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주의자의 결심

by 봄남

이제 70이 넘으신 엄마는 다 늙은 막내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집에 데리고 온다고 신이 나셨는지 나를 아침부터 집으로 불러냈다.


“엄마 웬 대청소야?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여자가 온대, 그느마가 결혼 한대!”

“진짜?”

“이년이 속고 만 살았나. 진짜지 그름 가짜여?”


할매는 아니, 엄마는 우렁차게 소리 지르고는 노인내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세기로 나의 등을 퍽 치셨다. 화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싶어 순간 성질이 올라왔지만 그냥 미간만 잔뜩 찌푸리는 것으로 끝냈다. 따가운 등을 어루만지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했던 나는 다 늙은 엄마 이겨서 뭐 하나 싶어 다른 이야기로 화재를 돌렸다.


“엄마, 이거 꽃 폈네?”


베란다에 즐비한 화분들에 시선을 옮기며 화를 거둬냈다. 자연스러웠다. 엄마와의 수많은 대첩을 거쳐 얻은 실력이랄까. 엄마의 인성과 다르게 화분 속에 화초들은 신경질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화한 기색으로 보라 빛 꽃을 피워냈다.


“예쁘제?”


엄마는 갓난아기를 보듯 보랏빛 방울꽃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누그러 뜨렸다. 그러다 또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여! 가시나가 온다잖여!”

“재현이가 진짜 결혼할 여잘 데리고 온다고? 그냥 친구 아니고? 진짜 결혼 한대?”

“이따 5시에 오니깨, 여기나 쓸고 있어 봐.”


나에게 걸레를 쥐어 주고 부지런하게 부엌으로 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어찌나 신이 나 보이는지 괜히 질투가 날 정도였다.


‘엄마 걸레는 쓰는 게 아니라 닦는 거지.’ 버릇처럼 엄마의 문법을 지적하고는 걸레질을 시작했다.


맞았다. 재현이는 오랫동안 비혼자였고 그런 아들의 신념 따위는 존중하지 않겠다는 듯 엄마는 아들에게 결혼을 닦달했다. 그런 엄마의 잔소리를 10년 동안 무시해 온 동생의 뚝심이 마침내 무너지는 날인 것이다.


그의 나이가 40이 넘어가자 가족 모두 그에게 결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연락이 뜸해진 아들이 명절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을까 봐 최대한 심기를 건드리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고 엄마 스스로 다짐한 모양이다. 그렇게 엄마는 아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 재현이가 결혼을 하겠다고 누굴 집에 데려 오는 것은 엄마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지지고 볶아도 내 동생인데 경사스러운 소식에 나 또한 흥분을 감출 순 없었다. 아침부터 남편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내가 잘못 들은 거냐며 신나서 소리쳤다. 남편은 웃고 있었지만 표정과 다르게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까지 가봐야 알지. 예전처럼 또…”


그는 나를 힐끗 한 번 보고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급히 말을 거두었다. 나는 급히 옆구리를 찔렀다. 나쁜 기운이 들어 올라. 부정탈라. 남편에게 인상을 쓰며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남편이 출근하도록 문 밖으로 내쫓고서 서둘러 엄마 집에 왔다.


장을 언제 그렇게 많이 봐 왔는지 그 좁은 부엌에 고기와 야채들이 즐비했다. 그걸 엄마는 순식간에 여러 가지 음식으로 바꿔 놓았다. 늙어도 요리 실력 하나는 일품이었다. ‘너는 나를 도우러 왔니 먹으러 왔니.’라며 잔소리를 했지만 엄마의 만면의 기쁨의 미소가 가득했다. 엄마 옆에서 이것저것 도와주며 반찬 하나씩 집어 먹었더니 어느새 시침은 5시를 향했다. 좀 쉴까 싶어 소파에 철퍼덕 누웠는데,


띵동!


벨소리가 울렸다.


“네, 들어오세요.”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현관으로 달렸다. 문을 열기 전에 거울을 보면서 얼굴 표정을 챙기고 머리 스타일을 정돈했다. 이 정도면 센 언니 같아 보이진 않겠지라는 자기 최면을 걸고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울리지 않게 수줍어하는 재현의 뒤로 생각보다 젊고 예쁜 여성이 나타났다. 그렇다!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이놈 봐라 이런 능력이 있었다고? 재현이 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이 상큼한 여자를 또 어떻게 꼬신 것일까. 엄마 또한 긴장했는지 한껏 고급스러워진 목소리로 그 아름다운 여성을 맞이했다. 그 모습이 웃긴 나는 동생과 시선을 교환해 가며 엄마의 능청을 감상했다.


“안녕하세요. 재현이 누나예요. 제 남편은 지금 일하느라… 못 왔네요.”

“안녕하세요.”


어랏, 내 목소리는 또 왜 이럴까. 엄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는구나. 마침 재현이도 ‘우리 집 식구는 원래 이런 교양 있는 목소리를 내지.’라고 하는 듯 태연하게 거실로 향했다. 그녀는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재현의 뒤를 따랐다. 거실 소파에 수줍게 앉은 그녀와 눈을 살며시 맞추며 나 또한 수줍게 물었다.

“이름이…?”

“김래아예요.”


푹!


교양 있던 우리의 엄마는 마시던 물을 뿜어내며 기침을 연신 하기 시작했다.


콜록콜록…


“괘… 괜찮으세요?”

“아 네. 네. 괜찮아요!”


잘못 들었나 싶었다. 래아라고? 나는 황급히 놀란 눈빛을 재현에게 보냈다. 재현은 나의 시선을 피하면서 휴지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래아도 당황했는지 휴지를 뽑아 엄마의 입에 갖다 대었다.


“아… 래아씨. 이름이 참 예쁘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나는 래아씨 뒤에 서서 엄마에게 눈치를 주었다. 엄마는 사레들린 목기침을 가다듬으며 얼굴이 벌게져 앉아 있었다. 그러다 엄마는 다시 연신 나오는 기침을 멈출 수가 없었는지 손으로 휘휘 저으며 일어섰다.


“사… 사래가 걸려서. 얘기들 해요.”


엄마는 부엌으로 가 끝나지 않은 기침을 몇 번 더 하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다행히 래아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만났어요?”


"저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