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3
일을 하다 문득, 아무 일정도 없는 휴일을 상상했다. 평일 오전, 팀 회의가 끝나고 책상에 앉아 멍하니 있을 때였다. 커피가 유난히 쓰게 느껴졌고, 창밖 햇살은 평소보다 느긋해 보였다. 문득 일정이 없는 하루를 떠올리게 됐다. 늦잠을 자고, 서둘지 않고, 커피를 천천히 내릴 수 있는 아침. 좋아하는 옷을 입고 동네를 한 바퀴 걷고, 그날 기분에 따라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 생각만으로도 어딘가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소소한 기대를 품은 채, 휴일을 기다렸다.
주말이 되자, 그렇게 상상했던 하루를 마주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 커튼을 열고,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렸다. 아무 계획도 없으니 여유가 있었다. 가볍게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면 기분이 더 나아질 것 같아 운동화를 신었다. 그런데 걷는 내내 허리 아래쪽에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단단히 뭉쳐 있는 느낌. 이번 주 안에 아플 몫을 미리 챙겨 두기라도 한 것처럼, 걸음을 멈추지 않았는데도 통증은 점점 선명해졌다.
집에 돌아온 뒤, 이불속 전기장판 위에 몸을 눕혔다. 처음에는 잠깐 누워 있다가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몇 시간이고 깼다 잤다를 반복하게 됐다. 일어날 만하면 다시 눕고, 다시 일어났다가 다시 지쳐 누웠다. 시간이 흘러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아쉬웠을 일들—정리해 두려던 책상 위,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글감들—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미뤄졌다. 아침에는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이제는 눕는 일이 하루의 중심이 되었다.
그래도 아주 가만히만 있지는 않았다. 한 번쯤 일어나 로봇청소기를 돌렸고, 어제 세탁기에 넣어두었던 빨래를 꺼내 널었다. 손이 가는 대로 먼지를 한두 번 닦기도 했다. 누워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주 작게 움직이는 순간들이 종종 섞여 있었다. 움직임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 안에서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무엇을 허락하고 무엇을 거부하는지 천천히 살필 수 있었다.
TV 소리를 배경으로 깨어 있다 보면, 문득 마음이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워 있는 것밖에 하지 못했지만, 억지로 계획을 끼워 넣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되었다. 해야 할 일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나의 속도가 생겼다. 방 안의 공기가 바뀌는 순간이나, 햇살이 벽을 스치는 각도처럼 사소한 것들이 또렷하게 다가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것들로 하루가 채워졌다.
가끔은 TV를 끄고 천장만 바라보았다. 눈을 껌뻑이며 누워 있는 그 시간이, 이상하게도 가장 많은 생각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몸은 멈춰 있었지만, 마음은 조금씩 앞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요즘 따라 경제학과 심리학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단지 이해를 위한 독서가 아니라, 어느 지점에서는 나만의 감각으로 한 발 앞서 있기 위해서였다. 익숙한 흐름에 따라가기보다는, 더 정교한 시선으로 돌아보고 날카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글도 쓰고 싶었다. 지나가는 생각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내 언어로 잡아두기 위해서. 언젠가는 내가 가진 직관과 감각들을 하나의 구조로 짜서, 지금은 아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술과 혁신 사이에 한동안 생각이 멈춰있었다. 아직은 구체적인 그림이 없지만, 기술과 브랜드, 구조와 표현이 얽히는 지점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설계해보고 싶다는 생각만은 또렷했다.
통증 속에 멈춰 있는 하루였지만, 멈춤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마음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통증이 없었다면 더 많은 것을 했겠지만, 그렇게 움직였다면 지금 이 마음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쉼은 꼭 뭔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과정이 아니었다. 그냥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시간. 생각보다 많은 날들을 내가 바쁘게 살아냈고, 그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존재를 지키는 쉼은 움직임보다 느슨한 리듬에서 온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보다, 어디까지 내가 나로 남아 있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오늘처럼 대부분을 전기장판 위에서 보낸 하루도, 아주 작고 느리게 흘러간 그 시간들이 모여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만든다. 누워 있으면서도 나를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 그것만으로 오늘은 충분했다.
질문은 끝나지 않았고,
이 시리즈는 앞으로도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2025.05 작성
쉬어도 괜찮습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이 글이 그 길 위에 놓인 조용한 쉼표 하나가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