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_다시 만나다2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법한 일상이 있다.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에 무언가를 적어보는 것, 브런치나 블로그에 반쯤 진심인 글을 올리는 것. 살아온 문화의 조각들과 마음을 스쳐간 감정들을 그저 나누고 싶어서 툭 던진 글에 누군가 구독을 눌렀을 때, 우리는 아주 작은 가능성을 목격하게 된다.
'아,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 '이걸로 뭔가 될 수도 있겠구나.'
평범한 직장인의 삶에서 창작자로서의 가능성을 엿보는 찰나의 경험이지만, 이 작은 깨달음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는 직감이 스며든다.
현실에서 예술을 한다는 건, 한두 개의 포트폴리오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삶의 방식 자체를 선택하는 일에 가깝다. 삶의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내어주고도 결과가 불확실한 일에 천천히 무너져가는 과정이 반복되며, 어떤 사람은 이를 '버틴다'라고 표현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을 판다'고 부른다. 어디선가 스스로를 소개하고, 자신이 만든 것을 입증하려 애쓰는 순간부터 그 말은 시작된다. 설명은 상품이 되고, 평가는 가격이 되며, 결국 사람마저도 시장에 노출된다.
그 질서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버려야 할 것들을 아직 버릴 수 없었다. 최소한의 생활과 사람들, 일상과 반복을 지켜내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이 무언가에 조용히 다가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다른 길을 모색했고, 일은 계속 이어나가며 밤에는 쓰는 삶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종종 건강을 갉아먹었고, 잠을 줄이며 확보한 시간이 실제 작업이 되지 못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무의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단 한 줄이라도 남길 수 있는 문장을 찾고 싶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쓰고 싶다면, 계획보다 구조가 필요했다. 단순한 반복은 언젠가 무너지기 마련이었고, 일정표는 감정이나 몰입을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을 기다리는 대신, 쓰고 나서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를 기록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시작했다. 하루를 마친 밤, '오늘의 문장'을 남기는 것으로. 그것이 브랜딩 리서치든, 에세이든, 공공 정책 리뷰든 간에, 어떤 주제에서 어떤 감각이 솟았는지, 그 순간 머물렀던 단어와 문장을 기록해 두는 사유 중심의 탐색이었다.
원하는 일을 좇기보다 의미가 있는 일을 찾아가고 싶다. '하고 싶은 일'보다 '지속할 수 있는 일'을. 물론 생계를 위해서는 패션브랜딩 에세이나 마케팅을 위한 제품 에세이가 선택될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드라마 평론이나 예술 평론처럼 자신만의 관점과 철학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는 영역을 지향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글을 쓰든 얼마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느냐는 점이었고, 그것은 세상의 크기보다 문장의 깊이에서 확인되었다.
모든 감정은 지나가지만, 감정의 반응은 남는다. 그 반응이 기록되고, 축적되고, 다시 구조화될 때, 사람의 삶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의미의 궤도로 옮겨진다. 그래서 방법을 정했다. 3개월 단위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정하고, 쓰고, 회고하고, 감각의 키워드를 정리해 두는 루틴. 마치 계절이 흐르듯 작업도 하나의 시간 단위로 묶어 감각의 주기를 파악하고, 몰입의 장면을 회고하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받아 객관적 피드백과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 혼자서는 놓치기 쉬운 패턴이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주기는 기획자가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해 준다. 계획표에 적히지 않던 움직임, 감각의 흔들림, 다 쓴 후에야 이해되는 단어들이 자신을 설명해 준다. 이 반복은 처음엔 구조였고, 나중엔 리듬이 되었으며, 어느 순간 자율이 되었다.
이제 질문은 달라졌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도 되는 사람인가'로. '어떤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어떤 상태로 머물 수 있는가'로.
직업은 바뀔 수 있지만, 존재의 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유 이후 달라질 모습은 직업이 아닌 방향성의 문제일 것이다.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주어진 삶을 해석하는 대신, 선택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
글을 쓰는 일은 어떤 의미에 접속하기 위한 문장 실험이고, 지금도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쓴다는 건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일이지만, 언젠가 하나의 목소리로 수렴되기를 바란다.
그 목소리는 아마도 조용히 말할 것이다. 더 이상 버리지 않아도 되었다고, 그때 지키려 했던 무언가가 지금도 여전히 여기 남아 있다고. 브런치에 올린 작은 글 하나가 누군가의 구독으로 이어지듯, 작은 시작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낸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미를 창조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질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2025.07 작성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글이 그 길 위에 놓인 조용한 쉼표 하나가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