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_내가 만든 세계 1
시간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 그게 몰입의 시작이었다. 시계의 초침이 멈춘 것도, 외부의 소음이 차단된 것도 아니었지만, 어떤 시간이 끝났다는 자취만이 남았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어느 순간 한 글 위에서 숨을 돌리고 나서야 그동안의 시간이 증발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몰입이란 흐름은 고요하고, 격렬하고, 설명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세상의 흐름과 전혀 상관없는 속도로, 조용히 빠르게 관통하고 지나간다.
그림에서 글로
20대, 몰입은 그림을 그릴 때 찾아왔다. 상념들이 손끝을 통해 선으로 이어지고, 선이 면을 만들며 나름의 분위기를 품었을 때, 주변은 조용해졌다. 어떤 시간은 다른 시간보다 무겁고, 또 어떤 장면은 유독 오래 남았다. 기술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집중이 하나의 세계를 잠시나마 완성시켰기 때문이었다. 연필 하나, 종이 한 장만으로도 충분했다. 완성도가 부족해도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연필이나 목탄이 종이를 스치는 사각 서걱거리는 소리도 좋았다. 그렇게 그렸고, 타인의 발걸음도 머물렀다.
이후 몰입은 멈추었다. 그림을 내려놓는다는 건 단순히 재료를 바꾼다는 뜻이 아니었다. 몰입이 끝났고, 비어 있는 자리를 무언가로 다시 채워야 했다. 손끝의 촉감보다 글을 더 가까이 두기 시작한 이후, 언어라는 도구는 또 다른 방식으로 몰입을 허락했다.
처음에는 하나의 주제를 붙잡고 여러 방향으로 써보고 다시 지웠다. 반복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에서만 찾아지는 문장이 있었다. 쉽게 나왔지만 오래 남지 않은 문장이 있는가 하면, 어렵게 나왔지만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문장도 있었다. 어느 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 음악을 연주하는 일, 글을 쓰는 일 사이에서 망설이기보다는, '그리다', '연주하다', '쓰다' 같은 행위 자체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형식이나 대상이 아닌 동사에 집중하면서, 가장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행위가 무엇 일지를 살폈다. 그리고 점차, 글을 쓰는 일이야말로 가장 오래 반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몰입은 그렇게 옮겨갔고, 설명보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쪽이 더 중요해졌다.
주체를 행위로
다른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몰입을 경험할까. 일상에서 누군가는 음악으로, 누군가는 운동으로 얻을지도 모른다. 몰입은 존재가 사라지는 감각에 가깝다. 이름을 지우고, 얼굴을 감추고, 역할을 벗은 채로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어떤 장면. 몰입은 주목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곳이며, 자신조차도 잠시 잊게 되는 어떤 경지다.
몰입 이후에 남는 건 결과물이 아니다. 몇 시간 동안 써 내려간 글이 단 한 문장으로만 남을 수도 있고, 아무도 읽지 않는 노트를 채운 수많은 단어는 결국 자신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특정한 순간,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상태이고, 아무 이유 없이 반복되는 행위를 지속하게 만드는 깊은 리듬이다.
사이사이에
직업을 선택하는 일도 비슷했다.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 어떤 행위를 반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를 더 오래 고민했다. 지속 가능하다는 말은 수입의 크기나 명성의 높이보다, 몰입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가까웠다. 자신을 오래도록 버티게 하는 건 외부의 기준이 아니라, 흥미를 잃지 않는 반복이었다. 몰입의 가능성이 방향을 정했고, 반복 가능한 일이 삶의 형태를 만들었다.
글 쓴다는 건 스스로를 살리는 방식이었다. 내면과 대화하고, 흐트러진 감정을 풀어내고, 다시 이어 붙이는 과정. 몰입은 그런 회복의 의미가 되어주었다. 지속되는 집중,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감당할 수 있는 무게로부터 비롯된 충실한 흐름. 몰입은, 존재를 잊을 만큼 스스로를 살리는 일에 가까웠다.
질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2025.05 작성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글이 그 길 위에 놓인 조용한 쉼표 하나가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