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 니체, 심판카드(Judgement)

겨울 8. 무너지지 않는 게 최우선이었다.

by 봄플

우리는 어린 시절 세상을 밝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사회에 나오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마음과 사회 간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몇십 년을 애쓰기도 한다. 연초에는 계획을 세우고, 여름에는 현실에 치이고, 겨울에는 후회한다. 내가 부지런하지 못해서일까? 방향이 잘못돼서일까? 매년 연말마다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봐도 감동이 없고, 누군가의 축하에도 기쁨이 올라오지 않는다. 처음엔 내가 무뎌진 건가 싶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다. 무뎌진 게 아니라, 애초에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을 말이. 몇십 년 동안 갇혀 억압받으며 살면 감정은 사치가 된다. 생존이 우선이고, 기대에 부응하는 게 우선이었으며, 무너지지 않는 게 최우선이었다.


필연

인정을 받든 받지 못하든 잘못된 방향인 줄 알면서도 부모님의 기대나 사회의 요구에 억지로 응한다. 주변의 죽음과 사고가 일상이라는 걸 알게 되어도, 그로 인해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되어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또 한 번 탓하게 된다.

이런 시대에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 삶을 이어 간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몇십 년 동안 갇혀 억압받으면, 사소한 행복이 귀해지고, 누구나 느끼는 즐거움이나 감동이 눈앞에 와도 도무지 느껴지지 않을 때 스스로 무너져 버리기도 한다. 마음이 여유로운 사람들이나 풍족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오늘 하루와 주변에 감사하려고 해도, 이런 무감각과 무감정 상태가 영원할 것 같다고 단정 지어 버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공부를 많이 한다. 인문계든 자연계든 대학원까지 가는 일이 이제는 흔하다. 그런데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걸까, 아니면 타이틀이 필요해서 배우는 걸까.

대부분 지적 고뇌와 학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생각하고, 자기 세계를 만드는 걸 편안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회사에 가면 잘 적응하지 못한다. 애초에 직장생활이 자기 성향과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성향이 마치 자신에게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인 것처럼 “나는 직장이 맞지 않아”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정말 학습을 좋아한다면 대학원에 가거나 책을 쓰면 된다. 요즘은 책을 내는 것도 예전만큼 어렵지 않다. 여담이지만, 책상 앞에 앉기 힘든 사람들도 한 번쯤은 글을 써봤으면 좋겠다. 화가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분노를 조금은 덜 터뜨리게 되지 않을까.


필연의 정의

니체는 필연을 운명론처럼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제 되돌릴 수 없게 되었고,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의 필연성이다. 니체에게 필연이란 “이미 일어나 버린 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 내가 만난 사람들, 겪은 상처들, 타고난 기질들. 이것들은 이제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필연이다. 일어나기 전에 정해져 있어서가 아니라, 일어난 뒤에는 달리 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인 것이다. 한 번 일어난 뒤에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그것들은 그때 그렇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필연의 회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말은 보통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추구하는 것과 멀어진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이렇게 반발하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예상치 못한 비극은 올 수 있다.” 내가 원하지 않은 대학원,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직장,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가 그렇게 찾아온다.

니체는 이렇게 묻는다. “그 길이 너를 강하게 만들었는가?” 그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그 몇십 년의 억압, 그 무감각, 그 잘못된 선택이 너에게 어떤 힘을 주었는지를 묻는다.

원치 않았던 대학 전공, 직장생활, 사건사고 같은 비극들이 인생의 재정적·정신적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쌓아 둔 것이 있으면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안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니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안정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가 진짜로 묻는 것은 이것이다. “그래서, 그 안정 위에서 넌 뭘 할 건데?”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마라. 존재론적으로 측정하라. 나는 그 시간 이후 어떤 사람이 됐는가. 더 약해졌는가, 더 강해졌는가.

“필연적 운명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니체는 단순히 “믿는다, 안 믿는다”를 묻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전체를 나중에 ‘원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 결과를 다 보고 난 뒤가 아니라, 삶의 현재 시점에서 고통과 괴리와 비극을 전부 포함한 채로 묻는다.

니체의 핵심은 이거다.

비극을 필연이라고 부르려면, 그 비극이 내게 준 힘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 시절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억압이 내게 어떤 예민함을 줬는가. 무감각이 내게 어떤 명료함을 선물했는가. 잘못된 방향이 결국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가.

니체는 한번 더 묻는다. "그 길이 너를 더 강하게, 더 깊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더 약하게 만들었는가?" 옳고 그름이 아니라, 힘과 성장의 관점으로 재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네가 한 일의 필연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아니다. 이미 일어난 일들이 너 안에 어떤 힘으로 쌓였는지를 명료하게 보는 것이다. 그걸 본 다음에야, 비로소 이 삶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니체의 초인(Übermensch)과 아모르파티(Amor Fati)

살다 보니 그렇게 살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었다”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왔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일들이 나를 어떻게 빚어 놓았는지를 아는 것이다. 몇십 년의 억압, 그 무감각, 잘못된 선택들. 이것들이 나 안에 힘으로든, 상처로든, 통찰로든, 둔감함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쌓여 있다. 그 사실을 정확히 보는 순간,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이게 필연이었을까?"에서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로 변모한다.


사실, 초인(Übermensch)과 아모르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철학이다. 초인은 필연에서 시작한 개념이기도 하다.

필연은 과거를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라 미래를 시작하는 지점이다. 일어난 일은 일어났고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철학자들은 자신을 인식하고 방향을 잡거나, 예술로 승화하거나, 타인을 사랑하라고 한다.

니체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인다. "좋다. 네가 지금 할 일은 '필연적 운명을 믿을까 말까'가 아니다. 이미 살아버린 것들이 어떤 힘으로서 너 안에 쌓였는지를 하나씩 더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걸 안 뒤에야, '아모르파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이 생긴다.”

아모르파티(Amor fati)란, 이미 일어나 버려 되돌릴 수 없는 자기 삶의 전체 경과(우연·고통·실패·상실·조건)를 다시 한번 반복하기를 원할 수 있을 만큼 긍정하려는 급진적 자기-존재 긍정의 태도다.


필연이라는 철학에, 심판카드(Judgement)로 설명할 수 있다.

필연이라는 철학은 타로의 심판 카드(Judgement)로도 설명할 수 있다. 심판 카드는 타로 메이저 아르카나 20번으로, 부활·각성·새로운 시작·인과응보를 상징하며, 신약성서의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모티프를 가져온다. 라이더-웨이트 덱에서는 나팔을 부는 천사가 무덤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을 깨우고, 깃발의 십자는 하늘과 땅의 연결과 완성을 나타낸다.

정방향의 심판 카드는 각성, 중요한 결정, 내면의 부름, 재생, 두 번째 기회, 회복, 카르마의 결산을 뜻한다.


무덤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팔 소리에 깨어나 자신이 누구인지 본다.


이미 살아 버린 삶, 그 모든 고통과 괴리와 비극을 지금 이 자리에서 긍정할 수 있을까.

안정이 생겼다면, 좋다. 그 위에서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

비극을 겪었다면, 보라. 그것이 내게 어떤 힘을 주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문해 본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글과 함께 음악을 들어보세요!

링크: 플레이리스트 바로가기 (매주 화금 오전 11시 30분) http://www.youtube.com/@springpli

[콘텐츠 인용 및 사용 안내]
Springpli(봄플)이 전개하는 에세이 + BGM 시리즈, 계절별 BGM + 이미지, 이야기 구조, 시리즈 기획, 영상·음악·이미지의 조합 방식 등은 Springpli(봄플)의 고유한 창작 스타일입니다. 기획 및 구조 모방, 무단 복제, 재업로드, 2차 편집, 상업적 이용을 금지합니다.

1) 무료 사용 가능 범위 (비상업적)
다음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에 한해 일부 인용·소개가 가능합니다.
개인 블로그, 카페, 브런치 글 등에서 일부만 인용
글·이미지·음원을 임의 변형 없이 짧게 사용하는 수준

2) 무료 사용 시 필수 조건 (출처 표기)
항상 아래와 같이 저작권자와 원문 링크를 명확히 표기해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http://www.youtube.com/@springpli
글·원문: 브런치 Springpli(봄플) – https://brunch.co.kr/@springpli
음악·음원 소개 시: http://www.youtube.com/@springpli

3) 유료 사용·사전 허락이 필요한 경우
다음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사전 이메일 허락 또는 별도 계약이 필요합니다.
상업적·영리 목적 사용 (광고, 기업·브랜드 콘텐츠, 유료 강의, 출판물 등)
브런치 글·이미지·음원을 그대로 사용해 영상, 음원, 디자인, 책, 강의 자료 등을 제작하는 경우
저작물을 크게 편집·변형해 2차 저작물을 만드는 경우
문의: springpli@naver.com

[콘셉트·기획 아이디어 관련 안내]
영감 받는 것은 괜찮지만, 전체 콘셉트나 연재 형식, 시퀀스 구성, 제목 체계, 섹션 구성 등을 거의 그대로 모방하는 행위는 표절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특정 시리즈의 기획 구조·컷 구성·문단 배열·음악 사용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지양해 주세요. Springpli(봄플)이 판단하여 경고, 수정 요청 등 필요에 따라 조치를 요청드릴 수 있습니다.

Springpli(봄플). 글·이미지·음악 및 콘셉트 전체의 무단 복제·모방·재업로드 금지.



이전 07화가상세계, 장자, 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