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몇 번 저자 사인본을 받아본 적이 있다. 사인본으로 판매하는 책이거나, 책을 사서 사인을 받은 게 아니라, 저자가 직접 사인을 해서 보내준 책. 내 이름이 적힌 책을 받을 때면 늘 고마운 마음이 되어, 전화로든 문자로든 감사의 인사를 드리긴 했지만 사실 그 책들을 다 읽은 건 아니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고민해서 얻게 된 책이 아니다 보니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았다.
이번에 내 책을 만들면서, 나도 지인들에게 제법 책을 많이 보냈다. 주소를 알아 내야 했기 때문에 모처럼 문자나 카톡을 보내 인사와 덕담을 나누는 것까지는 좋은 일이었지만, 간단하게나마 인사말과 함께 사인을 해서 봉투에 넣어 택배로 보내기까지의 과정이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이른바 '증정'으로 보낼 책이 백 권이 넘었다. 택배비도 제법 나갔고, 시간도 품도 꽤 드는 일이었다. 내 책도 누군가에겐 읽히고, 누군가에겐 읽히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작가가 된 기분'으로 지낸 즐거운 며칠이었다.
받자 마자 잘 받았다며 전화를 주시는 분, 문자나 카톡을 주시는 분이 가장 많았다. 물론 이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들이 이어졌다. 고생해서 만든 책을 그냥 받을 수 없다며 케이크 쿠폰을 보내주신 분도 계시고, 지인에게 선물하겠다고 몇 권을 따로 주문해 주신 분도 계셨다. 내가 사인본을 받으며 전혀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새삼 마음이 쓰였다. 며칠이 지난 뒤, 잘 읽었다며 후기 문자(?)를 보내주시거나, SNS에 올려주신 분도 몇 분 계셨고, 아동 문학 작가이신 초등학교 은사님은 전화로 30여 분이나 칭찬과 격려를 해 주셨다. 나는 사인본을 보내주신 작가분들께 한번도 후기를 전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가장 의외의 반응은, '잘 받았다는 문자도 카톡도 없는 경우'였다. "ㅇㅇㅇ님께 배송되었습니다."라는 문자가 꼬박꼬박 들어왔으니 배달 사고도 아니었다. 봉투를 뜯지도 않은 것인지, 한번 훑어는 봤는데 연락을 깜빡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내 입장에선 서운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 그 숫자가 제법 된다. 두어 달이 지났으니 이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보낸 책들은 후회가 된다. 그분들께 괜한 부담을 줬나,하고 생각해 보는 게 내가 품을 수 있는 최대의 선의.
지인들에게 무차별 광고를 한 덕분에 겨우 인쇄비는 건진 것 같지만, 사실 최근에는 책이 거의 팔리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 책 잘 안 산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어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서 팔릴 책은 아닐지라도, 내 주변 사람들만큼은 한 권씩 사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큰 오만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람이 이런 책을 내면 한 권은 사 줄 것 같은데, 싶지만 말해 봐야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다시 책을 낼 일이 생긴다면 사인본을 보내는 일은 많이 줄일 생각이다. 혹시라도 보내게 된다면, 멋있는 척하는 말 대신 '저를 위해 SNS에 후기도 적어주시고, 동네 도서관에도 신청해 주세요, 한 권 사서 다른 분께 선물도 해 주시면 좋고요.'하는 메모라도 넣어야겠다. 책장을 뒤져 사인본으로 받은 책들을 지역 도서관에 신청하는 일도 미루지 말아야겠다. '작가가 된 기분'에 젖어 허우적거릴 뿐이었던 '작가 놀이'가 이제야 끝이 났다.