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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May 23. 2024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OST와 어떤 우정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ost이야기라니, 꽤나 귀가 오래된 사람인가? 아니다. 영화가 나오고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친구가 "그 노래 너무 좋지?"라고 물었는데 안타깝게도 알지 못해 그제서야 영화를 찾아보았던 것이다. 30대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ost를 처음 들었다(찾아보니 영화는 2013년에 한국에서 개봉했다)


노래는 정말로 좋았다. "와 너무 좋네!" 그날 부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OST를 들었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시리즈 1의 첫 번째 수록곡이다. Come and get your love. 두둠칫 하는 박자와 함께 무언가를 착수하기 좋다. 그게 오래된 노래라는 사실을, 한 때를 풍미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친구가 알려준 것은 말하자면 지금도 어디선가 은은히 흐르고 있는 70년대의 레퍼런스였다. 내게는 그때까지도 그러한 레퍼런스를 알려줄만한 사람이나 열띠게 찾아 헤맬 취향의 씨앗조차 없었다. 옛날 음악 얘기를 하며 그 노래 진짜 좋은데, 로 시작해 그 노래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줄 만한 상대가 없었다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카페에서 노래가 흘러나와 번쩍, 우정을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bc0KhhjJP98


스타일을 얻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고집이 있다거나 탐구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Come and get your love 노래를 검색해 볼 수는 없지 않은가. 내친 김에 노래 얘기를 더 해볼까. 중학생 무렵에 라디오를 듣고 깜짝 놀랐던 일이 생각난다(나는 2023년을 살아가는 30대이다). 라디오에서 이승환의 '사자왕'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사자왕이라는 제목도, 가사도 신기했지만 가장 놀라운 건 이걸 어떻게 알고 신청하는 것인지... 하는 것이었다. 이승환도 알아야 하고, 사자왕도 알아야 하고, 그 라디오 채널도 알아야하고... 언제 이걸 다 알았지? 그 와중에 노래는 가사도 아름다웠다. "어제 보았던 숲의 나무 오늘 없고 오늘 불던 바람 찾을 수 없고"

https://www.youtube.com/watch?v=QzCfToOykEY


AI시대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조금 걱정된다. 묻지 않으면 AI가 가르쳐줄 일이 없을텐데. AI, 내가 모르는 것을 알려줘. 내가 궁금해할 만한 것을 알려줘. 그러나 AI는 나를 모른다. 어떻게 알려주겠는가.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취향이란 사람을 이루는 배경 같은 것. 배경지가 다양하고 색다른 사람들이 있다. 눌러 붙은 오래된 벽지같은 것 말고 산뜻하거나 기괴하거나 어두운 무늬가 은은히 박혀 있는 사람들. 잘 보면 돌같은 것도 있고 반짝이는 것도 있다. 나는 그런게 잘 없다. 시시하게 겨우 생긴 자국이 시간에 시들어가는 것만 보였다.


그 친구와는 오래 전에 연락이 끊겼다. 그것은 아마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겠지만 현저히 모자라고 볼품없는 나의 배경도 얼마간 책임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제발 아니길 바라지만. 친구가 당시 좋아한 영화는 <패팅턴>이었는데 나는 도저히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곰탱이를 15분도 봐줄 수가 없었다. 친구는 그게 그 영화의 매력이라고 했다. 친구는 패팅턴을 자신처럼 여겼으니, 우리가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다시 ost로 돌아가, Mr. blue sky 처럼 책상을 함께 두드리고 싶은 노래도 있다. 고른 공백을 듣다보면 건반이 타악기라는 사실을 비로소 하게 된다. 나도 건반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생 때의 경력도 처준다면 말이다. 운동회였고, 4-5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운동장 구령대 앞에 서서 건반을 쳤다. 음향 시설이 좀처럼 좋지 않아 운동장을 꽝꽝 울리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다행이었다. 생각만해도 등에 땀이 흐르네. 내가 건반을 치면 다른 애들은 그것과 상관없이 행진을 하거나 했다. 나는 거기서 잘 들리지 않는 배경음악을 깔기 위해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uJIqmha2Hk


이마에 흰띠를 하고 곤색 띠를 한 흰티와 반바지를 입고 한쪽 다리를 약간 구부정하게 서서 건반을 쳤다. 나는 내 모습을 완전히 볼 수 없는데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어떤 영화의 장면처럼 보인다. 아, 그것은 사진으로 남아있기 때문인가. 하여간 햇빛에 눈을 조금씩 찡그리며 메들리를 쳤다. 누구나 아는 것이었고 조금만 연습하면 칠 수 있는 것이었을 텐데, 기초적인 재즈의 한 종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걸 알려준 선생님이 계셨다(초등학교 때의 선생님은 얼마나 중요한가!) 단순한 리듬이지만 오른손과 왼손이 교차하거나 전혀 마주치치 않는 구간을 적절히 배합해 재미있었다. I want you back 처럼, 중간 중간 손등으로 건반을 훑는 것도 물론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GDyAb6pePo


만국기가 걸린 하늘. 전교생이 100여명도 되지 않은 작은 학교였지만 운동장은 한 반에 60명이 있던 시절의 것과 같아 어지간히 컸다. 음향의 문제를 떠나서 사람을 사로잡는 소리는 아니었을테고 소리도 원체도 작아서 기억에서 잊혀지기 쉬었다. 혼자만 서 있기 좋은 자리였고, 거기에 있는 것이 나였고, 나만 아는 리듬 타기와 당기기의 은은한 장이 있었다. 거의 내 귀에서만 들렸던. 색이 좀 바랜 만국기 몇 개가 하늘에서 그 리듬을 타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오갤 ost 어쩌고, 취향인지 벽지인지 어쩌고, AI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건반을 쳤던 초등학생 시절을 꺼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그 노래 진짜 좋지? 하는 물음을 주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그런 물음도 종종 건네는 사람이 되고 말이지. 뭐든 다 알고 대답해 줄 것 같은 기술들도, 옆에서 너 그거 좋아하지, 이거 어떤지, 그래서 50년전 노래를 좋아하게 되는 내 배경지를 하나 칠해주는 친구에게 비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 무슨 노래 들어? 나는 슈퍼노바와 블랙 버드.


https://www.youtube.com/watch?v=izvd101zz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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