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가던 골목길

나_흔들릴 때마다 돌아보는2

by 봄플

익숙한 철길 옆 아지트

시장을 갈 때마다 지나던 철길이 있었다. 기차는 다니지 않았고, 선로는 풀과 먼지가 덮여 있었다. 길이라기보다는 잠시 남겨진 흔적에 가까웠지만, 익숙한 침묵이 스며 있었다. 철로 옆은 어두웠고, 상점은 없었고, 해가 지면 골목은 바람 소리와 흙냄새만 남기고 조용히 가라앉았다. 길은 바쁘지 않아도 괜찮은 오후로 만들었다.

길목 한편엔 벤치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구도 앉으라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머물 수 있었다. 풀은 계절마다 자라는 방향이 달라졌고, 벤치 옆 풀숲에선 여름엔 풀벌레가, 가을엔 마른 잎이 소리를 냈다. 어떤 날엔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고, 어떤 날엔 시장에 들를 준비를 하기도 했다. 머리를 식히러 나선 저녁이면 잠시 멈추는 장소였고, 앉아 있으면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었던 생각들이 먼저 떠올랐다.

이곳은 단순한 철길이 아니라, 무언가를 잠시 내려둘 수 있는 자리에 가까웠다. 누군가는 지났고, 누군가는 앉았으며, 어느 쪽이든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시장에서 무엇을 살지 떠올리며 앉아 있다 보면, 어쩌면 필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라 가볍게 쉬어가는 시간이었다.


변화

철길은 결국 막혔다.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되었고, 바닥은 반듯한 데크로 교체되었다. 상점 하나가 생기고, 익숙했던 골목에 커피 향과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전의 어둠은 사라졌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차 채워갔다. 사람들은 철로 위를 걷고, 셀카를 찍고, 아이들은 걷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겐 반가운 변화였겠지만, 머무는 일이 더 이상 편안하지 않은 장소로 바뀌어갔다. 예전과 같은 풍경이 남아 있어도, 그 자리에 머무는 느낌은 달라졌고, 이전만큼 걸음을 늦추게 하지 않았다.

시장에 가는 길로도 걷지 않게 되었고, 벤치를 지나칠 때도 시선을 오래 두지 않게 되었다. 익숙한 풍경은 그대로였으나, 그 자리에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았다.


새로운 아지트

다른 아지트를 찾아야 했다. 번잡하지 않으면서도 멀지 않은 곳. 아파트단지를 지나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벤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길목은 아니었고, 주변은 조용했다. 바람은 일정하게 흐르고, 물비린내와 풀냄새가 얽혀 있었다. 익숙하진 않았지만 부담스럽지도 않은 장소였다.

감흥은 없었으나, 그 덕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 말이 없어도, 그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풀어졌다. 철도길에서처럼, 이곳에서도 간섭 없이 생각이 정리되었고,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이 되살아났다.

시장가던 골목길을 떠올리는 일은 이제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되었고, 다음 장면을 여는 추억과 위로가 되었다.

여름이면 풀내음이 짙어졌고, 풀숲에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벤치 옆엔 더위를 식히려는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말보다 숨소리가 더 많이 오갔다. 시간이 지나 가을로 접어들어도 풀은 여전히 숨을 쉬었고, 귀뚜라미 소리는 조금 더 느리게 이어졌다. 풀숲의 기척은 줄지 않았고, 벤치 근처의 공기는 여전히 나긋했다.

아지트라는 것은 장소에 좌우되기보다는, 그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낡은 벤치와 바랜 간판, 이름조차 없는 그늘은 특별하지 않기에 오히려 오래 머물 수 있었다. 철길 옆에 앉았던 날처럼, 이 길에서도 조용히 앉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철길을 떠올린다.


질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2025.05 작성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글이 그 길 위에 놓인 조용한 쉼표 하나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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