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살기

by 봄남

띠리리링!


저번에 만났던 그 연습생으로부터 온 문자다.


[안녕하세요 소연언니 동생 친구분이시죠? 급한 사건이 하나 터졌어요. 밖으로 사건이 유출되지 않았어요. 혹시 알아 두시면 좋으실 것 같아서 말씀드려요. 같이 데뷔하기로 했던 팀원 하나가 자살을 시도했어요. 소연언니와 같은 이유 같아요. 그런데 이 팀원 그 이후로 보이지 않는데 역시나 아무도 찾지 않아요. 사태가 심각한 것 같아요. 시간 되시면 연락 주세요. 사건을 알아보시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나는 아직도 언니의 옷꾸러미를 잡고 앉아 있는 다연이를 향해 말했다.


“김예지를 만나러 가자.”


나는 계약서와 누나의 일기장을 사진 파일로도 저장하기 위해 페이지마다 찍었다. 그리고 일기장을 가방에 넣었다.


띠리리링!


[안녕하세요 큐지에 오정민 기사입니다. 김예지 연습생에게 송재윤 씨가 사건에 관심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소연 씨 동생분도 아신다고요. 만나 뵙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이소연 씨 동생분도 같이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오정민 기자님도 만나자.”


다급하게 일어서려는 나와 달리 다연이는 여전히 주저 앉아 있었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줄래?”

“어… 그래.”


맞다. 다연이는 지금 언니의 죽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줘야 했다. 나는 다연이를 혼자 남겨두고 집으로 왔다.


그날 이후 다연이는 조금 달라졌다. 그녀는 분노했다가 우울해했다. 그녀는 막대한 슬픔에 허덕이다가도 동시에 창피하다고도 했다. 그녀가 망상에 사로잡혀 있던 언니에 관한 말들이 생각이 날 때마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생각을 뿌리쳤다고 했다. 그녀는 한참이나 울기도 했고 한참 동안 차가운 눈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언니를 지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나로선 쉽지 않았다. 그녀는 나한테 대뜸 화를 냈다가 한없이 미안해하기도 했다.

“미안해, 언니 얘기 그만할게. 언니를 살렸다고 자부했던 내 모습이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미워서 신경질이 났어. 미안.”

“괜찮아.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잖아. 내가 너라면 더 성깔 부렸을 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타임루프를 이용해서 증거 좀 모아 올게.”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타임루프를 통해 다연이는 언니가 박실장과 함께하는 의심스러운 이동경로를 파악해 사람들과 만나는 사진들과 영상을 수집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장면은 없었다. 어쩌면 사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김예지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한동안 말이 없던 다연이는 불현듯 말했다.


“이제부터 언니가 없는 오늘을 살아야 해.”

“그것도 할 수 있어.”

“그럴까?”

“당연하지.”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살아 있다고 믿고 싶었어. 그게 더 쉬웠어. 언니가 없다고 생각하면 삶이 너무 막막했거든.”

“….”

“그래서 고마워. 덕분에 언니를 보내줄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연이는 드디어 언니의 죽음을 인정했고 그날 나는 다연이 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해 보리라 결심했다.


먼저 와서 앉아 있는 김예지는 여전히 마스크에 검정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왔다. 회사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패션이다. 다연이와 김예지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말없이 음료를 마셨다.


“많이 닮으셨네요. 소연언니와.”

“네….”

소연이가 살짝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언니가 그 회사에 있는 동안 많이 힘들어했나요?”

“남자 친구분 한테는 먼저 말씀드렸지만…”

“저희 사귀는 건 아니에요.”


그녀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손까지 잡아놓고 아니라고?’ 다연이는 ‘남자 친구분’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일듯 정색했다. 쳇.


“뭐 어쨌든.” 그녀는 알았다는 표정으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초라해지는 순간이었지만 일단 패스.


“소연언니는 박실장이라는 사람이랑 스폰서를 만나고 다녔어요. 대충 눈치채셨지만 우리 모두는 ‘데뷔’를 위해서 살잖아요. 몇몇 회사 사람들은 그걸로 엄청난 갑질을 해요. 저희 회사가 그러기로 유명하죠. 그런 면에서 우리는 거의 노예예요. 많은 연습생들이 있지만 대부분 떨거지들이고 데뷔할 사람들은 내부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다는 소문도 있죠. 그런데 언니는 몇 년째 데뷔도 못하면서 박실장이라고만 밖으로 다녔어요. 그게 좀 수상했죠. 스폰서를 만나면 막말로 스폰을 해주고 데뷔를 시켜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냥 착취만 당한 건가요?”


급한 마음에 좀 노골적인 질문을 해대고 괜히 다연이를 한 번 보았다. 다연이는 진지하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것 같아요.”

“팀원 자살 소동은 이슈가 되지 않았나요?”

“여자 아이돌 그룹 중에 포지션이 애매한 여자애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만….”

“그 친구는 왜요?”

“그 친구도 같은 이유예요. 어느 날 이후로는 나오지 않지만 그 친구와 친한 친구가 저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그 친구도 박실장이 데리고 다니던 친구 중에 하나였거든요. 그 친구에 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갔어요. 죽지 않아서 기사가 없는 건지, 아니면 기사를 막았는지, 기사가 하나도 없었어요. 부조리한 연습생 관리 고발로 그 친구 아버님이 저희 건물 앞에서 매일매일 1인시위 하시고 계세요.”

“아….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네요.”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커피잔을 들고 한 모금씩 마셨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 같네요. 제가 제안하는 것이 실례가 되지 않으시면 좋을 텐데….”

“뭔데요?”

“혹시 용기를 내어 주실 수 있으세요? 내부 고발자로…. 그러니까 본인이 목격한 것만 증언해 주셔도 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데 큰 일조가 될 것 같아요.”


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말없이 커피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리고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녀가 비친 안쓰러운 표정으로 보아 우리에게 협조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연이의 눈빛은 간절했다. 그녀가 용기 있게 나서준다면 그녀를 위해서 타임루프를 쓸 수도 있을 것처럼. 하지만 이런 일에 나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상대는 대형 기획사 박실장. 힘과 권력에 맞서는 위험한 모험이다. 다른 동료들은 쉬쉬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대를 이루어도 될까 말까 한 판이데, 일이 잘못 됐다간 괜히 김예지만 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녀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소연언니가 저한테 잘해줬는데요. 하지만 저는 내부 고발을 할 정도로 용기가 있지 않아요. 이 기획사는 저의 꿈이 달려 있는 곳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대로 소연누나의 죽음이 묻히면 제2의 제3의 피해자들이 계속 속출할 것이에요. 어쩌면 다음엔 당신일지도 모르고요. 이걸 보고만 있겠다고요?”

“…죄송해요.”


그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하자 나는 그녀를 잡았다.


“이러지 말아 주세요. 이런 말씀드리는 것도 사실 매우 용기 내서 나온 것이에요. 지금도 심장이 막 뛰고 누구한테 들킬까 봐 고개도 잘 못 들겠어요.”그녀가 속삭였다.


“저 이거. 결정적 증거요.”


나는 소연누나의 일기장을 보여줬다.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건…. 소연 언니가 쓴 건가요?”

“네 소연누나의 일기장이에요.”

“이 안에 뭐가 있죠?”

“맞아요. 결정적 증거가 있죠.”


김예지는 잠시동안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러다 그녀는 내가 제시한 일기장을 손바닥으로 짚고 자기 쪽으로 끌어들였다. 나는 그녀의 손 목을 잡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이걸로 도와주실 수 있나요?”




며칠 후,


다연이와 나는 한강 공원을 거닐었다. 제법 더워져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햇살을 피해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잠깐 앉았다.

“내가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언니 없는 거.”

“네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언니의 억울함이 풀어졌으면 좋겠어. 언니가 유언처럼 남긴 일기장 말이야. 내가 언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인 것 같아. 언니의 억울한 일들을 풀어주는 것.”

“누나의 부재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이런 일까지 파헤치려고 하다니 대단해. 나라면 못했을걸?”

“너와 함께니까 가능한 거야.”


그녀는 한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이제 언니를 살리러 타임루프를 하지 않았다. 다연이는 드디어 현재를 살고 있었다.


“이렇게 타임루프 연습 없이 너랑 만나는 거 나름 나쁘지 않다.”

“하하하. 나 때문에 타임루프를 썼어?”

“그럼. 거의 맨날.”

“왜?”

“네가 나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잘 보이려고 노력했지.”


그녀는 오랜만에 명랑한 목소리로 웃더니 아이스크림 껍데기를 나한테 짓궂게 던져 주고 일어났다. 그때 저 멀리서 파란 폴로셔츠에 단정한 머리를 한 사람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정민 기자였다. 오후에 오기자님과 만나기로 한 날인걸 깜박할 뻔했다. 그는 조금 통통한 얼굴에 눈꼬리가 올라간 작은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실만 전달할 것 같은 기자 얼굴이었다. 그는 간단하게 인사를 한 후 우리를 근처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컵 안에 빨대를 휘젓고 있는 다연이와 불안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는 나를 빠르게 스캔하더니 본론부터 말했다.


“이소연 씨 동생 되시죠? 혹시 언니 유품 중에 기획사와 했던 계약서가 있을 텐데 가지고 계시나요?”

“…네.”

“그 계약서 문제가 많던데. 좋은 증거로 활용할 수 있어요. 언니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라는 의견에 조금이라도 지지해 줄 수 있거든요.”


그의 말은 매우 빨랐지만 신기하게도 한 마디도 빠짐없이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1분 1초라도 허투루 보내면 안 될 것처럼 우리가 말하고 있는 중에도 손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기자님은 뭐 좀 알아낸 것이 있으신가요?”

“며칠 전 우연히 기획사 앞에 갔다가 김예지 씨를 만났어요. 김예지 씨 박실장이란 사람이랑 딜을 했더라고요. 다음 달에 급하게 데뷔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회사에서 김예지 씨만 밀어줄 만큼 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아마 이소연 씨 살인사건 관련해서 묵인해 주는 조건으로 데뷔하는 것 같아요. 이것 때문에 다른 연습생들 사이에서 수근거리고 난리도 아니더라고요. 휴. 거기 지금 분위기 안 좋던데.”


기자는 고개를 휘저었다. 데뷔라…. 또 다른 전개다. 나는 약속대로 기자님에게 USB를 전달했다.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나는 자동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다음 달에 데뷔라고요?”

“단독 데뷔래요. 김예지 씨는 일단 수락했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저랑 비밀리에 접촉했어요. 자신의 데뷔 쇼케이스날 와달라고요.”기자님은 USB를 비닐팩 안에 넣어 두고 가방에 조심스레 넣었다.


간이 콩알만 한 김예지는 권력에 맞설 사람 같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일기장을 보자 눈빛이 분명 흔들렸었다. 나는 그녀의 데뷔 얘기해 자동으로 입이 벌어질 만큼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그녀를 끝까지 믿어야 하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일기장을 박실장에게 넘기기라도 했다면 나는 타임루프를 타고 가 그녀와의 딜을 수정해야 된다.


“이소연 씨 일기장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말해 줄 수 있어요?”그는 아까 꺼낸 노트와 파일을 뒤적거리며 물었다. 엄청나게 바쁜 사람 불러다가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VIP 이름들과 접대 장소, 요란한 파티가 상세히 적혀 있어요.”

“와우. 이거 터지면 온 나라가 들썩일 텐데!”


그는 약간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다연이는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았다.


“기자님 잘 부탁드려요.”다연이가 공손하게 말했다.

“각오는 단단히 하셔야 될 겁니다. 아니다, 일단 각오는 제가 해야 되죠. 부담 갖지 마시고. 다연 씨는 가만히 계시면 되세요.”

“감사드려요.”

“아 맞다. 이 계획대로 하셔야 돼요. 다시 뒤로 되돌아가서 바꾸거나 하지 마시고.”

“네?”

“음. 아니에요. 그럼 이만.”


기자님은 우리에게 차례차례 악수를 건네고 쿨하게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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