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뉴욕에서 빌렘 드 쿠닝의 작업실을 방문한 웨인 티보(Wayne Thiebaud, 1920-2021)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티보는 당시 새크라멘토 주립대학의 학생들을 데리고 뉴욕의 예술가 작업실을 견학하는 중이었다. 드 쿠닝은 그에게 "그저 예술을 만들려고만 하지 말고, 진정으로 자신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하라"라고 조언했다. 이 짧은 만남이 티보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그는 추상표현주의의 제스처와 형식을 모방하며 "예술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려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웨인 티보는 빌렘 드 쿠닝의 이야기를 듣고 작업실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타원 하나를 그려놓고 생각했다. 우리가 모니터 앞에서 고민에 빠지듯, 그는 캔버스 앞에서 고민했다. 입방체, 원뿔, 구를 그리고 그 위에 삼각형을 더하니 접시 위의 파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는 예술의 표식과 같은 작품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결심보다 스케치가 먼저였다.
예술은 비즈니스처럼 목적이나 예상되는 결과물을 두고 작업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고객, 트렌드, 수익을 생각하며 예술을 한다면 그것은 사실 서비스 산업에 가깝다. 하지만, 예의상 앞에 '대중'이라는 단어를 붙여드리겠다. 많은 예술가들은 시간, 규격, 프로세스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캔버스 앞에서 무수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는 특정한 부분에 집중하게 되고 몰입한다. 두세 번 바라보고 수십 번을 생각한다. 그러다 작업에 들어가 즉흥적으로 수행한다. 예술가의 프로세스에서 예상되는 결과물이란 애초에 없는 것이다.
티보는 교수였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레스토랑에서 일했다고 한다. 그때 정갈하게 놓인 케이크와 디저트들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한번 툭 그려보았다. 별다를 것 없는 그림이라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길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생전에 성공한 화가가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티보가 거창한 의도나 전략 없이 그저 자신이 기억하는 이미지를 그렸다는 사실이다. 레스토랑 진열대의 케이크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였다. 드 쿠닝의 조언처럼 '예술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역설적이게도 1960년대 초반 갤러리에서 그의 작품이 소개되자 대중과 비평가들은 열광했다. 예술의 표식을 따라 하려는 인위적인 시도가 아니라, 한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을 본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단순한 소비문화의 찬양이 아닌, 일상의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하면서도 고독한 시선을 발견했다. 진열대에 홀로 놓인 케이크는 풍요로운 동시에 쓸쓸했고, 파스텔톤의 선명한 색채는 활기차면서 고독했다.
티보(Wayne Thiebaud, 1920-2021)는 42년간 캘리포니아 UC 데이비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90년 은퇴 후에도 2002년까지 무보수로 강의를 계속했다. 교수로서 그는 학생들에게 "기초로 돌아가라"라고 가르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