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개발] 공공플랫폼을 SaaS로 바꾸면 생기는 일들

사업개발4_디지털 전환 앞에서 마주해야 할 현실

by 봄플

왜 공공서비스는 이렇게 답답할까

공공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의문을 품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불편할까, 왜 이렇게 느릴까, 왜 이렇게 복잡할까. 민간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편의성과 직관성이 공공영역에서는 마치 사치처럼 여겨지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종종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인체치수 관련 공공 플랫폼 운영을 담당하며 마주했던 현실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변이자 동시에 새로운 질문의 시작이었다. 다양한 기업과 연구기관이 활용하는 핵심 인프라였지만, 공공기관의 전통적인 IT 운영 방식과 민간의 서비스 기대치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했다. 데이터의 가치는 충분했으나, 접근성과 활용성에서는 민간 플랫폼에 비해 현저히 뒤처져 있었고, 이는 기존 공공플랫폼 운영 방식의 근본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기술의 낙후가 아니다. 공공기관의 조달 구조, 예산 편성 방식, 의사결정 체계, 그리고 무엇보다 IT에 대한 이해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낸 구조적 한계다. 1년 단위 예산 집행, 최저가 낙찰제, 명확한 산출물 위주의 평가 체계는 지속적인 개선과 사용자 중심의 서비스 운영과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인식 없이는 공공플랫폼의 SaaS 전환을 논할 수 없다. 기술적 전환은 수단일 뿐이고, 진짜 과제는 공공서비스 전달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SaaS가 뒤흔드는 공공의 질서

공공플랫폼을 SaaS로 전환한다는 것은 단순히 서버를 클라우드로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공공성이라는 가치와 시장 효율성이라는 원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전환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벽은 제도적 관성이다. 공공기관의 예산 편성과 집행 구조는 연도별 정산과 명확한 항목 분류를 기본으로 한다. 반면 SaaS 모델은 구독 기반의 지속적 비용 발생과 사용량에 따른 탄력적 과금을 전제로 한다. 기존에는 구축비와 운영비로 깔끔하게 나뉘던 예산이 SaaS에서는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용량 변동에 따른 예산 증감을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과학기술정책 기반 서비스를 기획하며 경험했던 다기관 협업의 복잡성은 SaaS 전환 시 더욱 증폭된다. 기존에는 각 기관이 독립적인 시스템을 운영하며 필요시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식이었다면, SaaS 환경에서는 통합된 플랫폼 위에서 각 기관의 서비스가 상호 연동되어야 한다. 이는 기관 간 권한과 책임의 경계를 재정의하고, 데이터 소유권과 관리 주체에 대한 새로운 합의를 요구한다.

이해관계자의 지형도 또한 극적으로 변화한다. 기존 공공플랫폼에서는 발주기관과 개발업체, 그리고 최종 사용자라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였다면, SaaS 모델에서는 플랫폼 제공자, 서비스 개발자, 데이터 제공기관, 정책 담당자, 최종 사용자가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가 형성된다.

조직 문화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공공기관의 조직 문화는 일반적으로 안정성과 절차 준수를 중시하는 반면, SaaS 환경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실험적 접근을 요구한다. 기능 개선이나 정책 변경 사항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위계적이고 순차적인 의사결정 구조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보안과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도 기존 패러다임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온프레미스 환경에서 물리적으로 통제 가능했던 데이터가 클라우드 환경으로 이전됨에 따라, 새로운 보안 프레임워크와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클라우드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SaaS 전환이 가져다주는 가능성은 이러한 어려움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실시간 사용자 피드백을 통한 지속적인 서비스 개선, 사용 패턴 분석을 통한 정책 수립 지원, 다양한 기관과 서비스 간의 유연한 연동이 가능해진다.

특히 정책 수요 기반의 사용자 분석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정책 입안자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근거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기존에는 연간 단위로 이루어지던 사용 현황 분석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지고, 정책 변화의 효과를 즉시 측정하고 조정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책과의 연계성도 SaaS 환경에서 한층 강화될 수 있다. 기존에는 개별 시스템 간의 일방향적 데이터 연동에 그쳤다면, SaaS 모델에서는 정책 변화가 서비스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고, 서비스 사용 현황이 정책 수립에 즉각적으로 피드백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산출물 리딩과 다기관 협업 조정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SaaS 환경에서는 협업의 방식 자체가 변화한다. 기존의 문서 중심, 회의 중심의 협업에서 플랫폼 중심, 데이터 중심의 협업으로 전환되면서,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소통이 가능해진다. 각 기관의 역할과 기여도가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가시화되고, 성과 측정과 평가가 보다 객관적이고 정확해질 수 있다.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SaaS 모델은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와 API 중심의 개발 방식을 통해 각 기능 모듈의 독립성을 보장한다. 이는 부분적인 장애나 업데이트가 전체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서비스나 기능의 추가를 보다 유연하게 만든다.

사용자 관점에서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기존의 일방향적이고 정적인 정보 제공 서비스에서, 개인화되고 상호작용적인 서비스로 진화할 수 있다. 사용자의 업무 패턴과 선호도를 학습하여 맞춤형 대시보드와 알림을 제공하고, 필요한 정보를 선제적으로 추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데이터 활용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한다. 기존에는 각 기관이 보유한 데이터가 사일로처럼 분리되어 있었다면, SaaS 환경에서는 API를 통한 데이터 연동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데이터가 결합되어 예상치 못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이는 더 나은 정책 수립의 근거가 된다.


변화의 물결 앞에서 선택해야 할 길

이러한 변화가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사용자들은 변화에 대한 저항감을 보일 수 있고, 기존 업체들은 기득권 상실에 대한 우려를 표할 수 있다. 공무원들은 새로운 책임과 역할에 대한 부담감을 느낄 수 있고, 정치적으로는 민영화나 공공성 약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저항과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전면적인 전환보다는 일부 서비스나 기능을 대상으로 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효과를 입증하고, 성공 사례를 축적해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또한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새로운 모델로 이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

법적, 제도적 기반의 정비도 선행되어야 한다. 기존의 공공조달 체계와 예산 운영 방식은 SaaS 모델에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장기계속계약이나 민간투자사업 방식 등을 활용하여 SaaS 특성에 맞는 새로운 계약 및 운영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교육과 소통도 중요한 요소다. SaaS 모델의 장점과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변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함과 어려움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소통해야 한다. 특히 일선에서 직접 서비스를 운영하고 사용하는 담당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공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효율성과 사용자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SaaS 모델의 도입이 단순히 민간 방식의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공서비스만의 고유한 가치와 특성을 살린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는 것이어야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공플랫폼의 SaaS 전환은 불가피한 방향이 될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공공서비스의 주요 사용자가 되고, 클라우드 기술이 더욱 성숙해지며,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이 가속화되면서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준비하고 관리하느냐의 문제다.

결국 공공플랫폼의 SaaS 전환은 기술의 변화를 넘어 공공서비스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전환을 의미한다. 서비스 제공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안정성 중심에서 혁신성 중심으로, 폐쇄적 구조에서 개방적 생태계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때, 우리는 보다 효율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공공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며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시민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닌,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필연적 여정임을 깨닫게 된다.

이전 03화[사업개발] 메타버스 투자, 전략인가 함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