 시간동안걸음을 붙잡아두며, 지속적인 사고와 상상력을 풍부하게 한다. 그의 회화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디자인은 사용자의 불편함을 해결하고, 예술은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르 시다네르는 스스로를 어떤 미술 운동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없습니다. 하지만 꼭 범주화해야 한다면, 저는 앵티미스트(intimist)입니다." 실제로 그는 인상주의, 점묘주의, 상징주의, 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지만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려 했다. 덧없는 순간의 빛과 분위기를 포착하되, 풍부고 절제된 색채로 표현하는 앵티미스트 화가로서 자신만의 계보를 개척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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