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플랜

나_다시 만나다1

by 봄플

연차

평일 오전 10시, 연차를 내고 동네 빵집에 갔다. 회사원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갓 구운 빵을 주문하니, 사장은 빵이 식을 때까지 포장지를 묶지 말라고 했다. 이런 배려를 받는 것 자체가 혜택이었다.

매일 아침 이렇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오전에는 글을 쓰고, 초오후에는 집안일을 하고, 저녁을 먹고, 늦은 밤에는 책을 읽는 삶. 갓 구운 빵과 아이스라떼를 사서 집에서 TV를 보며 브런치를 먹다가 에세이를 쓰는 하루. 오후에는 크린토피아에서 오는 세탁완료 알림을 받고 옷을 핑계 삼아 외출하면서 커피와 저녁거리를 사 오는 시간.

그리고 이후엔 예술과 브랜딩의 심미성이 주는 감수성에 대해 탐구하거나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감정과 정책적 변화에 대한 연구를 하는 삶을 꿈꿨다.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대화를 나누고,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주식과 비트코인을 잠시 보았다가 다시 잠드는 일을 반복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영어로 쓴 에세이를 출간해보고 싶다는 꿈도 있다.

요즘 은퇴라는 단어를 자꾸 곱씹게 되는 건 이런 상상 때문일 것이다. 연차를 내고 경험한 하루가 보여준 건 시간의 주도권이었다.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이 구체적인 일상의 모습을 갖기 시작했다.


소속감

시간의 주도권을 경험하고 나니 두 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는 소속감에 대한 현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진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갈망이었다.

먼저 소속감의 현실부터. 좋은 곳에 들어가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서든 '자신과 맞는 맥락'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 안에서도 컨텍스트 크리에이터로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일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함께' 만들어갈지다. 진짜 소속감은 '가치와 감각을 공유하는 프로젝트나 사유 안'에서 형성된다. 사람보다 '아이디어'와 먼저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개인 작업에 대한 갈망도 커졌다. 예술과 브랜딩에서 오는 심미성이 사람에게 어떤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지, 과학기술의 발전이 개인의 감정과 사회의 정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런 주제들로 영어 에세이를 써서 출간해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소속감과 개인 작업에 대한 갈망이 대립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개인 작업을 통해 얻은 깊이 있는 사유가 회사에서 '아이디어'로 먼저 연결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예술의 심미성을 이해하고 브랜딩의 철학적 기반을 탐구한 경험이 회사 프로젝트에서도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선택의 순간이 왔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는 현실과 마주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과학기술이 가져다주는 감정적 변화와 정책적 영향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지만, 예술과 브랜딩의 감수성에 더 깊이 천착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20년 계획의 구체화

소속감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개인 작업에 대한 갈망을 확인한 후, 은퇴 계획도 더욱 구체화됐다. 2025년부터 2045년까지 20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핵심이었다. 새벽 운동과 오전 글쓰기, 오후 집안일과 늦은 밤 독서로 이어지는 루틴이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에는 현재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점진적으로 개인적 관심사를 확장해 나가고 싶다. 경험과 전문성을 쌓아가는 동시에 투자와 자산 관리에 대한 체계를 만들어가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 시기에는 예술이 개인의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과 브랜딩의 심미적 요소들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를 병행하고 싶다.

중반기에 접어들면서는 글쓰기와 브랜딩에 대한 관심을 좀 더 구체화하고 싶다. 지금까지 축적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브랜딩이 단순한 마케팅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과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술 작품이 관람자의 내면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깊이 파고들고 싶다.

동시에 영어 실력도 본격적으로 키워서 해외 독자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 능력을 기르고 싶다. 30년 이후에는 같은 가치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며 살기를 희망한다.

후반기에는 기회가 된다면 브랜딩과 관련된 일에 더 깊이 관여해보고 싶다. 35년쯤에는 그런 동료들과의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때쯤이면 영어로 쓴 에세이 출간도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접근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기술 자체보다는 그 기술이 사람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 정책 변화가 개인의 일상에 가져오는 심리적 변화에 더 주목하게 될 것 같다. AI의 발전이 창작자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이나, 디지털 기술이 인간관계의 감수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같은 주제들 말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이런 모든 관심사들이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삶의 서사 완성하기

연차 낸 하루에서 시작된 상상이 소속감의 현실 인식과 개인 작업의 갈망을 거쳐 20년 계획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돌아보니,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결국 자신만의 맥락을 만드는 일이었다. 2025년부터 2045년까지의 마스터플랜은 단순히 경제적 자유를 얻는 계획이 아니라 시간의 주인이 되는 계획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예술과 브랜딩의 심미성이 주는 감수성을 탐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기 시작했다. 한 폭의 그림이 관람자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 브랜드의 색깔과 서체가 소비자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과학기술도 완전히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각도로 접근하고 싶어졌다. 기술 자체보다는 그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정책에 미치는 파급효과, 디지털 환경이 사람들의 감수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더 관심이 생겼다.

영어 에세이 출간이라는 꿈도 이제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목표가 되었다. 30년대 중반까지는 기초를 다지고, 후반부에는 실제로 해외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예술의 감수성과 기술의 영향력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글쓰기의 영역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연차를 내고 경험한 평일 오전의 자유로움이 보여준 것처럼, 앞으로의 시간은 기대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그 여정 안에서 평일 오전의 여유는 더 이상 로망이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작가라는 이름은 호명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될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멈추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연차 낸 하루가 보여준 시간의 주도권처럼, 2025년부터 2045년까지의 마스터플랜은 결국 어떤 시간의 주인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자 답이다. 예술의 감수성과 기술의 영향력이 만나는 지점에서, 하나의 일관된 삶의 서사를 완성해가고 싶다.


질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2025.07 작성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글이 그 길 위에 놓인 조용한 쉼표 하나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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