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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Jun 21. 2023

피자박스 조립, 쿠팡 채용공고에 숨은 '종이의 노동'

무한한 반복으로 숙련된 기술... 노동과 예술을 분간할 수 없는 순간

영화 <기생충>은 영화의 장면, 대사, 소품 하나하나까지 화제가 되었다. 관심은 '피자박스'에까지 돌아갔는데, 피자박스 조립은 영화 속 기택의 가족이 생계를 잇기 위해 하는 일이다. 이들은 일을 빠르게 해내기 위해 한 유튜브 영상을 참조한다.


영상에서 여자는 무려 2초 만에 피자박스를 착착 조립한다. 접는 방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주지만 남는 것은 잔상만 남는 손놀림 뿐이다. 방법은 알 수 없고 영상은 끝난다(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 브리아나 그레이(Breanna Gray)의 피자박스 접기 영상/사진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의 가족이 참고한 영상

피자박스는 누구나 접을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접는다.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박스를 360도 회전하고 180도 회전해서 접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가 피자를 먹을 때, 박스가 접히는 순간과 장소와 사람까지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언제나 생각보다 밀도가 높은 노동의 세계, 다양한 규격의 종이는 지금도 우리가 자세히 모르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접혀 박스 모양으로 탄생하고 있다.


그래서 피자박스 달인의 영상은 눈과 마음을 뺏기 충분했지만 기택의 가족에게는 불량품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도면이 있는 접기, 전개도와 창작, 전갈을 접는 신묘한 종이접기의 세계가 있다면 다른 한 편에는 도면 없이 일상을 접고 말아내는 생활형 종이접기 노동의 세계가 있다.


"종이는 다 계획이 있구나."

포장과 상차림을 한 번에 해결하는 충무김밥

최근 통영에 놀러갔다. 통영에 가면 할 일이 많지만, 그 중 하나는 충무김밥을 포장해 다른 장소에서 먹는 일이다. 오늘날 충무 김밥은 각지에서 먹을 수 있지만 바다를 끼고 걸으며, 무심한 듯 단단한 포장을 펼쳐 먹는 이곳의 맛을 따라올 수 없다.


비닐로 무김치와 어묵과 오징어무침 등을 싸고 밥도 비닐에 싸서 최종 포장은 흰색 종이가 담당한다. 종이를 몇 번 감싸고 귀퉁이를 말아 접으면 손님에게 단단히 넘길 만 하다. 종이 포장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나는데, 이때의 속도가 단단한 밀봉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인다.

▲ 충무김밥 흰 종이로 차려진 오뎅과 무김치와 김밥 한상.

흰색 종이는 묵직한 덩어리를 깔끔하게 감추면서, 포장을 풀면 빨갛고 검은 김밥의 대비를 강렬하게 담는다. 이때 뭘 깔거나 따로 담지 않아도 그럴 듯한 상차림이 된다. 다 먹고 나면? 흰 종이로 상을 접어 버리면 된다. 뱃사람들을 위한 한 끼의 포장의 기술. 종이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한 장의 종이는 충무김밥을 그럴듯하게 담았다가 버리는 것까지 해결한다.



햄버거 포장에 얇은 종이를 쓰는 이유

우리 주변에서 가장 비근하게 만날 수 있는 종이 접는 노동은 햄버거와 김밥일 것이다. 근처의 버거킹에서 햄버거 포장하는 과정이 인상 깊어 소개한다.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종이를 바닥에 깐다. 버거 종류마다 포장지의 사양이 다르므로 잘 고른다.

▲  야무진 햄버거 포장의 옆면

그 위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몇 번 말고 양 귀퉁이를 바닥으로 접어 말면 끝. 노룩(no look)으로 다른 일하는 이에게 밀어서 패스하면 그야말로 완성이다.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 최소한의 힘만 들이는 듯한 접기는 정교하지는 않아도 햄버거의 정형화 되지 않은 모양을 느슨하게 잡아준다.


대개의 햄버거는 포장지가 매우 얇아서 냄새를 주변까지 풍긴다. 내용물이 드러나지 않지만 다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인 시스루 포장. 얇은 종이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은 햄버거의 욕망을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유튜브나 웹페이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쿠팡 물류센터 채용 광고를 이야기 해본다. '박스만 접어도' '한 달 급여 최대 ○○○만 원'. 여기서 '박스만 접어도'라는 문장을 쓴 광고주와 타깃은 박스 접기를 쉬운 일로 여기는 공감대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박스만 접어도' 광고문구


 그러나 종이의 노동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박스를 접으면 그 안에 물건을 담는 일이 당연하게 따라올 것이고, 피자박스 크기만 다루지도 않을 것이다. 광고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급여 조건이 센터와 공정, 근무 시간대, 일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안내하고 있다. 중요한 이야기는 어쩐지 작게 표기된다.


덜 구겨지는 순간에서 완전히 구겨지는 순간까지, 종이가 담아내는 것들과 종이의 길지 않은 싸이클과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기생충>의 피자박스 영상은 노동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포착해낸 것일까 생각하다가, 어떤 예술은 숙련된 노동이라는 생각에 머물다가, 이 둘을 구분해 내는 지점이 크게 의미 없다는 생각에 도착한다. 종이접기, 사소한 것을 반복하는 일에도 사람들은 어떤 경지에 도달한다. 어떤 것이 노동이고 예술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에 말이다.


종내 단순하고 가치가 없는 가욋일로 여겨진 (그리고 돈이 거의 되지 않았을) 종이가방 포장의 근근한 역사를 떠올리다가, 리어카에 자신의 키만한 높이로 종이박스를 쌓아 올리는 느리고 집요한 길 위의 노동을 생각한다.


생활에 만연한 종이의 노동.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술이 그렇듯이, 우리의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들거나 생각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으로도 일상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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