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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남 Jan 31. 2024

재수 없는 실력자



“나를 따라와!”

“와 아아아 아아아 아.”


무리들은 일제히 발을 구르고 일어나 열심히 비행했다. 물론 내가 가리킨 반대쪽을 향해.


이런 일은 다반사다. 레몬에 대한 나의 생각에 동의하는 날파리는 물론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덧 나의 다른 생각까지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영향력은 제로. 몇몇 못된 날파리들이 나를 조롱하면서 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게 했다. 그건 꽤나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레몬을 포기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무리들을 이끌고 싶었다. 누구보다 앞서서 결정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을 늘 동경했다. 그런 상상을 하며 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따르는 날파리는 없다.


‘따라오라’고 쭉 뻗었던 발을 머쓱해하며 내리고는 나도 재빨리 무리에 합류했다. 그들은 비행 연습을 하고 있는 날파리들 무리들의 장소로 향했다. 하긴 나도 이곳에 가고 싶었다. 가는 길이 좀 달랐을 뿐….


“와! 대박 멋져! 루!”


늘 그렇듯 우리의 대부분은 하루를 비행 연습으로 시작한다. 얼마 후면 활공 대회가 있다. 그날은 모든 무리들이 경기도 보고 모여서 놀기도 하는 축제의 장이다. 모두 활공을 잘하고 싶어 하지만 현재까지는 루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나와 친구들은 유난히 뛰어난 루의 비행 실력을 구경하러 왔다. 더러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친구들의 부러운 눈빛에 화답하겠다는 듯 붉은 눈빛을 찡긋 하더니 다시 하늘로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친구들과 0.01초에 몇 번 날갯짓을 하는지 내기 중이었다. 날갯짓이 적을수록 이기는 게임이다. 비행할 때 날개가 잠깐 보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는 활공을 하며 자신의 날개를 활짝 피고 모든 구경꾼들에게 가슴팍을 보여주었다. 몇몇의 여자 아이들이 저마다 비명을 질렀다.

나는 고작 저런 것, 그러니까 가슴팍만 보고 다리를 동동 굴리는 여자들을 한심하게 여기며 그들의 무리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루의 경쟁자들 쪽에 섰다. 그들과 함께 그의 비행을 관찰하는 편이 더 편했다. 그의 친구들은 루의 허점을 잘 간파했고 어떤 자세가 틀렸는지도 잘 말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도 역시 그의 비행기술만큼 따라가기 힘들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행이 막바지에 이르자 경쟁자들은 분한 목소리로 이번판도 루가 이겼다고 말하며 들고 있던 모래알을 하나 둘 던지고 자리를 떠났다. 어느새 한과 포가 내 옆으로 와서 팔짱을 끼었다.


“대단해… 저런 건 타고 나는 걸까?”  한이 포에게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그…그러니까 루의 가… 가족이 조… 족보가 제일 길다잖아. 그.. 그런데에는 다 이.. 이.. 이유가 있지. 아… 안 그래 탄?”


탐탁지는 않지만 인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움츠리고 있는 포는 그의 비행 실력을 칭송하는 자신의 말에 나의 동의를 구하는 듯했다.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에 늘 자신이 없는 그는 항상 나의 동의를 얻는 것,‘안 그래 탄?’으로 말을 마무리한다. 나는 대답 대신 그의 비행만 눈으로 따라갈 뿐이었다.


‘레전드는 무슨.’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루는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 뭐지…? 비행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투시하는 능력까지 있단 말이야? 그는 만면의 웃음을 머금고 있었고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 줄 몰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하하하하하.”

“…?”


그의 웃음소리는 나를 향해 돌진하는 속도와 함께 무섭도록 커지고 있었다. 나는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뒷걸음치려고 하지 않았으나 의지와 달리 뒷발이 움직이고 말았는데, 그때 루는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재빨리 좌우를 살피고 위를 보았지만 루는 없었다.


“탄!”


나를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역시 루였다 초조하게 그를 찾느라 허우적 댔던 내 고갯짓에 창피함이 몰려왔다. 젠장. 그는 뒤에서 여유 있게 날아와 착륙하고 있었다. 방금 그가 한 비행은 급 커브. 우리들 사이에서도 고급 기술로 손꼽히며 아무나 할 줄 아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을 경험하면 터득된다는 어려운 기술이다. 물론 급커브는 나도 할 수 있다. 급커브 기술로만 보면 내가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루는 인간을 경험한 적이 없지 않은가! 나는 웃음 섞인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잘한다.


  “루.. 하. 하… 멋진 비행이네.”  

  “오랜만입니다. 탄 나으리.”

  “참나.”

아무도 날 나으리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의 위치와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이건 날 모욕하는 거다.


  “지도자의 아들인데 왕자님이라고 부를까요?”


그렇다 난 우리 무리의 수장의 아들이다. 하지만 높은 자존심과 다르게 실력이 없고 허황된 꿈(레몬)만 꾼다는 인식이 퍼졌다. 한 마디로 그들에게 난 ‘한심한 놈’이다.


  “자꾸 그럴 거면 내 옆에서 활공으로 가드나 하라고.”

“하.. 자존심 겁나 쎄. 아 쎄시네요.”


여유 있는 저 웃음 재수 없다.

“급 커브 대결하면 내가 이길걸?”

“이건 자존감이 높은 걸까요, 허세일까요?”

“뭐 이 자식아?”

“아하하하 농담이죠.”


“날개 조심해라… 그러다 활공 따위 영원히 못할 수도 있으니까.”

“하하. 네네 그럼요. 활공 한 수 가르쳐 줘요?”


‘깝치네.’

그의 비아냥대는 미소는 참을 수 없었다. 아니, 더 참을 수 없는 건 그의 완벽한 활공.

“닥쳐.”


 내 목소리는 의도한 것보다 날카로워졌다. 이것보다 가벼운 ‘닥쳐’를 의도했으리라. 루는 애벌레 때부터 나와 함께 자란 친구다. 그는 항상 나의 자존심을 긁는 것에 탁월했다. 그러고 보니 탁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군. 난 알면서도 그의 깐족거림에 주먹이 나가곤 했다.

 나의 시무룩이 들킬까 봐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이미 늦은 것 같았다. 그는 너무나도 부러워하는 나의 마음을 여지없이 간파했고 그런 나를 더 희롱하고 싶었는지 갑자기 씨익 한 번 웃더니 다시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또 한 번의 급 커브. 잘난 척 하긴! 한과 포는 나의 마음도 몰라주고 환호성을 질렀다. 조용히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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