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_다시 만나다4
누구나 한 번쯤 컴퓨터 앞에 앉아 첫 문장을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브런치 글로 시작했던 작은 파도가 이제 몇 개의 플랫폼을 거쳐 작은 스토리를 만들었고, 하루에 2~3시간 일하며 나머지 시간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걷고 책을 읽고 감정을 기록하는 일상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내리고, 창가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 생겼다. 급하게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살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는 시간, 책장을 넘기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마주하는 시간, 하루 끝에 감정을 기록하며 스스로와 대화하는 시간이 일상의 축이 되었다.
진짜 자유는 시간이 많은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엇을 써볼까?" 하고 생각하는 것, 그 설렘이 하루하루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다. 하지만 이런 편안함 속에서도 과거의 치열했던 순간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편안한 현재를 만들기까지 거쳐온 과거를 돌아보면, 회사를 다니던 시절 어릴 적 알았던 사람들, 간절히 얻고자 했던 것들을 실패한 일들, 직장에서 벌였던 크고 작은 활동들이 당시에는 무의미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각각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의 피로를 풀며, 매 순간 제안서를 쓰고 경쟁입찰에 참여하며 책임질 필요 없는 것까지 책임지던 그 순간들이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모양으로 치유받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기다림 끝에 얻은 것들이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 프로젝트 10개 외주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마감일이 다가올 때마다 스트레스받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한 가지 뜻으로 이가 맞듯 완벽하게 맞춰질 때 느꼈던 뿌듯함이 있었다. 그림 작업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블로그에 올리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단지 표현하고 싶어서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외부에서 큐레이터가 단체전 참여 제안을 해왔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들의 끝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때도, 예술 작업이 인정받을 때도, 결국 그것을 함께 만들어가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시간은 이렇게 우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치유해 주는 것만은 아니다. 변화는 늘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무언가를 붙잡고자 할 때 오히려 놓음을 생각하게 되는 역설적인 순간들이 그것이다. 힘들 때마다 실업자 브이로그를 보며 쉬고 싶다는 마음을 달래곤 했는데, 그런 일상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실업자 브이로그를 보면서 깨달은 또 다른 것이 있었다. 일을 하지 않는 자유로운 시간이 부러웠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기록하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결국 진정한 휴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손보다 생각이 빨라서 뇌 안의 생각이 저절로 타이핑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AI를 만나면서는 넘사벽이라는 느낌,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을 마주하게 되었다. 단순히 기술이 발전해서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영역이라고 여겼던 창조와 사고 자체가 기계에 의해 순식간에 압도당할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의 막막함이다.
이런 기술의 압도적인 발전 앞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과거 회사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쌓았던 경험들, 그림을 그리며 표현했던 창조적 순간들조차 이제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 이야기를 할 때는 개인의 경험, 본인의 이야기를 하지만, 점차 궤도를 벗어나 여러 이야기를 하고 소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전문가,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에서 소설가로, 작곡가에서 예술가로 변모하는 과정이 바로 이런 것이다. 돈을 떠나는 것은 기본 전제가 되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 경험을 통찰적/상상적 이야기로 확장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브런치에서 시작된 작은 파도가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과거의 치열했던 경험들이 현재의 편안함을 만들어주었고, 그 편안함 속에서 마주한 변화에 대한 질문들이 또 다른 성장의 발판이 되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은 무엇을 써볼까?" 하고 생각하는 설렘이 우리를 하루하루 일으켜 세우는 힘이다.
이런 설렘이 주는 것들은 예상보다 훨씬 크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창작에 대한 기대감은 하루를 시작하는 에너지가 되고, 작은 문장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은 삶을 만들어준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영감은 마치 선물처럼 다가오고, 독자들의 공감과 반응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준다. 글을 통해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람들,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들,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세계가 있다.
무엇보다 설레는 일상이 주는 가장 큰 보상은 시간에 대한 주도권이다. 마감에 쫓기지 않고 호기심에 이끌려 하루를 채워갈 수 있다는 것,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흥미를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 주는 자유로움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물론 현실이 항상 설레는 것만은 아니다. 바다 앞 작은 집에서도, 산속 오두막에서도 일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인터넷이 불안정해서 화상 미팅이 끊어지는 날도 있고, 겨울엔 난방비 때문에 고민하기도 한다.
매월 들쭉날쭉한 수입과의 싸우기도 한다. 한적한 달에는 건강보험료 내는 것도 부담스럽다. 혼자 일하다 보니 무기력해지는 날들도 있고,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바뀌면 독자들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듯한 불안감도 든다.
완벽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해 간다는 실감이 있다.
진짜 자유는 시간이 많은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매일 아침 찾아오는 작은 설렘에서 비롯된다.
질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2025.07 작성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글이 그 길 위에 놓인 조용한 쉼표 하나가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