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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Feb 24. 2023

'아차, 리모컨이 고장 났다' 아날로그 인간의 세상살이


집안일을 끝내놓고 실내자전거에 오른다. 자전거를 타며 경제방송을 보기 위해 TV를 켠다. 홈화면에서 리모컨으로 음성 검색을 하려는데 '기기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라는 오류 메시지가 뜨더니 리모컨의 '뒤로 가기'버튼과 '일시정지' 버튼을 동시에 3초간 꾹 누르라는 메시지가 뜬다.


안내받은 대로 조치를 취했는데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 아까는 음성검색만 안 되고 나머지 기능은 작동했는데 지금은 어떤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고 계속 '기기 검색 중...'이라는 문구만 나온다.


TV를 껐다 켜도 안 되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먹통이 된 채 같은 메시지만 반복하는 TV 화면이 보기 싫어 전원을 꺼 버렸다. 아쉬운 대로 노트북을 켜서 방송을 보긴 했지만 이럴 때마다 전자기기 사용에 서투른 아날로그형 인간인 게 답답해진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 과연 좋기만 할까



기술이 급격히 진보하는 세상에서 사는 건 편리하긴 하지만 그만큼의 불편함도 따른다. 예전에는 TV 설치 시 인터넷 서비스만 연결하면 됐는데 요즘은 넷플릭스, 웨이브,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등 각종 앱을 깔아서 인증절차를 거쳐야 하니 설치과정이 더 길고 번거로워졌. 여기에 게임기까지 연결하면 사용법이 더 복잡해진다.


어디 그뿐일까. 마트나 식당에서 캐셔 직원이 사라지고 셀프 계산대로 바뀌는 건 이제는 너무 흔한 풍경이고, 은행 점포도 줄어들어 나이 드신 분들의 은행 이용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게다가 예전보다 기능은 많아졌지만 수명은 줄어든 휴대폰으로 인해 기기의 교체주기가 짧아지고 있고 그로 인한 비싼 요금제를 부담해야 한다. 젊은 은 각종 제휴 할인 혜택을 찾아서 이용할 수 있지만 노인 층은 정보에 어둡다 보니 혜택도 별로 없는 요금제를 비싼 돈을 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리모컨 고장은 남편이 퇴근 후 해결했다. TV 연결선을 뺐다 꽂은 후 설정을 초기화하고 구독 중인 각종 앱들을 다시 설치하고 인증하니 작동이 되더라. 이럴 때 해결해 줄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마음  귀퉁이에서 불안감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남편이 없으면 그때는?


문득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강단 있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유약하거나 의존적이지도 않았다. 결혼 전 본가에서 독립해서 일 년간 자취를 했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긴 했어도 혼자서 전등도 갈고 DIY 가구도 조립하고 심지어 셀프 페인팅도 했었다. 가전제품이 고장 날 땐 AS를 요청하면서 타인의 도움 없이 그럭저럭 삶을 꾸려갔다. 


하지만 결혼  남편과 가사를 분담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많은 가정에서 그러하듯 우리 역시 전등 갈기, 가구 조립, 가전제품 관리는 남편의 몫이 되었다. 회사에서 업무 분장을 하듯 가정에서도 업무 분장을 했으니 내 일이 아닌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활용능력의 범위가 줄어들면서 안 그래도 기계치였던 내가 갈수록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서툴러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주저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아직 사십 대인 나도 이런데 칠십 대인 부모님을 생각하면 한층 마음이 무겁다. 살아가실 날이 한참 남았는데(요즘은 구십 세 이상 사시는 분들도 많으니) 세상은 급변하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니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하실까. 삶이 편리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소통의 창구가 사라지고 그로 인한 디지털 소외현상이 심화되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변화와 더불어 필요한 건



리모컨 고장이 긴 생각을 불러온 하루였다. 아날로그형 인간에다 변화를 싫어하는 성격이라 한 템포 느리게 살았는데 요즘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되면 지금보다 더 사람 간의 대면 만남이 없는,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텐데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귀찮더라도 새로운 트렌드와 변화를 숙지하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남편과 분담한 일도 서로 바꿔서 해보면서 사용하지 않던 능력을 일깨울 필요가 있겠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미래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늘고 있지만 그래도 기술의 진보가 우리를 더 나은 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지털 소외 문제 같은 또 다른 차별심화되지 않도록 충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세상이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닌, '공생'과 '화합'의 가치가 살아있는 진정한 유토피아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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