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그래서?

쉼 2

by 봄플

멈춤, 그래서?


막막함 속의 멈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눈앞에 놓인 일들은 물론이고, 좋아하던 책 한 권조차 펼치기 힘들었으며, 익숙한 일상조차 낯설게만 느껴졌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얕은 감각은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에 그 막막함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무기력이라고 하기엔 감정이 지나치게 묵직했고, 우울이라고 하기엔 애써 다잡으려는 의지가 분명히 있었다. 그저 막막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도망치지 않으려는 애씀

그 시간을 ‘멈춤’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순히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아가야 할 이유와 멈춰야 할 이유가 충돌하던 지점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멈추게 된 이유는 처음엔 알 수 없었다. 생각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욕심이 있었고, 나아가고 싶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대학원에서는 직장이직이라는 이유로 연구 주제를 바꾸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고, 나도 현업과 학문 사이에서 헷갈려했다.

다른 취미를 시작해보려 해도 스스로를 붙잡고 말했다. “박사 따야지”, “이런 건 누구나 하는 거야.” 멈춘 게 아니라, 도망치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버거워진 마음이었다.

나는 그 멈춤 속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금 이 상태를 만든 피로의 근원은 어디에 있었는지를 조금씩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들이 다시 얼굴을 드러냈고, 일부러 밀어두었던 질문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는가, 무엇이 나를 멈추게 했는가, 나는 어디서부터 방향을 잃었던 것일까. 그렇게 멈춘 시간에서는 나는 나를 탓하기만 했다.


다시 살아가기 위한 텀

다시 설레던 날은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평범한 어느 날, 재미 삼아 본 프로그램 안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글 주제를 추천해 줘”라고 써넣었고, 화면에 뜬 몇 개의 문장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닿았다. 그 주제들이 나를 흔들었다.

그 주제들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잊고 지냈던 글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오랫동안 꺼내지 않았던 설렘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 밤 조용히 주제와 소주제, 목차를 정했다.

취미가 인생이라 생각했다. 반복되는 일상이 곧 삶이라고 믿었기에, 설렘은 더 선명했다. 취미가 더 깊었다. 몰입이 시작되자, 삶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다시 20대의 한겨울로 돌아간 듯했다. 몰입 이후의 쉼은, 그 어느 때보다 '제대로 쉬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설렘은 나를 몰입하게 했고, 몰입은 삶을 다시 꿈꾸게 했다. 그 속에서 조용히 내 삶의 방향을 되묻는 일이었다. 그러다 다시 용기가 떨어졌다. 이전 교수님들께서 하시는 말이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대엔 글의 힘이 없다. 그럼에도 설렘을 안고 살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결국 ‘쉼’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던 시간. 깊게 숨을 쉬었고, 게으름 속에 머물렀으며, 자주 나를 마주했다. 멈춤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다시 붙잡기 위한 더 정제된 결단이었다. 그 안에서 과잉된 목표와 타인의 기대를 덜어내고, 삶의 리듬을 스스로 조율한다.

그건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텀이다. 멈춤은 정지가 아니라, 마치 인생의 명상과 같은 일이다. 나에게 쉼은 그런 것이었다.



2025.05 작성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글이 그 길 위에 놓인 조용한 쉼표 하나가 되었기를



이전 01화쉬는게 선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