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게 선택인가

쉼 1

by 봄플

쉬는게 선택인가


신호들

몸은 말보다 먼저 반응했다. 작고 미세한 신호들이 끊임없이 전해졌지만, 나는 그것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경고라기보다는, 그저 하루의 고단함이 남긴 흔적쯤으로 여겼다.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방치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꾸준히 운동했고, 필요할 땐 일부러 일을 피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일이라는 흐름에 나를 온전히 떼어놓을 수는 없었다.

나에게는 나름 연차와 역할이 있었고, 회사 안에서도 팀원이더라도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불안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한 달에 서른 명씩 퇴사하는 구조조정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일상이었다.

당장의 일들에 끌려다니며, 멈춰야 할 때조차 ‘조금만 더’라는 단순한 주문으로 견뎠고, 그렇게 쉼은 어느새 내 삶에서 가장 미뤄지는 일이 되었다.

불편함은 어느 정도의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었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다시 외부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고 스카우트 제안이 오기 시작했을 때쯤, 그와 동시에 나는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에 점점 무뎌져 가고 있었다.


진실

그러나 몸은 기억했다. 내가 무심코 넘긴 신호들,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를, 사라지지 않는 피로를, 복통을 넘어선 심정지,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조용히 일어나는 작은 균열을, 몸은 결코 잊지 않았다.

자궁, 대장, 갑상선, 눈 그 단어에 따르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숨겨진 의미.

자궁암, 대장암, 갑상선암, 백내장을 향한다는 것을.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지만, 삶을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관들이 하나둘씩 이상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쉼은 특별한 사건 뒤에야 허락받을 수 있는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가 지속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마련해야 하는 기본 조건이라는 것을. 몸이 보내온 신호들은 나를 방해하거나 주저앉히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지키기 위한 조용한 언어였고,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 시간만큼 나의 균형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쉼을 나약함으로 여기고, 멈춤을 실패로 치부하던 인식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지속 가능한 삶이란 끊임없이 달리는 것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순간 스스로를 조율할 줄 아는 능력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조금 늦었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과 숨의 균형을 나름대로 지켜왔다고 믿었던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는 회사를 향해 원망하기 시작했다.

물론, 스카우트된 회사라고 해서 나를 지켜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없었다.

전적으로 나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

쉼은 더 이상 소진 끝에 겨우 얻어내는 일시적인 멈춤이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선택하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결심이었다. 멈춘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도, 뒤처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나를 스스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쉼을 선택하는 삶

삶은 여전히 빠르게 흐르고, 해야 할 일들은 쉽게 줄어들지 않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무심히 지나치지 않는다. 몸이 보내오는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균열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어린 시절, 한꺼번에 밀려오는 감정을 글로 하나씩 풀어내며 마음을 지켜냈듯,

이제는 몸에서 시작된 균열을 천천히 짚어가며, 나를 다시 회복시켜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이미 충분히 지켜내지 못했고,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마음을 정리하듯 몸도 다스릴 수 있는 시기가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큰 절망이 오지 않은, 미약하지만 분명한 희망이 남아 있을 때이니까.

버틸 수 있을 것 같을 때, 아직 견딜 만하다고 느껴질 때, 그때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삶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오래, 더 깊게 살아가기 위해 나를 존중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임을, 나는 이제 확신한다.

쉼을 받아들인 삶은 이전보다 느리지만,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나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살아간다.



2025.05 작성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글이 그 길 위에 놓인 조용한 쉼표 하나가 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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